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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K-방산이 또 하나의 세계 시장 문을 열었다. 폴란드 수출로 글로벌 주력전차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K2 전차가 이번에는 태평양을 건너 중남미에 상륙한다. 현대로템은 9일(현지시간) 페루 정부와 K2 전차 54대, K808 차륜형 장갑차 141대 등 총 195대 도입을 포함한 총괄합의서(Framework Agreement)를 체결했다. 규모는 최소 2조9000억~3조원으로 추정되며, 이행계약 체결 시 K2 전차의 ‘중남미 첫 완성품 수출’이라는 상징적 성과가 확정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서명식은 호세 헤리 페루 대통령 주재로 수도 리마에서 진행됐으며,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정부는 이행계약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양국의 방산 협력이 획기적으로 격상될 것”이라며 “페루가 전력 보강과 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을 선택한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총괄합의서에는 단순 장비 도입을 넘어 △현지 생산·조립 체계 구축 △페루 육군조병창(FAME)과 현대로템의 협업 구조 △교육훈련·군수지원 패키지 등이 명시됐다. 이는 한국형 방산 수출모델이 ‘장비 판매’를 넘어 ‘산업 생태계 동반 구축’ 단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계약 규모를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 내외로 보고 있으며, 현지 생산라인 구축과 장기 군수지원까지 포함하면 3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한다.
페루는 군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노후 전차·장갑차 대체를 모색해왔지만, 미국·유럽 중심 시장에서 비용·납기·성능을 모두 충족하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K2 전차는 고성능 대비 합리적 가격, 신속한 납품, 후속지원 능력이 결합된 드문 패키지로 평가되며 최종 선택을 이끌었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10년 넘게 축적된 양국 협력의 신뢰가 있다. 페루는 이미 한국산 훈련기·함정·장갑차를 꾸준히 도입해왔고, 특히 2023년 약 828억원 규모의 K808 장갑차 30대 구매 경험을 통해 품질·운용성을 직접 확인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권과 무관하게 이어져 온 꾸준한 협력의 결실”이라며 “K-방산이 북유럽과 중동을 넘어 중남미 시장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K2 전차는 한국군 독자기술로 완성된 차세대 주력전차(MBT)로, 최대 시속 70㎞에 달하는 기동력과 1500마력 파워팩을 갖춰 평지·고산·사막 등 복합지형에서 성능을 유지한다. 특히 고지대 작전이 빈번한 페루 특성과 잘 맞는다는 평가다. 독일 라인메탈 기반의 120㎜ 활강포(K276)와 자동장전장치로 3인 승무원 운용이 가능하며, 최신 APFSDS와 다목적 탄종을 사용하고 향후 유도탄 통합도 가능한 확장형 구조다.
생존성 면에서는 모듈형 복합장갑과 능동방어체계(KAPS)를 적용해 대전차미사일·로켓 위협에 대응한다. 또 수심 4m 도하가 가능한 스노클링 기능은 남미 국가들이 운용 중인 기존 전차에서는 보기 드문 능력으로, 안데스·아마존에 산재한 하천 지형에서 전술적 우위를 제공한다.
전자·센서 장비 역시 첨단화돼 있다. 사격통제장치(FCS)는 자동표적탐지, 주·야간 사격, 기동 중 정밀사격을 지원하며, 지휘관 조준기를 통한 ‘헌터-킬러’ 기능으로 목표 탐지와 사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는 고지·정글·야지 작전이 공존하는 페루 환경에서 전차 운용 효율을 크게 높인다.
K2는 또한 국가별 요구에 맞춘 개량이 용이한 플랫폼이다. 고산형(K2-Peru), 사막형(K2-Middle East), 유럽형(K2PL) 등 이미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검증된 만큼, 페루 역시 자국 지형에 최적화된 ‘K2-안데스형(가칭)’ 도입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대로템은 장비 판매에 그치지 않고 현지 조립공장 구축, 일부 공정 이전, 교육훈련 체계 마련 등 장기 협력 구조를 설계했다. 이는 폴란드 사례와 유사한 방식으로, 한국형 방산 수출의 글로벌 표준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방산업계 한 전문가는 “페루는 중남미에서 군 현대화 기준점을 제시하는 국가”라며 “K2가 페루에서 성공적으로 전력화될 경우 그 자체가 주변국의 구매 의지를 자극하는 ‘레퍼런스 효과’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라질·콜롬비아·칠레는 모두 노후 전차 대체 사업을 준비 중이며, 특히 브라질은 자국 방산기업(IMBEL)과의 공동 생산·기술 이전을 중시해 한국형 현지생산 모델과 매우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총괄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은 제한적이나, 물량·구조·협력 방식이 명확히 기록돼 있어 사실상 ‘수출 계약의 70~80%가 완성된 단계’로 평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위약 조항이 없어도 이행계약까지의 변수는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행계약은 내년 상반기 중 체결될 전망이다. K-방산은 올해 들어 K9 자주포(베트남·3700억 원), FA-50 경공격기(필리핀·1조 원), K2 전차(폴란드·9조 원) 등 굵직한 계약을 잇따라 성사하며 세계 시장에서 국가 위상을 넓혀왔다. 이번 페루 계약은 유럽→동남아→중동을 넘어 중남미로 확장되는 흐름의 마지막 퍼즐을 채운 셈이다.
이행계약은 내년 상반기 중 체결될 전망이다. 방산업계는 계약 체결 시점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 총괄합의서에 물량·협력 구조·현지 생산 범위까지 명시된 만큼 사실상 기술·가격 세부 조율만 남아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방산·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이행계약을 밀어붙이는 분위기여서, 업계에서는 “2026년부터는 실질적인 생산·납품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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