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10년 걸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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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31 06:30:30

어떤 여행은 다 마치기까지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때 여행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오래전 프랑스 파리 교외의 퐁텐블로 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파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은 1814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 가기 직전까지 머문 곳이다.

얼마 전 모 잡지사로부터 퐁텐블로 성에 대해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10년도 더 전의 여행이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일을 맡게 되었다.

퐁텐블로 성은 700년간 프랑스 궁전 역할을 했다. 창덕궁의 300년 궁궐 역사를 두 배나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 성은 프랑스 군주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나폴레옹도 포함되어 있었다.

1814년 나폴레옹은 퐁텐블로 조약에 따라 황제 포기 각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그는 정들었던 퐁텐블로 성을 떠나면서 자신의 군대와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친위대를 떠나보내던 광장에는 훗날 ‘고별의 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가 궁에서 뜰로 내려서던 계단은 말발굽을 닮은 독특한 구조로 ‘페리슈발(말발굽)’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 따라 ‘고별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퐁텐블로 성의 그림 같은 정원이나 그 안의 수많은 전시관은 다 잊어버려도 페리슈발과 고별의 뜰만큼은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도 그런 장소를 본 기억이 없다. 못 보았을 리가 없는데 자세한 스토리를 모르니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다시 간다면 사진도 찍고 계단이며 광장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 올 것이지만 시간과 재화가 한정된 내 형편에 또 다시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다. 여행을 하고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그 답답함과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퐁텐블로 성을 찍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시청하며 기억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반복해서 돌려 보니 조금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아니 마침내 나는 페리슈발과 고별의 뜰을 기억해 냈다. 기억을 재정립했다고 하는 게 옳다.

그렇게 나는 뒤늦게 퐁텐블로 성으로의 여행을 완성하게 되었다. 건성으로 둘러본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꼼꼼히 보고 있자니 이제야 제대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상을 먼저 보고 나중에 비행기를 탔으면 더 좋았겠지만 늦게나마 제대로 둘러보게 된 게 어디인가. 원고 청탁이 없었으면 영원히 반쪽 여행으로 남았을 ‘퐁텐블로 성’이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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