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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건 아마 고위 당직도, 차기 공천도, 탄핵소추권도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우주비행이다.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든 스페이스엑스(Space X)든 우주여행 왕복티켓만 끊어 주면 된다. 영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의 제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우주를 보여주고 싶다. 그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콕스는 지구 밖에서 내려다보는 경험, 이른바 ‘오버뷰 이펙트(Overview Effect)’가 인간의 인식을 결정적으로 전환시켜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주비행사들 중에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정치적 갈등, 민족적 대립, 경제적 이해관계 같은 건 한낱 허깨비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하는 이가 많다. 그들의 눈에 비친 지구는 광대한 우주 공간 속 작디작은 하나의 푸른 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전히 이 지구 위에서 정쟁을 벌이고 있을까. 왜 국회는 날마다 파행과 갈등, 단독 통과, 표결 거부로 점철되고 뉴스 헤드라인은 ‘거짓말’ ‘망언’ ‘책임 회피’ 등의 표현으로 도배되는가. 대한민국 정치인 대다수가 오버뷰 이펙트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들의 시야는 여전히 ‘우리 당’ ‘우리 계파’ ‘우리 공천’에 머물러 있다. 한마디로 지구가 아니라 ‘구’, 지역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국민이 그런 정치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고통을 통한 성장’이라는 귀한 경험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인생이 고통 아니면 무료함의 반복”이라면 우리의 정치판은 단 한 순간도 무료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매일 ‘갱신되는 고통’을 제공한다. 덕분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단단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인들의 무능과 오만, 위선과 기만이 우리 국민을 철들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세계의 리더들이 지구를 우주에서 바라보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는 콕스의 말은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정신적 개안(開眼)을, 일반 국민에겐 탈진의 면죄부를 약속한다. 정치가 사소한 것임을 인식하는 순간, 그 사소함에 휘둘리는 삶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키듯, 우주적 관점은 정치인을 괜찮은 인간으로 되돌려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이 제안은 우리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치인들을 계속해서 지구에 붙잡아 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우주로 보낼 것인가. 국민의 혈세로 만든 공적 예산을 우주비행 티켓에 쓴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그 돈으로 유지되는 각종 위원회와 정책 포럼, 해외연수, 세비와 그들이 누리는 다양한 혜택 등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어차피 세금으로 ‘무료할 틈 없는 고통’을 구입해야 한다면, 차라리 ‘정치인의 우주적 각성’을 구입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이쯤 되면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피카소가 혼돈을 색으로 그렸다면 이들은 혼돈을 법안으로 쓰고, 회의를 보이콧하며 감정을 연기한다. 그것이 주는 고통은 리얼하고, 전시 기간은 무기한이며, 감상료는 세금이다.
쇼펜하우어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국민은 지금 정치인들 덕분에 가장 극적인 형식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며 우리는 묻는다. “오늘은 또 어떤 고통으로 하루가 채워질까?” 그리고 무료하지 않은 삶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제안컨대, 정치인들을 우주로 보내자. 우리가 고통을 통해 성숙해야 한다면 그들도 우주를 통해 각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우에 따라선 편도 티켓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박선옥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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