스카이데일리가 창간 14주년을 맞아 ‘새로 쓰는 부촌 지도’를 다시 펼친다. 10년 전 성북동은 ‘청와대 이웃한 권력촌, 범현대 일가 등 재벌촌’으로 불리며 전통적인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성북동의 부의 지도는 ‘주인 바뀌는 재벌촌, 젊어진 성북동’으로 요약된다. 전통적인 재벌가의 원로 기업인들이 떠나고 그 자리를 재벌가 2세나 엔터테인먼트와 예술 분야에서 젊은 자수성가형 ‘뉴 리치(New Rich)’들이 채우고 있다. 이번 기획은 전통적인 부촌의 견고함과 새로운 부의 흐름이 교차하는 성북동의 역동적인 변화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그 이면의 의미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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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부(富)의 지도, 10년 만에 새로운 경계를 긋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번지는 한때 삼성·효성·롯데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과 원로 기업인들의 주택이 밀집한 ‘재벌촌’이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이 전통적인 부의 집합소에도 어김없이 세대 교체의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탈(脫) 성북동’ 현상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024년 9월 성북동 주택을 주한 이집트아랍공화국에 매매하고 한남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전통 재벌의 상징적 이탈을 보여줬다. 또한, 정대선 전 HN Inc 사장이 소유했던 성북동 부지가 경영 위기로 인해 2025년 7월 강제 경매로 친형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에게 낙찰되는 사건은 견고했던 재벌가의 지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부지는 1977년부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유했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성북동은 여전히 ‘부의 세습’을 통한 전통을 지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2021년 자신이 소유했던 성북동 주택을 장남 정지선 회장에게 증여하며 부의 대물림을 이어갔다. 물론 정 명예회장은 성북동에 별도의 자택을 소유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03년 타계한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주택을 2020년 신축했고,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차남 김남호 씨에게 매매 형식으로 주택 소유권을 넘겨줬다. 이밖에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등 주요 재벌가 인사들은 변동 없이 이 지역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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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과 원로 기업인들이 모여 살던 ‘재벌촌’으로 알려졌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번지에 지난 10년 사이 재벌 2세와 젊은 유명 연예인 등이 유입되면서 세대교체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의 경우,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주택을 철거하고 2023년 1층짜리 미술관을 건립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전통 주거 공간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재벌가 3세의 변화된 취향을 대변했다. 다만, 조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횡령·배임)로 5월29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고, 조 회장이 건립한 미술관은 현재 개관도 하지 못한 채 방치된 듯 을씨년스럽게 남아있어 성북동 저택 단지 안에서 유독 눈길이 쏠린다.
전통 부호들의 이탈로 생긴 빈자리는 엔터테인먼트·문화예술계 등 새로운 산업에서 자수성가한 ‘젊은 뉴 리치’들이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이들은 강남의 ‘초고가 신축 빌라’와는 달리 성북동의 고즈넉한 고택과 희소성 높은 단독주택이 주는 품격을 선호한다.
블랙핑크 멤버 리사는 2022년 성북동의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 단독주택을 75억 원에 전액 현금 매수했다. 이 주택의 전 소유주가 롯데가(家)의 장선윤 롯데뉴욕팰리스 전무 부부였다는 점에서, 전통 재벌가에서 ‘K팝’을 상징하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자산가로 소유주가 바뀌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미 성북동에 둥지를 튼 배우 배용준·박수진 부부 외에도 유해진·이승기·이민호 등 유명 연예인들이 최근 10년 이내에 성북동 고가 단독주택의 주인이 됐다.
문화 예술계의 품격이 부동산 가치를 재정의
소유주 구성의 변화는 성북동의 물리적·문화적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성북동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만해 한용운(심우장), 소설가 이태준(수연산방) 등 근대 문인·예술가들이 터를 잡았던 문화적 뿌리가 깊은 곳이다. 여기에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립미술관(간송미술관)이 위치해 ‘문화 보존’의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최근 성북동 부동산의 가치 상승은 바로 이러한 ‘헤리티지 프리미엄’에 ‘트렌디 프리미엄’이 결합된 결과다. 고도 제한으로 3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는 성북동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젊은 건축가들의 감각이 가미된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제이슨함갤러리(2017년)와 우손갤러리 서울점(2024년)의 진출이다. 우손갤러리는 50년 된 붉은 벽돌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현대 미술 전시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젊은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인 함윤철 대표는 성북동의 예술적 유산과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터를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성북동이 단순히 재벌가의 은둔처를 넘어, 전통 예술과 동시대 현대 미술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문화 커뮤니티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북동의 부동산은 이제 순수한 주거 가치를 넘어 ‘활용 가치’를 중요한 거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재벌가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나타난다. 조현범 회장이 주택을 미술관으로 용도 변경한 사례 외에도, 조 회장 부친인 조양래 명예회장의 성북동 주택 역시 2021년 5월 ‘문화 및 집회시설’로 용도 변경되었다. 이는 대저택이나 부속 건물을 아트센터·갤러리 등으로 활용하여 부동산의 가치에 문화적 수익성을 더하려는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다.
‘매물 품귀’ 부촌의 불변 가치 ‘헤리티지 프리미엄’
성북동이 부의 지형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국내 최고 부촌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에는 세 가지 불변의 조건이 있다.
첫째는 철저한 보안과 치안을 담보하는 ‘외교 프리미엄’이다. 성북동은 노르웨이·독일·덴마크 등 20여 개국에 달하는 주한 대사관저가 밀집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외교 거주 지역이다. 특히 대사관저가 성북동 330번지 일대에 집중되면서 이 지역은 ‘대사관로’로 불린다. 대사관저 밀집에 따른 엄격한 보안과 골목 모퉁이 마다 배치된 경찰은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정·재계 및 연예계 인사들에게 최고 수준의 사적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는 ‘고도 제한’이 만든 희소성이다. 성북동은 오랜 규제로 고층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이로 인해 강남처럼 고밀도 개발을 통한 미래 가치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도심 속에서 전통적 주택과 넓은 정원을 향유할 수 있는 전원생활이라는 독보적인 희소 가치를 창출했다. 고도 제한이야말로 성북동의 고유한 품격과 희소성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셋째는 높은 거주 만족도로 인한 ‘매물 품귀’ 현상이다. 성북동 부동산 시장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거주 만족도가 매우 높아 한 번 들어온 소유주들이 쉽게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북동에서 50억 원 이상 규모의 거래는 총 15건에 불과하며, 2023년에는 단 한 건도 기록되지 않았다. 이러한 매물 품귀 속에서 성북동 주택 거래는 여전히 ‘부자들이 하는 거래’의 특성을 띠며, 호가가 무의미하고 매수인의 면면을 따져가며 거래하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성북동 단독주택의 평당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지난 5년간 성북동 단독주택 거래 중 매매가 50억 원 이상의 거래를 분석해 보면 2020년 대지면적 기준 평당 평균 거래가는 2692만 원이며 5년이 지난 2025년(9월 말 기준) 평당 평균 거래가는 3183만 원이다. 최근 5년간 평당 거래가는 약 500만 원 올랐고 거래 건수는 연간 5건에서 1~2건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중 평당 최고 매매가를 기록한 것은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2022년 7월 75억 원에 매입한 단독주택으로 대지면적 기준 평당 3785만 원이었다. 인근 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성북동 부동산의 미래 가치는 ‘평당 가격’을 훨씬 넘는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성북동의 부동산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진단한다. 부동산 전문가는 “성북동의 가치는 단순한 건축물의 가격이 아닌, 시간이 빚어낸 역사적·문화적 가치에 있다”며, “젊은 자산가들이 주택을 사들여 리모델링하거나 문화 시설로 활용하는 트렌드는 성북동 부동산에 ‘문화적 스토리’라는 새로운 투자 동력을 부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부촌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젊고 감각적인 신흥 부자가 유입되는 문화적 재생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성북동은 앞으로도 서울의 부의 지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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