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당뇨병 정책은 여전히 ‘병원’ 안에 갇혀 있다. 환자 수는 매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건강보험 급여 지출은 2조 원을 넘어섰지만 정작 중증 당뇨병 환자에 대한 공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대한당뇨병학회를 비롯한 16개 단체가 모인 대한당뇨병연합은 중증 당뇨병 관리 체계 개선을 촉구하는 공동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1형당뇨나 중증 췌장 질환처럼 복합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권역형 당뇨병 지원센터’ 도입을 요구했다. 진단-교육-응급 대응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통합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 제안의 핵심은 단순한 시설 설치가 아니다. 병원 중심에서 지역 기반으로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만성질환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외침이다.
실제로 현재 1형당뇨병 성인 환자들은 인슐린 펌프, 연속혈당측정기(CGM) 같은 필수 의료기기를 구입하는 데 연간 수백만 원씩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일부 제품은 가격이 6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1형당뇨병이 아직도 법적 장애 기준조차 갖추지 못한, 제도의 사각지대라는 점이다.
장애 등록은커녕 소아·청소년만 급여 지원 대상이고 성인은 제외된 현실은 당뇨가 자기 관리 부족이라는 편견에 기인한 뿌리 깊은 구조적 차별의 결과다.
당뇨협회는 질환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교육이 많이 필요한 1형 환자와 임신 당뇨 외 일반환자에 대해서까지 보험수가를 적용해야 하며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 개입과 예방 중심의 건강검진 체계 강화도 필수다.
예산 편성은 더 근본적인 문제다. 작년 당뇨병 급여비는 2조5313억 원으로 전체 질환 중 네 번째로 많았으나 당뇨 예방을 위한 건강생활실천금제 시범사업 예산은 79억 원에서 23억 원으로 오히려 급감했다. 치료에는 수조 원을 쓰면서 예방엔 수십억조차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은 시스템 실패 그 자체다.
예비 당뇨 환자를 포함하면 국민 3명 중 1명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우리의 당뇨 정책은 여전히 땜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 늦기 전에 당뇨병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중증 당뇨병은 의료기기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예방·진단·교육·응급 관리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치료 체계와 지역 기반 인프라가 필수다. 병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생활 현장 속 만성질환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당뇨병을 ‘자기 탓’으로 돌리던 사회적 낙인을 걷어 내고 1형당뇨를 비롯한 중증 환자에 대한 제도적 인정과 지속적 지원이 이뤄질 때 비로소 국가 만성질환 정책은 시작점에 설 수 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7
좋아요6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