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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89>

일제(日帝)는 왜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없앴나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희대(稀代)의 미친 사적(史敵)이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1-16 11:19:39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는 상고시대 인류의 시원(始源國)이라 하는 환국(桓國)이 3301년간 다스린 나라이다. 유라시아의 80%에 해당하는 강역을 가진 인류의 조상국(祖上國)으로 동서가 2만 리요 남북이 5만 리가 되는 지역에는 12개의 나라가 있었던 나라인 것이다. 
 
이 환국(桓國)에 이어 상고시대 또 하나의 나라는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이 1565년간 다스린 나라가 환국에 이어 있었음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리고 고대에 2096년간 고조선(古朝鮮)이 있음은 우리 국민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10년 가을부터 그 이듬 해까지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수록되어 있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정덕본(正德本)을 모조리 거둬들여 불태워버렸다. 이 때 총독부 공식 발표는 우리 고사서(古史書) 22만권 이상이라 발표했다.
  
이를 알고 있는 교토대학(京都大學) 조교수로 있던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가증스럽게도 안정복(安鼎福)이 가졌던 삼국유사(三國遺事), 정덕본(正德本)을 입수해 석유환국(昔有桓國)의 국자[(國字)]를 인자(因字)로 바꿔서 사개(詐改)한다.
 
이것을 그의 모교 교토대학에서 영인(影印)해 교토대학 영인본(影印本)이라는 명칭을 붙여 조선총독부의 지원 하에서 한일양국의 학계에 널리 반포(頒布)하고, 그것을 인쇄본으로 해 발매하게 함으로서 삼국유사의 고조선기(古朝鮮記)가 그 시초부터 석유환국으로 되어 있는 것같이 만들어 놓았다. 
 
이같이 바꿔치기 해 사개(詐改)한 것을 고증으로 논문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라는 논문을 그의 모교인 교토대학에 제출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특(邪慝)한 인간이다. 그는 학자가 아니라 하나의 사기꾼이고 기만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되고,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책임자가 되어 교단, 행정작용(行政作用), 간행물 등으로서 소위 단군신화설을 크게 발전시켜 놓았음으로 인해 8.15 광복 후도 이 나라에 그러한 불궤(不軌)한 설이 더 한층 발전되어 정설화해 필자도 이런 역사를 배웠었다. 
 
위와 같이 이마니시 류(今西 龍)는 학자 양심도 없는 거짓을 퍼트리는 사학자였고. 그는 사학자라기보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적(史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오늘은 우리역사가 일제강점기 때 왜곡한 사실들을 극히 일부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고대사도 제대로 모르는 국민이 되고 있다
 
일제(日帝)는 우리 상고사를 없애고 고대사(古代史)도 단군조선의 진실한 사록(史錄)을 후세사람들에게 다방면으로 왜곡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가 않다. 때문에 일제가 역사연조를 2000년이나 깎아 내리고 단군을 하나의 신화로 둔갑시켰음도 모르고 한 때 그대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는 한반도에 있지도 않았던 위만조선(衛滿朝鮮)과 한사군(漢四郡)을 끌어들여 단군왕검의 실존과 고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게 함으로 대륙에서 찬란했던 조선족의 역사를 말살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자고로 북은 한(漢)의 식민지요 남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등의, 말도 아니 되는 설(說)을 내세움으로서 그들의 조선강점을 논리적으로 합리화 하려 했던 것’인데 이런 흐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은 수치다.
 
단국조선은 학자에 따라 그 제후국이 70여 나라로 말하고 있고, 70~120여의 제후국을 거느린 대 강대한 나라이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고조선은 오늘날의 봉천성 길림성(吉林省) 한반도를 그 영역으로 하고 국도(國都)를 영고탑(寧古塔) 또는 상춘지방(常春地方)이라 하고 있는데 규원사화는 길림성 서부 평양에 도읍을 했다고 하고 있다.
 
이 영고탑(寧古塔)은 만주의 역사지리를 가장 정확하게 다룬 [성경통지(盛京通志]는 목단강(牧丹江) 서안(西岸)에 있다고 하고 있다. 즉, 완달산맥(完達山脈;阿斯達) 북쪽 언저리 목단간(牧丹江) 서안(西岸)에 위치한 것이 영고탑(寧古塔)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 경내(境內)에 고성(古城)이 있고, 그 성내(城內)에 궁전(宮殿)의 기지(基趾)가 있다. 그리고 그 지방 사람들이 말하기를 동쪽 서울이 곧 그곳이라는 것이다. 
 
규원사화(閨怨史話)는 국도(國都)를 왕검성(王儉城)이라 하는데 이는 왕검성이 서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평양(平壤)이라는 뜻은 상세치 않으나 도성(都城)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땅을 선택해 태백산(太伯山) 서남(西南) 우수하(牛首河)의 둔덕에 왕검성을 건설했다고 했는데, 지금의 소밀성(蘇密城)이라는 곳이 동말강(涷沫江)남쪽이다. 
 
이 동말강을 소밀하(蘇密河)라고도 하는데, 옛 율말수(栗末水)라 하는 것이다.  
 
(以上은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63面~101面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고조선은 수많은 제후국 거느린 대제국이었다
 
고조선의 존망(存亡)에 대하여는 4000년 전의 일이었으나 자체의 문헌이 없고 고조선의 사기(史記)는 지나인(支那人)들의 붓끝에 따라 그 대상이 호칭과 지역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본 역시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기에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4300여년에 걸친 사람이 사는 세상의 변천, 지명의 개역(改易), 강산의 이변, 침략주의, 사가(史家)들이 작란(作亂)등으로 그 민족명과 지명들이 혹은 연대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바뀌고 섞여, 그것이 유구한 세월의 운무(雲霧)속에서 흐리어 있는 등 그것을 가려내어 올바르게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 관련연구는 먼저 민족적인 연관과 역사 지리적인 방면에서 지나적상(支那籍上)에 나타나는 모든 종족명과 지명들이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이와 같은 선행적인 작업이 받침 없이 고조선 연구에 들어서게 되면, 그 식별이 곤란하며 마침내 가짜를 진짜라고 들고 나서는 과오에 빠지게 된다. 지금 가르치는 역사가 그 예이다.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으로 부여(夫餘), 예맥조선(濊貊朝鮮), 낙랑조선(樂浪朝鮮)등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제후국이 있었음은 외국사가들도 말하고 있다. 이 제후국 중에 부여는 남만주의 예지(濊地)에 이거(移居)하였는데 이 예(濊)는 요동반도(遼東半島) 이서(以西)~만리장성 동편에 위치해 있는 광녕평야(廣寧平野)지방을 말하고 있다. 
 
문헌비고(文獻備考)는 산해관이서(山海關以西)~천진구(天津口)까지에는 백하(白河), 난하(灤河)를 비롯한 18개의 크고 작은 강하(江河)가 흘려내려 발해(渤海)로 들어가는 등 이 지대 또한 광녕평야 못지않게 물이 많고 산색이 아름다운 대평야지대인 것이다
 
인류문명이 강에서 발생하듯이 고조선 시대에도 강을 끼고 대소부족국가가 생성했다. 그리고 이 무녕지방(撫寧地方)에 위치한 람후(藍候)의 조선(朝鮮)을 [조선(朝鮮), 예맥조선(濊貊朝鮮),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 칭했다고 하고 있다. 
 
이 낙랑조선은 이미 밝힌바 대로 한서(漢書)권 28에 나온 1237년부터 있는 국가이나 지나(支那)의 사가(史家)들은 예맥조선과 낙랑조선을 사서(史書)에서 지웠다. 그러나 1000년 이상이나 이어온 나라임이 밝혀지고 있다. 
 
지나와 일본은 산해경(山海經) 권지(卷之 四 海內經) 기록을 내세워서 낙랑조선이 동해안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 이름 조선(朝鮮)이 있으니 지금 낙랑군이라 하여 왜곡하나 낙랑국과 낙랑군은 이미 밝힌 대로 엄연히 연대와 지역이 다루고 제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 역사는 99%가 대륙사이다. 환국시대나 배달국시대는 물론 삼국시대도 우리의 영역은 대륙이고 역사 역시 대륙사이다. 삼국사 98%가 한반도에 없다. 우리역사연구원에서 오재성 원장과 박완서 원장을 비롯한 윤진영, 서수열 선생등 많은 연구가들이 연구 결과 삼국사 95%는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지역임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낙랑국도 서기전 1237년~32년까지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서 있었고(漢書卷28), 고조선의 일부이었음이 판명할 수가 있었다. 이를 김일연이 묻어버렸고, 후한서에 낙랑국과 낙랑군이 있는 것도 덮어버렸다. 3000년 전 예맥조선도 1000년 간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을 우리는 아예 기록도 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그리스보다 300년 앞서 서기전 1728년 하무라비왕이 즉위해 [하무라비 법전]을 위대하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고대 세계국가들에게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전수한 것들은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세계 5대문명이 우리 선조에 의해서 이뤄진 것도 모른다. 
 
우리는 서기전 3897년 신시(神市)에 도읍한 배달국시대부터 역법(曆法)을 만들어 365일이 1년임과 녹도문자를 만들고 서기전 3500년경에는 슈메르인 메소포타미아에 진출해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도시국가가 분립하고 있는 주류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서기전 2706년 배달국 자오지환운(慈烏支桓雄)이 즉위하기 이전 서기전 2679년부터 창과 투구 등 쇠로 만든 창과 투구 병기(兵器)로 헌원(軒轅)과의 73회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치우천황(蚩尤天黃;皇)의 치적(治積)도 모르는 민족이 되어 있다.
 
고조선 제2세 부루 임금 때인 서기전 2238년 우리는 도량형(度量衡)을 관청의 표준으로 맞추고, 서기전 1882년에 금강율령을 선포하고 서기전1420년 닥나무껍질로 한지(韓紙)를 만들어 문화발전에 기여하며 세계문명을 이끌고 세계최초 금속활자로 책을 저술하는 등 세계 최고의 역사와 지능을 가진 민족임에도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언제 우리는 식민사관의 마약에 취해 있는 이 상태에서 벗어날 것인지! 우리 역사가 단군시대부터라는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언제 제 정신을 차릴 것인지! 2021년 새해를 맞으며 우리나라 역사부터 재대로 바로서야 이 나라가 바로 섬을 다시 말하게 된다. 그날은 역사가 바로 세우고 나갈 때 반드시 올 것 확신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三國遺事)에는 한반도 역사가 없다.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정희철, [중국은 없다.]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유우찬, [한국사의 실체].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李丙燾 譯註, [三國遺事],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3].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鹿島 昇, [韓半島のうがや王朝史)] 讀賣新聞大阪本社編,[騎馬民族の謎].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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