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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짐승의 시간, 사람의 시간, 영웅의 시간
내면의 짐승을 보지 못하는 영웅은 위험하다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07-26 16:17:05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이십년 전, 지방의회 의장이 되던 날 의회 사무처 직원들과 나눴던 말이 기억난다. 십오륙 명 가까운 직원들과 함께 과장이 내 방에 왔다. “앞으로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일 있으시면 언제든 저나 두 비서를 불러주십시오. 의전차량도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정년을 2년 앞둔 의사과장과 나이 마흔을 갓 넘긴 신임 시의장은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눴다.
 
지방의원이 되기 전, 나는 집에서 글을 썼다. 소설가로 등단한 지 5년이 지나도록 몇 편의 콩트 외에는 제대로 된 원고청탁을 딱 한차례 받았었다. 13평짜리 계단식 아파트 5층에서 두 아들과 살았는데, 돈 못버는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동네에 아동용 옷가게를 차렸다. 그럼에도 나는 속수무책이어서 차라리 정신질환이라도 생기길 바랄 정도였다. 
 
지방의원 출마는 그런 상황의 탈출구였다. 나는 지역을 위하거나 시민을 위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일으켜본 적이 없었다. 출마 선언을 해놓고 보니 지역신문 등지에서 ‘출마 동기’나 ‘본인의 철학’ 따위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런 게 필요한 거였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목숨 걸고 공부해야 목숨 걸지 않을 수 있는
 
2년 후 후반기 의장이 되었을 때, 나는 권력의 단맛과 쓴맛에 혀끝을 살짝 대본 느낌이 들었다. 아침마다 13평짜리 서민 아파트 단지에 검은 세단이 서서 나를 맞았다. 나는 조수석 비서에게 차 밖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하지 말아달라는 지시로서 겸손이나 겸양의 태도를 견지하는 척했다. 말 그대로 ‘척’했을 뿐, 청내에서 시의장이 던진 한마디나 말없는 눈빛의 파장이 어느 정도 무게인지 어지간히 눈치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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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그런 심중이 리더의 허약성으로 평가될까봐 조마조마했다. 내 의견은 늘 불의에 맞서는 듯했고, 상대 의견은 늘 꼼수를 숨긴 술수로 보였다. 나는 곧 정의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안마다 정의로운 이 싸움을 응원은커녕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밖에서 뭘 하고 다니길래 가게까지 사람들이 쫒아오는 거예요?”
 
이십 년이 지났다. 그 당시 내 가슴을 두들겼던 적개심이나 쓸쓸함 따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사라진 감정 자리에 깃발처럼 펄럭이는 생각 하나가 있다. 그때 나는 유치한 소영웅의 시간을 걷고 있었다는 혐의! 자신도 모르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을 지나간 것처럼 낯 뜨거운 소영웅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이를 말인가. 나는 영웅처럼 정의로웠고, 영웅처럼 싸웠으며, 영웅처럼 고독했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니, 정의로움의 대가(代價), 싸움의 대가, 외로움의 대가에 갈급했었다. 나는 아내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싸움판에서 잔뜩 움츠러들면서도 용감한 척했고, 백짓장 같은 가슴으로 내 패거리를 주워담아야 했다. 짐짝 팽개치듯 아무데나 부려버리고 싶은 사안들이 힘겨워서 심신이 늘 삼엄했다.
 
출구를 찾아 도망치듯 찾았던 곳이 소위, 명상 수행터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겠지. 정좌를 하고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제3자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몸과 마음의 과학을 학습하면서 내 안에서 째깍거리는 ‘낯선 시간’을 보았다. 내면에서 어슬렁거리는 짐승의 시간. ‘성욕과 식욕과 수면욕’이라는 수백만 년짜리 유전자의 꿈틀거림을 직면했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좋게 차지하는 짐승의 활동을 모르고 있거나, 모른 척하거나,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위험하다. 노예의 화인(火印)보다 노골적인 신호가 하루 내내 등대처럼 돌고 있기 때문이다. 에둘러서 보거나 가벼이 여기는 것은, 그냥 짐승의 시점에 머물고 싶다는 타협이거나 자포자기다. 우리는 그 옛날 지구라는 행성의 화탕지옥을 건너온 종자다보니 그 진흙탕 속 짐승이 더 친숙하다.
 
사람의 시간 속에서 영웅 코스프레는 그래서 위험하다. 당신의 천부적 자산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꽃으로 ‘합리와 정의와 인기’라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내면의 짐승이 조롱하고 힐난하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짐승처럼 포효하고 진땀 훔치는 이 대사는 또 어디서 던져진 시나리오인가. 하지만, 사람의 시간 속에는 희망도 있다. 자신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스스로 조망해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백척간두에 진일보. 영웅의 시간과 짐승의 시간 사이에 사람의 시간이 놓여 있으니, 참 다행이다. 크든 작든, 시민의 관심 속에서 영웅의 시간을 걷는 당신에게는 더없는 기회다. 내면의 짐승이 흐믓해 할 실습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셔달라’ 하기 전에 ‘저희가 잘 모시겠다’고 하지 않던가. 잘 보자. 당신 앞에 펼쳐진 이 환경은 과연 ‘짐승의 먹이인가, 영웅의 먹이인가.’ 목숨 걸고 공부해야, 목숨 걸지 않을 수 있는 화두 아닐까.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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