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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래된 건물도 시작이 있고 아무리 높은 빌딩도 끝이 있다. 영원한 건 없다. 단 하나 영원한 게 있다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건물의 시작과 끝에는 돌이 있다. 모든 건물은 머릿돌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건물 하단에는 날짜가 적힌 머릿돌이 박혀 있다. 정초석·주춧돌·기초석이라고도 하는 머릿돌에는 기공일이 기록되어 있다. 건축 기술자는 이 머릿돌을 중심으로 건물을 올린다. 머릿돌이 무너진다는 것은 건물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건물은 죽어 표지석을 남긴다. 서울 시내에는 320여 개의 문화 표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OO터’라는 제목과 함께 어떤 장소였는지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다. 그중에는 관청도 있고 역사적 인물의 생가와 거주지도 있다.
서울을 가로로 구획 짓는 동대문-서대문 라인만 따라 걸어도 근·현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안내하는 수많은 표지석과 만날 수 있다.
△동대문전차 차고터 △경성궤도회사터 △최시형순교터 △우미관터 △육의전터 △한성전보총국터 △동양극장터 △서대문정거장터 등 시대변화와 도시개발에 맞물려 사라진 수많은 건물들….
표석을 눈으로만 훑어도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은 이 돌들이 그 시절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기 때문이다. 만약 이 표지석들이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시트지나 천을 이용한 인쇄물이었다면? 사실을 전달하는 데 문제는 없었겠지만 돌과 같은 무게감을 갖기는 힘들었으리라.
돌은 활성이 전혀 없는 무기물이지만 개중에는 나무·짐승 같은 유기물이 바탕이 된 것도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몇 만 년 세월을 거치며 차차 굳어져 돌이 되는 것이다. 혹은 대지의 토악질을 통해 저 밑에서 밖으로 분출된 것들이며 또는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의 파편들이다.
런던 소호 출신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시간 속에 영원을 간직하라’고 노래했다.
돌에는 몇 억 년 지구와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일상에서 돌은 그저 발에 채이는 하찮은 ‘돌멩이’거나 축대를 구성하는 개성 없는 네모난 ‘돌덩어리’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하찮은 돌은 없다. 알고 보면 그렇다.
임요희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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