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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에 대한 국민적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소위 ‘국민차(National Car)'로서 한국 경제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한국차가 주력시장에서 가파르게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는 반토막 이하로 판매가 요동을 치고, 미국 시장에서도 두 자릿수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인도 등 비(非) 주력시장에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정도이니 다른 완성차 경쟁업체에 비해 수익률도 급감하고 있다.
올 상반기 현대차는 영입이익률이 5.4%로 9위, 기아차는 3.0%로 12위에 그쳐 경쟁차들에 비해 순위가 뒷걸음질 쳤다. 수출이 부진하다 보니 국내 생산량도 2012년 239만대를 피크로 향후 1∼2년 내에 200만대 이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5∼6년 전만 해도 현대차를 배워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던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이 이제 완벽한 역전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차가 주력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차는 중국, 미국 시장에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차의 판매 부진이 상대적으로 일본차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 토종 완성차 메이커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한국차 벤치마킹에 성공한 이들이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차의 대항마로 성장,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고급 차종을 제외한 중저가 차종에서 중국 토종의 진출이 뚜렷하고, 특히 SUV 차종은 중국 브랜드가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기까지 하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과 맞물려 현지 소비자들의 한국 차종 구매 기피 현상도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양국 무역불균형의 대표 상품으로 자동차를 거론하는 등 이래저래 사면초가에 처하고 있는 양상이다. 가장 잘 나갈 것 같은 한국차가 최근 1∼2년 사이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 시장에서 리콜 사태로 고전하던 일본 자동차의 자존심이자 원조인 도요타는 막강 무기인 지속적 ‘원가절감’으로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상품기획 단계부터 원가 계산을 하면서 양산 단계에서는 재고를 최소화해 낭비 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한다.
반면 현대차는 어떤가? 가격 대비 품질이 낫다는 장점 하나로 버텨온 현대차를 비집고 중국산이 치고 들어오면서 설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나친 자만과 낙관론으로 원가절감, 연구개발, 디자인 개선 등에는 소홀히 하면서 중국, 미국 등에서 공장 증설에만 치중한 결과가 빚어낸 이미 예고된 참극이다.
현대차는 여전히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수직계열화’에만 몰두했다. 외부 아웃소싱을 통해 소프트웨어 등 IT 기술을 접목하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트렌드와는 반대로 역주행하면서 만들어진 엄중한 경영의 실패다. 글로벌 완성차 경쟁업체들이 합종연횡을 하는 판에 홀로 계열사만 붙잡고 달콤한 과거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경쟁자들은 이미 출발선을 떠난 지 오래 전이다.
일본의 부활, 중국의 ‘자동차 굴기’로 완벽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
설상가상으로 친(親)노동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대·기아차의 입지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금년 임금협상이 아직 마무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조의 파업은 계속되고 있고, 법원의 통상임금 지급 판결 등까지 겹쳐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국면이다.
우리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9200만원으로 일본, 독일의 8000만원 수준보다 높다. 반면 생산성은 이들보다 떨어지고,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대비 소홀로 미래 성장 잠재력도 경쟁자들보다 열세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다른 경쟁국 업체들보다 노동시장 유연성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일본·유럽·미국 등에서는 허용되는 비정규직 파견이 불가능하고, 해고에 관련된 규정도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파업 시 대체근로 파견도 도지 않으며, 근로자의 사업장 내 전환배치와 공장 간 물량 조정도 노조와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 임금은 최고 수준인데도 노동시장은 갈수록 경직화되고 있어 한국에서 자동차를 제조할 이유와 명분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GM의 한국 철수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올 들어 국내 판매가 두 자릿수 이상으로 급감하고 있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GM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약 80%를 처분할 수 있는 시기가 올 10월 해제된다. 경영권 유지를 약속한 15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판매 부진에 더해 임금, 노조, 시장성 등 어느 하나도 한국 내에서 공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한국GM이 갖고 있는 4개 국내 사업장의 1만6000명과 협력업체 직원 30만명이 당장 실업이라는 고용불안 상태에 당면하게 된다.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 업체의 ‘탈(脫)한국’도미노로 확산되지 않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데에 더해 기업에 대한 배려는커녕 옥죄기를 하는 상황에서 이들과의 대화나 설득, 혹은 압박으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글로벌화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의 둥지에 모국(母國)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익이 나는 곳에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이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엄습하고 있는 위험을 감지하면서 이는 마치 한국 제조업의 또 다른 미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심히 걱정이 된다. 주력산업에 대한 중국의 추격이 철강, 조선, 가전, IT에 이어 자동차산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동남아, 중동·아프리카, 중남미는 물론이고 한국 시장에도 중국차의 수출 공습이 무섭다.
중국의 ‘굴기(崛起:우뚝 일어서다)’가 자동차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지리자동차가 스웨덴의 볼보, 영국의 로터스에 이어 말레이시아 국민차 ‘프로톤(Proton)’까지 삼켰다. 이제는 미국의 빅3인 크라이슬러마저 눈독을 들이고 있을 정도이다. 중국차의 한국차 점령‘이라는 중국 정부의 시나리오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이 무너지면 완성차업체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의 원천이자 경쟁력 있는 중소 자동차부품 업계가 동시에 무너진다. 소득확대, 격차해소, 적폐청산 등도 절실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죽어가는 제조업과 기업을 살리는 것이다. 잘못하면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산업까지 중국에 먹힐 수 있다는 경고음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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