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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일기

[신간] 미지의 일본을 다녀온 조선통신사의 기록

임진왜란·정유재란을 마음에 묻고 써내려간 생생한 경험담

문용균기자(ykmo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12-21 19: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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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엄, 해사일기, 논형, 3만원
이 책은 조엄의 ‘해사일기’를 단순한 번역을 넘어 치밀한 고증과 사진으로 담아 냈다. 조엄은 1719년(숙종45)~1777년(정조1)동안 산 인물로 1752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교리 등을 거쳐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이후 그는 1763년 부재학으로 있을 때 조선통신사의 정사가 돼 일본에 다녀왔다. 귀국길에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지고 동래로 와서 제주도에 재배하게 했다. 이어 이조판서를 거쳐 1770년에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돼 조세의 적폐를 해소했으나 1776년 홍국영의 무고를 받아 파직됐고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됐다. 그는 유배지를 김해로 옮긴 뒤 그곳에서 병사했다.
 
책은 크게 에도(현재 도쿄)를 향해 가는 ‘사행길’ 부분과 한양에 돌아오는 ‘귀국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그 속에 조선통신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일본의 요청을 마지못해 승낙한 조선은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낸다. 이 조선통신사 교류에 대한 두 나라의 목적이 초기에는 서로 달랐다. 조선은 전쟁 이후 피랍된 조선 포로를 데려오는 것과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일본의 사정을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일본도 에도 막부가 세워진 초창기라 막부의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동상이몽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선통신사가 지속된 200여년은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돼 두 나라가 근대로 접어드는 밑받침이 됐다. 당시 조선 외교관들은 선진문화를 가진 중국(청)으로 가는 것은 영광으로 여겼지만 일본으로 가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는 험난한 여정이라 평했다.
 
또한 해사일기의 가치는 조엄의 해박한 지식을 통한 당대 조선사대부 지식인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살펴 볼 수 있다. 또 외교관으로서 맡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자세와 외교술도 살펴볼 수 있다. 귀국길에 발생한 일행 ‘최천종의 피살사건’에 대해 그 과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치밀하게 기록한 사실과 목민관의 본분을 잊지 않고 고구마 재배방법을 기록해 들여온 사실은 특히 눈여겨 볼만하다.
 
지금도 멀지만 가까운 나라라 인식되는 일본.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나라이나 우리는 여전히 일본을 잘 모르고 있다. 이 책은 역사의 흩어진 파편을 엮어 나간다. 따라서 그 시절 일본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문용균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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