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영욕의 역사 ‘테헤란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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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된 모습이 작금의 한국 경제를 보는 듯

손채윤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2-08-06 02:35:36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이 1977년 서울시와의 자매결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당시 구자춘 서울시장과 고람제이 닉페이 시장은 자매결연을 맺는 자리에서 각국의 수도에 서로의 수도명을 딴 거리를 만들자는 데 합의하게 된다.

현재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약 4km 구간의 ‘테헤란로’라는 도로명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이란에는 테헤란시 메라트 공원 인근 길을 ‘서울로’로 부른다고 한다.

이후 강남개발과 함께 테헤란로는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금융기관들이 속속 들어서더니 테헤란로는 금융메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증권사, 투신사, 종금사 그리고 지방은행 등 부실 금융기관들이 영업정지를 맞고 퇴출되면서 하나 둘 금융회사들이 테헤란로를 떠나갔다.

2000년 전후로 금융회사가 떠난 그 자리에는 벤처·IT기업들이 들어섰다. 가히 벤처 붐이었다고 할 만큼 벤처·IT기업들의 거품이 빠지기 직전까지 줄잡아 1500개 기업들이 테헤란로에 둥지를 튼 것으로 전해진다.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 안철수연구소, 한글과 컴퓨터, 엔씨소프트 등이 당시 테헤란로를 거점으로 사세를 키워 나간 스타 벤처기업들이다.

또 이 시기에 거품이 빠진 벤처·IT기업들이 가산디지털단지로 옮겨 갈 즈음 그 자리를 외국보험사들이 차지하게 된다.

미국계 생명보험회사인 푸르덴셜생명, 네덜란드계 ING생명보험회사 등이 테헤란로에 본사 뿐 아니라 집중적으로 이곳에 지점과 고객센터를 오픈하면서 테헤란로는 다시 활황을 맞았다.

특히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외국 보험회사로 대거 흡수되면서 벤처거품이 빠진 테헤란로는 보험회사 세일즈맨으로 활기를 찾아 갔다.

그러나 보험회사의 영업환경 등이 악화되면서 주춤하는 사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국내 대기업들이 모여들었다. 현대모비스, GS그룹, 동부 등이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이어 테헤란로 서쪽 끝단이긴 하지만 삼성그룹도 강남역 삼성타운으로 입주하면서 최근에는 대기업 들이 테헤란로를 장악하게 됐다.

기업들이 테헤란로를 찾는 이유는 교통편의, 입지조건 등 업무환경도 있지만 강남의 한 중심에 본사나 지점이 있어야 기업 브랜드 관리에 보탬이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테헤란로에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고용인구가 늘어나고 출퇴근 직장인 등 유동인구도 많아짐에 따라 상권도 크게 발달했다.

그래서일까?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유명 커피숍들이 속속 이곳을 찾아 들어섰다.

수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계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도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력과 유동인구에 따라 커피 전문점 매장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시효과를 위해 매장을 유지하는 곳도 있었다는 얘기다.

한 보도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스타벅스커피, 할리스커피,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등 커피 전문점 매장 수는 3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강남구에만 246개가 몰려 있다.

특히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테헤란로에는 대로변 1층에만 커피 전문점 53개가 입점해 있다. 양쪽 대로변으로 130m마다 1개꼴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카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강남역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 테헤란로 상권은 최근 공실이 늘어나고 권리금이 떨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1층 30평 기준 보증금 3억~5억원, 임대료 1500~2500만원에도 2010년까지는 은행, 커피전문점 등이 앞 다퉈 입점경쟁을 벌였을 만큼 전성기를 누렸지만, 최근 들어 임대료 수준은 횡보를 걷는 반면에 권리금은 떨어지고 공실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2억~3억원씩 붙어 있던 권리금은 대부분 절반 이상 하락했거나 아예 없어졌고 역삼, 선릉, 삼성 등 역세권 일대에서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권리금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테헤란로 입점을 검토하는 신규 프랜차이즈의 경우 대부분 1,500만원 수준을 임대료 최대 상한선으로 보고 있어 공실을 채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이 테헤란로 상권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에 대해 수익형부동산 정보 분석기관인 에프알 인베스트먼트는 △최근 기업체가 테헤란로를 떠나 판교를 비롯한 비강남권으로 이주하고 있고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의 약점으로 꼽히는 주5일 근무제 영향으로 비싼 임대료를 감당키 어렵게 된 점 △그리고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입지를 선호했던 인식이 바뀌고 이와함께 적자를 내는 매장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동부하이텍, 롯데카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S 등 대표적인 테헤란로 기업 본사가 테헤란로를 떠나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높은 임대료를 내더라도 강남을 찾던 마케팅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35년 동안 금융과 비즈니스의 메카로 그 영화를 구가했던 테헤란로.

그 곳은 강남권 개발의 온갖 영욕을 상징하기도 하고, 한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을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기업체가 대거 이탈하면서 상권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경기침체에 들어선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듯해 씁쓸함 마저 든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성장동력 산업체로 꽉 채워진 테헤란로의 변신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손채윤 기자 scy7320@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