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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증거에 대한 결핍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6 00:02:54

 
▲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통계청장 교체로 시작된 문 정권의 예정된 실패
잘못된 정책 바로잡지 않고 ‘통계 장난’으로 눈속임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불통 대통령’으로 추락
건강 공포심에 정권에 대한 심판의 칼날도 무디어져
국민들이 ‘코로나 독재’ 제어해야 민주주의 지킬 수 있어 
 
 
문재인 정치는 요즘 ‘블랙 코미디’로 치닫는 느낌이다. 분명 비극적 상황인데도 눈물보다는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 말이다. 여러 정책 실패들이 누적되어 국민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다가 어느 날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급증하면 갑자기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진다. 다른 건 눈 감을 테니 당장 급한 ‘코로나 불’이나 확실히 끄라는 민심의 표출 아닌가 싶다. 부조리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뒷맛이 씁쓸하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임기를 1년 8개월 남긴 상태다. 지금까지 성적표를 보면 참담할 정도다. ‘마술과 같은 분수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큰 소리쳤던 ‘소득주도성장’, 대통령 집무실에 취임하자마자 설치한 ‘일자리 현황판’으로 상징되는 ‘일자리 정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던 북한 비핵화, ‘평생 살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내세웠던 부동산 정책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실패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2018년 8월 통계청장의 경질이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인사였다. 통계청장은 2년 정도 재임하는 게 관례인데 13개월 만에 교체된 것이다. 그도 노무현 정부 때 인수위 자문위원을 지낸 ‘친문’이었다. 청와대는 “통상 인사”라고 둘러댔지만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게 확실했다.
 
배경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임식 때 전임 통계청장은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취재 기자에게는 “제가 청와대 말을 잘 들은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통계청 노조는 청장 경질에 대해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통계청장에게 정부 통계와 관련된 여러 정치적 요구들을 했고, 결국 마음에 들지 않아 교체한 것임이 이로써 명확해졌다.
 
문 대통령의 입에서 세상 물정과 동떨어진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최근 제조업 분야에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2018년 11월) “우리 경제는 거시적 측면에서 여러 지표들이 견고하다.”(2018년 12월) “부동산 값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2019년 11월) 등이 대표적이다. 세간에 “이건 아닌데”라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책이 작동되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하는데도 문 정부는 엉뚱하게도 통계청장을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국민의 눈을 속일 통계를 내놓으라는 요구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새 통계청장은 통계방식을 이리저리 바꾸는 방법으로 국민이 아닌 정권에 충성했다. 정부 통계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어쩌다 이런 기상천외의 발상을 했을까 지금도 궁금하지만 자신들은 무엇을 하든 옳으며 또 옳아야만 한다는 오만이 크게 작용했을 듯하다.
 
어느새 정부 각료들까지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이 정부 통계 인용의 아전인수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지난주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근거로 강남 요지의 아파트값이 4억원이나 떨어졌다며 어느 단지의 사례를 내세웠으나 해당 아파트는 법인과 가족 사이의 예외적인 거래였음이 드러났다. ‘통계 마사지’ ‘통계 조작’에 이어 마음에 드는 통계만 눈에 보이는 ‘통계 색맹’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문 정부 들어 집값이 11% 올랐다”고 말한 것도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이 문제는 단지 통계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가뜩이나 이념 지향적인 문재인 정치를 더욱 ‘그들만의 리그’ 속에 갇히게 했고 소통이 장기라던 대통령을 ‘남자 박근혜’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불통 대통령으로 추락시켰다. 지난 3년여 동안 ‘현실’이 아닌 ‘상상’에 매달린 대가다. 
 
문재인 정권과 이른바 ‘문팬’들이 보이고 있는 편집증적 행태에 대해 ‘증거에 대한 결핍’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롭고 유능한 ‘문재인 보유국’이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쳐야 하는데 그런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 대한 ‘타는 목마름’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갈증 해소를 위해 억지 통계를 찾아 헤매거나, 어디서 자랑할 만한 꼬투리라도 생기면 자화자찬과 침소봉대를 해대는 게 문재인 정치이자 ‘문팬’ 현상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들이 ‘증거에 대한 결핍’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더 나가버릴 경우다. 그 종착역은 불리한 증거가 아예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사실을 은폐하거나, 증거가 통과하는 길목에다 자기편 감시원들을 세워 놓는 일일 것이다. 최근 여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문재인 정치가 이미 이런 중증(重症)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특혜 군 복무’ 의혹들이 이어지자 문재인 정치는 책임을 묻기는커녕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을 집단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방식도 으스스하고 잔인하다. 첫 제보자였던 당직 사병의 실명(實名)을 현직 국회의원이 공개하고 뒷처리를 극렬 ‘문팬’에게 맡겼으니 말이다.
 
사회적 연결망으로 촘촘히 얽힌 디지털 시대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패악성은 중국 문화혁명 때 홍위병을 능가할지 모른다. 과거 정권들에선 이번 정도의 사안이면 대개 원인 제공자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물러나는 것으로 정리되곤 했으나 이 정권은 참 달라도 많이 다르다. 통계 조작 정도는 여기에 비하면 애교로 비칠 만하다.
 
검찰 법원 감사원 언론 등 사회적 파수꾼 역할을 담당해온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들은 또 어떤가. 말 잘 듣는 충성파를 행동대원으로 앞세우고 제 할 일을 해온 구성원들은 멀리 쫓아버리는 방법으로 권력 분점과 상호 견제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허물고 있다.
 
4.15 총선 승리로 이 정권은 행정부 사법부에다 입법부까지 장악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이들의 ‘코로나 독재’를 방관하다시피 한다. 국민 전체가 이들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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