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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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출판업계에서 25년간 일해 온...'))
▲ 소재두 대표(도서출판 논형)
“책은 인류 사회의 공공 매체, 공통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과 연구, 지식의 소산으로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뉴스와는 달리 긴 호흡을 가지고 있죠. 보관되기만 하면 도서관을 비롯해 강의실, 토론장 등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으니까요”
고등학생 시절 문집 발간이 ‘첫 작품’
전형적인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소 대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전라북도 남원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 곁을 떠나 전주에서 하숙을 했다. 당시 그는 막연하게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 꿈이 있듯이 저 또한 시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렀지만요. 고등학교 졸업 전에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글 재주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시와 소설을 써서 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역사와 사상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그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고.
“동아시아 사상에 대한 특별한 느낌 때문에 성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때 대학생들이면 누구나 그랬듯이 데모를 위해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제도권 안에서의 교육은 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앞길을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순국’ 잡지 제작 참여, 출판업에 관심 가져
그가 처음 출판일을 접하게 된 것은 1988년의 일이다. 졸업반이었던 그는 단재 신채호 선생 아들이었던 신재범 씨를 비롯한 몇몇 독립 운동가들이 속한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돋보기를 대고 ‘순국’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복원, 세대를 초월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잡지였다.
“200페이지 분량의 잡지였는데 이 일을 도와드리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특히 식민지 시대의 일본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각종 진보학회 그룹들의 전문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출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그는 체험하고 공부하는 한편 다른 이들과 대화를 통해 ‘진실된 기록과 역사를 가진 나라가 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 그 한 방편이 언론과 출판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1년 반 정도 잡지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어느 정도 틀을 마련한 그는 본격적으로 출판 업계에 뛰어 든다.
한울출판사에 입사…열정으로 청년기 보내
▲ 출판한 책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소 대표의 사무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책만 출판한다는 주변 지인들의 평가가 있을 정도로 기록의 가치가 큰 양서와 학술서 출간에 사활을 건다.
1989년 6월, 당시 8명의 직원이 있었던 한울출판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인문사회 분야의 국내 자료는 물론 외국 서적도 검토하고 출판 기획과 영업 업무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주말도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출판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될까’라는 고민에 몰입해 있던 그는 열정을 가지고 일에 빠져들었다.
“DJ 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런 것 자체가 제 자신에게는 고민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신간 정보를 봐야했고 고민하다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매료돼 있었죠”
그가 고민한 기획 중 출판으로 결정되는 것은 소수였지만 그는 12년간 이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한다. 청년 기간의 대부분을 바친 셈이다.
지인 도움으로 2년간 일본 연구 몰두
▲ 출판계에 몸 담은 소 대표의 지난 25년은 돈과는 거리가 먼 인생적자의 시기였다. 하지만 출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천직이라고 소 대표는 말한다.
소 대표는 한울출판사가 안정되고 그 자신도 심신이 지쳐갈 무렵 잠시 쉬기로 결심하고 3개월 정도 일본 배낭여행을 계획한다. 재충전의 시간을 갖으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 여행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는 일본 여행 중 필자이자 연구진으로 활동해 친분이 있었던 일본 게이오대학 고바야시 요시아키 교수를 만나게 됐다. 고바야시 교수는 돌연 그에게 게이오대학 방문 연구원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고바야시 교수는 ‘일본을 잘 알기에 3개월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며 초청을 해 줄테니 장기간 와 있을 수 있냐’고 했어요. 연구원 자리는 박사나 교수급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에 학사 학위만 가진 저에게는 파격적인 제안이었죠”
1년간 연구원 자격을 얻게 되면서 소 대표는 일본어를 철저히 공부하는 한편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고 일본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1년이 지나자 고바야시 교수는 그에게 연구원 자격을 1년 더 연장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2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출판사를 설립해 일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었죠. 센세이셔널한 단권의 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로 엮어 자세히 일본에 대해 다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2003년 도서출판 논형 설립
2002년 12월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이듬해 3월 지금의 ‘도서출판 논형’을 설립하게 된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대로 ‘일본 근대 스펙트럼 시리즈’ 총 30권 가운데 현재까지 12권을 발간했다.
“일본에 대한 기획방향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의 천황제로서 일본 사회 전 분야를 둘러싸고 있는 핵심 코드입니다. 두번째는 오키나와 아이누족 문제인데 이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의 천민 부락민 형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미군기지 문제와도 연결돼 있죠”
“마지막으로 일본이 제 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모티브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 3가지 큰 틀을 가지고 이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또 소 대표는 2005년부터 ‘시민사회’ 시리즈를 기획해 오고 있다. 연구자들의 시각에서 본 시민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현장에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모습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이나 일본 시민운동가의 대부격인 요코다 카즈미 등 시민운동가들이 현장에서 고민하고 경험한 부분을 중심으로 치열한 투쟁 과정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는 수 십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지만 현재 한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결과를 모방하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비인기 도서 출판에 경영 어려워…출판문화대상 받기도
도서출판 논형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출판사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출판하는 책들도 학술 분야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수요층도 다양하지 않다.
“적은 자본으로 운영되다 보니 유능한 인력을 데려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1인 3역을 감당하고 있어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사무실에 나오지 않은 날은 4일 정도입니다. 지난해는 기획했던 것도 감당하지 못해 출판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을 만큼 힘든 해였어요”
▲ 제1회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을 차지한 ‘동아시아 언론매체 사전’
“비교적 판매가 잘 되는 책에서 나온 수익을 다시 투자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획하는 분야는 대형 출판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죠. 그동안 구상했던 기획을 한 권 한 권 책으로 펼쳐낸다는 사실에서 동력을 얻고 있어요”
소 대표는 출판사를 운영해 오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이 다루지 않는 분야를 맡았다는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이런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지난해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제정한 ‘제 1회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에 유수의 대형 출판사들을 제치고 논형 출판사가 출간한 ‘동아시아 언론매체 사전’이 선정된 것이다.
“무심코 신청을 했는데 예기치 않게 수상을 하게 돼 부끄럽기도 합니다. 특히 이는 논형 출판사가 일군 결과물이 아니고 연구자들의 노력이 바탕이 된 작품이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어린 학자들의 논문 읽는 것이 기쁨입니다”
소 대표는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현 주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연구자를 배출해야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10년 동안 공부해야 하지만 이후에도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려운 공부를 하겠습니까. 특히 대학 도서관도 문제입니다. 전국적으로 4년제 대학이 200개가 넘는데 학술서는 1년에 50권도 채 팔리지 않는 실정이죠”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요즘 그는 나이 어린 학자들의 논문을 입수해 읽는 기쁨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곧 서울대 중국철학연구자가 쓴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어린 석학들이 공부를 해서 논문을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쁩니다. 이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사회가 발전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죠. 이들이 당대에 대학자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 대표는 연말까지 논형 출판사 홈페이지를 제작할 계획이다. 자사의 책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취지다.
“국내에 있는 수천 개의 출판사가 분야가 다르고 규모도 천차만별이지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고민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나온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1주일에 한 번이라도 부모와 자녀가 손잡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모습이 일상적 풍경으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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