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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심장부, 서울 중구 세종대로 광화문 사거리의 교차로는 12일 오후 햇살을 받으며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분주한 발걸음, 경적 소리만 울리는 빌딩 숲 사이로 반사되는 햇살 아래 ‘죄송합니다. 지켜주십시오’라는 푯말을 든 시간이 멈춘 듯 새하얀 옷을 입은 한 남성이 우뚝 서 있었다. 표정은 더없이 엄숙했고, 오월의 햇살 아래 그의 침묵은 더욱 무겁게 내려앉는 듯했다.
기자는 일인 시위를 하는 부당한 일을 당한 청년이겠거니 하고 고민 끝에 뒷 모습만 보고 말을 걸었다. 그는 국민의힘 인천 연수구을 김기흥 당협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던 대표적인 친윤 인사로 꼽힌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캠프 수석부대변인을 시작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었다.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역임하며 현 정부 출범 이후 부터12.3 비상계엄까지 ‘윤심'(尹心)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불과 열흘 전인 1일까지 국민의힘 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당의 목소리를 전했으며 2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국회 대선 출마를 진두지휘하며 대변인을 맡았던 그가 모든 소리를 지운 채 홀로 광장에 선 것이다.
한 표가 아쉬울 대선 레이스 첫 날, 어떠한 정파도 대변하지 않겠다는 상징으로 흰 옷을 입은 듯한 그의 두 손에는 하얀 푯말이 들려 있었다. 검고 굵은 글씨로 새겨진 두 마디, ‘죄송합니다. 지켜주십시오.’오전 9시부터 해 질 녘 오후 7시까지, 그는 꼬박 10시간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했다.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를 맡으며 무심한 차량 행렬 속 무관심한 시민 시선을 무수히 받던 그에게 ’무엇이 그렇게 죄송스러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여러 상황이 좀 국민들한테 죄송스럽다”며 “선거 과정에 있어서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덕수 전 총리와 김문수 국민의힘 단일화 과정에서 빚어진 당 지도부간의 새벽 입당 파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였다.
그는 “저희가 부족했기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이 비롯되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과 그런 얘기를 하더라도 그게 잘 국민들한테 전달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침묵의 사죄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제 입장에서는 참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고백했다. 정치적 수사 이전에 인간적인 자성의 목소리였다. 김 위원장은 “큰 틀에서 보면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는 절박한 외침”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친윤계 대표 주자로 알려졌지만, 이 같은 행동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12.3 비상계엄과는 전혀 상관 없이 지난 1년 간 총체적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러 나왔다”고 고백했다.
10시간의 묵언 수행은 고행과 같았다고한다. 김 위원장은 “오후 3시 반쯤에는 너무 어지럽고 귀도 많이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시민들의 격려를 받았다고한다. 그는 “시민이 와가지고 커피 드시고 빵도 주셨다”고 했다. 애국 시민의 작은 온정이 그의 절실함에 응답하며, 지친 김 위원장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분들은 굉장히 좀 허탈해하고 있고, 뭔가 열패감이 느껴지는 상황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허탈함을 기대와 희망 그리고 용기로 바꾸기 위한 절박함이 이곳으로 저를 움직였다”고 고백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저는 뭐 7시까지 하고, 내일도 하고, 저 앞으로 계속할 것이다”고 답했다. 그의 다짐은 단호했다. 선거는 “논리와 정책 싸움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광화문 아스팔트 위에서 보낸 그의 10시간은, 때로는 수백 마디의 말보다 침묵의 진정성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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