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하늘은 무정(無情)하고 인간은 유정(有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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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5 06:31:00

제2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응징·심판, 이런 단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선거전에서 국민은 오랜만에 참여자가 돼보았다. 투표율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집 MZ세대도 사전투표일을 활용하여 투표에 참여했으니. 한동안 시끄러운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승자는 밖으로 시끄럽고 패자는 안으로 시끄럽고.

아주 적은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탈락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어떤 주자는 당 탓을 할 것이고 어떤 후보는 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옆 동네 ‘꼴뚜기’를 흘겨볼 것이다. 올해 운이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탈당하고 나니 울타리가 없어졌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고, 획일적인 지역색을 혁파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속 시끄러운 패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하고 연구 분석하게 된다. ‘자연도태’된 이들의 아픔이다. 자연도태가 진화론의 용어이고 생물학의 이론인데 왜 이 경우에 사용하는가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인위도태’가 오히려 적절한 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 또한 지구 생태계라는 자연 속에 살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자연도태는 적절한 표현이다.

세련된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인류는 모든 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멋진 빌딩이 지어진 도시와 주변의 공원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실상은 우리가 산과 숲을 침범하여 건물을 짓고 도시를 형성한 것이다. 우리가 애용하는 고속도로와 철도 역시 나무를 밀어내고 산의 심장을 폭파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은 자연을 ‘환경’ 정도로 생각해 왔다. 분별없는 개발이 가져온 문제가 드러나자 그제야 ‘생태’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이 좀 든 것이다.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동물의 삶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찾아 본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치열하고 무심하게 산다. 육식동물은 먹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고 몇 번의 사냥 실패가 이어지면 굶어 죽는다. 초식동물은 포식자를 경계하며 살지만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다가 사자와 악어에게 몸을 바친다.

최상위 포식자들은 안전한가? 새끼나 덩치 작은 암컷 맹수 또한 가끔 하늘에서 덮친 맹금류의 먹이가 된다. 드문 일이지만 독수리가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암사자를 움켜쥐고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포착된다. 암사자는 엄청난 발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땅 위에서 아무리 조심하고 주위를 살핀다 해도 갑자기 들이닥치는 ‘스텔스 폭격기’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문명 속 인간은 자연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갑자기 날씨가 왜 이리 더운가, 3월에 우박이라니 하늘이 정신이 나갔네, 웬 비가 이리 많이 내리지? 영하 20도라니 이럴 수가! 동물은 자연에 원망·불평을 못하지만 인간은 못마땅한 것 투성이다. ‘잘난’ 인간들은 급기야 ‘자연재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냈다.

스스로 ‘자연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서 조금 어긋나면 ‘이변’, 많이 벗어나면 ‘재해’라고 지적질하는 것이다. 지금도 자연과 생태를 인간에게 최적화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처럼 ‘거만한’ 인간이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점점 망각하고 있음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났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모든 동식물의 회귀가 그렇듯 인간의 돌아감도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생태계 속 인간 또한 자연에 의해 선택되거나 도태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봄날 무수한 씨앗을 만드는 새초롬한 민들레나 도시를 가득 메운 흔해 빠진 비둘기나 초원에서 큰 갈기를 자랑하며 어슬렁거리는 수사자와 우리 인간이 다를 것이 없다. 생존과 경쟁의 무심한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개체일 뿐.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여 전략을 잘 세운 지혜로운 개체는 살아남고(자연선택), 그렇지 못한 개체는 죽는다(자연도태). 생태계라는 자연은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무정하고 무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