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51] 싸워 보지도 않고 죽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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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18 06:30:20

사는 게 죽기보다 괴롭다면 왜 사는가?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 고통도 길진 않을 걸세.”

노인은 잡아먹기 직전 생쥐를 데리고 장난치는 성질 나쁜 고양이 같았다. 실뱀처럼 뻗어 가는 뿌리들이 온몸을 장악한 것인가?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인가? 결국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은 꼴이었다. 병원을 찾아다니며 애태웠던 시간과 이곳까지 달려오며 품었던 희망조차 억울했다.

“유전 때문입니까? 바이러스입니까? 스트레스가 원인입니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이대로 삶을 끝장낼 수는 없었다. 왜 죽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글쎄.”

노인은 앙상한 두 손바닥으로 마른 얼굴을 문지르며 피곤하다는 듯 의자 깊숙이 등을 파묻었다. 그의 망설임 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가 숨어 버린 두더지처럼, 나는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았다.

“증상을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치료법도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노인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의지는 재빨리 소멸해 버렸다. 슬픔을 닮은 절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인은 자신의 체념을 지지한다는 듯 강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치료한 적 없다는 것인지, 할 수 없다는 것인지, 할 수 있어도 안 하겠다는 것인지 해석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삶을 정리하고, 가족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생에 대한 연민과 죽음에 대한 증오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내겐 6개월씩이나 정리할 삶도, 죽음을 지켜 줄 가족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싫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죽긴 싫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게 소리쳤다.

“죽으려고 했던 것 아닌가?”

노인의 시선이 빤히 내 목을 가리켰다. 나는 멈칫, 손으로 목을 가렸다. 조금 전 마룻바닥을 뒹굴다 등을 대고 누워 숨을 고를 때 목을 맨 흔적을 보았으리라. 살려 주십시오! 나는 노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해도 나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싶었다. 살 수만 있다면 나 또한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에 실패한 걸 들켰다는 사실이 목숨을 구걸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무엇보다 생에 집착하고 있는 내가, 지켜야 할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면서도 이토록 강렬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내가 비굴하게 느껴졌다.

“할 수 없네, 나는. 그래서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더 지독하지.”

노인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롭다면, 왜 살고 있습니까?”

“이곳이 내 지옥이거든.”

자신이 평생 지켜 온 신념이라는 듯 노인은 소파 팔걸이에 올려 두었던 양쪽 손을 한껏 움켜쥐며 말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몸짓은 난 아직 살아 있다는 포효였다. 살아 있고 싶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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