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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북경의 탁주시 도원결의 유적지는 역사왜곡용

탁군과 고구리, 거리 가까워…하동 해현 살았던 고구리 출신 관우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21 10:18:28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이번 연재에는 한 고조(유방) 6년(B.C. 201)에 발해군과 함께 설치된 탁군(涿郡)의 위치에 대해 알아보겠다.
 
현재 중국은 북경시 서남부를 탁주(涿州)시로 명명하고는 정사 『삼국지』에 없는 내용인 도원결의(桃園結義) 유적지를 조성해놓고 그곳이 유비(劉備)와 장비(張飛)의 고향인 탁군의 탁현이라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유주가 북경 부근이라는 현재 중국의 역사관과 같은 맥락이다.
 
먼저 아래 <한서지리지>의 탁군에 속하는 탁현은 설명문의 ‘东至安次’라는 문구로 보아 발해군에 속하는 안차현의 서쪽에 있었다. 역수가 나오는 염향현은 중산국에 속하는 북신성현의 서북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산국에 속하는 당현의 동북쪽에 있는 망도(望都)현에 요산 즉 요임금의 진짜무덤이 있는데 지금의 산동성 하택(荷澤)시 견성(鄄城)현이다.
 
따라서 삼국지에서 유비와 장비의 고향으로 알려진 탁군의 대략적인 위치는 대군과 마찬가지로 하남성 북부과 하북성 남부과 산동성 서부의 3개성이 만나는 곳 부근이어야 하지만 한참이나 북쪽에 있는 북경 서남부 탁주라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의 역사왜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북경시 탁주시에 조성되어 있는 도원결의 유적지와 동상. [사진=필자 제공]
 
涿郡(탁군),高帝置。属幽州(유주)。户十九万五千六百七,口七十八万二千七百六十四。县二十九:涿(탁),桃水首受涞水,分东至安次(안차)入河。阎乡(염향),易水所出,东至范阳入濡也。并州浸。水亦至范阳入涞。南深泽。范阳。莽曰顺阴。易(역),广望,侯国。(이하 생략)
 
中山國(중산국),高帝郡,景帝三年為國。屬兾州(기주)。應劭曰:「中山,故國。」 戶十六萬八百七十三,口六十六萬八千八十。縣十四:北新成(북신성),桑欽言易水(역수)出西北,東入滱。唐(당),堯山在南。莽曰和親。應劭曰:「故堯國也。唐水在西。」 張晏曰:「堯為唐侯,國於此。堯山在唐東北望都界。」 望都(망도),博水東至高陽入河。莽曰順調。張晏曰:「堯山在北,堯母慶都山在南,登堯山見都山,故以為名。」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 따르면 유비는 한 경제(漢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승의 아들 정(貞)이 B.C. 117년에 탁군의 육성현후(陸城縣侯)로 봉해진 이래 후손들은 탁현에 살며 대대로 주·군(州郡)에서 벼슬을 했다. 유비의 조부는 웅(雄)이고 부친은 홍(弘)이다. 웅은 효렴(孝廉)으로 천거돼 관직이 동군(東郡)의 범령(范令)에 이르렀다. 유비는 어렸을 때 부친을 잃어 모친과 함께 짚신과 돗자리를 만들어 파는 일을 생업으로 했다. 장비 역시 유비와 마찬가지로 탁군에 살던 사람이었다.
 
▲ 하남성 동군과 산동성 사이에 있었던 내륙호수가 발해였다. [자료=필자 제공]
 
동군의 범현 역시 탁군의 탁현을 말하는 것이다. 탁군의 역사연혁에 의하면 위 문왕(조비) 7년(226년)에 탁군이 범양군으로 개명됐다가 서진의 무왕(사마염) 원년(265년)에 범양군을 범양국으로 개칭했다. 이후 북위 때인 386년 다시 범양군으로 바꿨다. 당나라 때인 618년 탁군을 파하고 유주로 개칭했고 624년 탁현을 범양현으로 바꾸었다가 안록산의 난 이후 범양군을 유주라 칭했다가 724년 유주를 범양군으로 바꿔 불렀다.
 
현재 산동성의 서부와 접하는 (예전에 대야택(발해)과 접했던) 하남성의 동단 복양(濮陽)시 일대였던 동군에는 치우천왕의 무덤이 있는 산동성 수장현(현 유성시 양곡현)과 요임금의 무덤이 있는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도 포함된다. 아마도 복양시 동북쪽에 있는 범현이 탁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관우는 유비·장비와는 달리 하동군 해현(河東 解縣) 출신이다. <삼국지 촉서 관우열전>에 “관우(關羽)의 자는 운장(雲長) 본래 자는 장생(長生)이며 하동군 해현(河東解縣) 사람이다. 망명(亡命)해서 탁군(奔涿郡)으로 달아났다. 선주(先主=유비)가 고향에서 의병을 모으니 관우는 장비(張飛)와 함께 그를 위해 적을 막아냈다”고 기록돼 있다.
 
▲ 고향인 산서성 남부 운성역전에 세워진 관우상. [사진=필자 제공]
 
당시 중국에는 한나라만이 존재했기 때문에 위 관우열전의 ‘亡命奔涿郡(망명해서 탁군으로 달아났다)’는 의미는 당시 유비와 장비는 탁군의 탁현에 살고 있던 한나라 사람이었으며 관우는 하동 해현(산서남부 운성(運城)시)에서 살았던 고구리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고구리에서 한나라로 망명한 관우가 얼마 후 탁군의 탁현을 지나게 됐는데 거기서 황건적을 토벌할 의병을 모집하려는 유비와 장비를 만났던 것이다. 즉 당시 고구리 땅 운성과 한나라 땅 하남동부 탁군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 탁군이 지금의 북경시 서남부 탁주시라는 중국의 주장이야말로 역사강역을 넓히기 위해 저지른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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