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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정치 무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한마디에 한 나라의 관세·국방·외교가 좌지우지되고, 각국 정상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카타르에선 항공기를 선물하고, 아프리카 다섯 개국과 파키스탄·캄보디아·이스라엘에선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하는 등 국제무대는 아첨과 칭송 일색이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인물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3년 가까이 군복을 벗지 않았던 그는 트럼프와의 회담을 위해 과감히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불과 반년 전 그는 백악관에서 “무례하다” “감사를 모른다”는 질책을 받고 식사 자리에서조차 배제된 채 쫓겨나다시피 하는 굴욕을 맛본 바 있다. 당시 J.D.밴스 부통령으로부터는 “얌전히 굴라(behave)”는 모욕적인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젤렌스키는 유럽 각국 정상들의 경험을 참고하며 철저한 전략을 세웠다. 강자의 기세와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피하고 몸을 낮추며, 지피지기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손자병법 ‘구변 편’의 ‘강하면 피하라(強而避之)’는 구절을 생생히 구현한 것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젤렌스키를 본 트럼프는 곧바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회담 자리에서 젤렌스키는 불과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는 말을 무려 열한 차례나 반복하며 상대를 추켜세웠다. 이어 골프를 즐기는 트럼프를 위해 퍼터를 선물로 건넸는데, 그것은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병사가 쓰던 채를 재활용한 것이었다. 단순한 물건을 넘어 ‘희생과 용기’의 스토리를 담아낸 상징물이었다. 트럼프는 크게 감동하며 “진정한 사랑으로 준 선물”이라 화답했다.
정치 무대의 이 장면은 손자병법의 세 가지 전략으로 요약된다. 강이피지(強而避之), 즉 강자를 피하라. 비이교지(卑而驕之), 자세를 낮추어 상대를 교만하게 하라. 그리고 리이유지(利而誘之), 이익으로 유혹하라. 젤렌스키는 이 원칙들을 외교 현장에서 치밀하고 정확하게 구현한 셈이다.
사업에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달의 민족’은 네이버와 같은 거대 포털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생활 밀착형 ‘배달앱’이라는 틈새에 집중하여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광동제약의 ‘비타 500’은 기존 음료업계 강자들과 겨루기보다 ‘마시는 비타민C’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했다. 삼성전자의 무풍에어컨 역시 성능 경쟁 대신 ‘무풍’이라는 차별화 개념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블루클럽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미용실을 ‘남성 전문’으로 재정의하여 시장 틈새를 파고들었다.
승부의 세계가 항상 강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약자에게도 기회는 주어진다. 정면충돌을 피하고 우회로를 찾아 적극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 이것이 젤렌스키가 트럼프를 상대로 선택한 전략의 핵심이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2500년을 넘어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백악관의 외교 무대와 한국 기업의 시장 개척 사례가 말해 주듯 ‘강이피지(強而避之)’는 시대를 초월한 생존과 성공의 전략이다. 강자의 힘이 세상을 뒤덮을지라도 우회와 창조를 선택하는 순간 약자에게도 승리의 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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