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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그해 겨울은 정말로 춥고 배고팠던 시련의 계절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지 불과 6년 한국의 모든 것이 박살나고 파산이 된 시절인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해 9월 15~18일에는 ‘사라’호 태풍이 불어 한국의 중부와 남부 지방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사라’호 태풍은 이 나라에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 전에 불어 닥친 국가적인 무서운 재난이었다.
당시 ‘사라’호 태풍으로 인한 사망실종이 무려 849명, 부상 2,533명, 이재민 37만 3,459명으로 엄청난 피해였다.
우리가 살던 충주의 주덕면 작은 초가집도 지붕이 바람에 멀리 날아가고 장독이 모두 깨져 마당에 고추장 간장이 쏟아져 있고 울타리담도 무너진 처절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짓던 산비탈 자갈밭 천수답 몇 마지기 농산물은 태풍에 다 휩쓸려 갔고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입을 옷 하나 성한 것이 없는 눈물의 계절이었다.
면소(面所)에서 수재민에게 주는 것은 밀가루 한말과 석유 됫병으로 한 병 그리고 소금 두되가 전부였다. 이것으로 우리 여덟 식구는 차가운 겨울을 나야 하는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 청춘들은 “또 고리타분한 ‘수구 꼴통’ 꼰대들의 하소연이네!” 하고 금방 글 읽는 것을 중단하고 다른 달콤 쌉사롬한 글을 찾을지 모르겠다. 글쎄 지금의 청년들이 그 시절 그 때의 가난과 시련을 이야기 하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대체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글을 꼭 끝까지 읽고 상황을 판단하고 새겨 주기 바란다.
주덕면에는 당시 작은 성당이 하나 개척교회로 시작하였다. ‘움집거리’에 있는 그 성당은 미국 시카고에서 오신 ‘길로연’신부님이었다. 원어 발음과 스펠링은 모르겠고 우리들에게 그는 항상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며 너그럽고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성당에 가서 생에 최초로 외국인을 보았다. 얼굴이 태양에 타서 시커멓고 하얀 마른 버즘이 가득한 우리들과는 달리, 노랑머리에 코가 엄청나게 크고 피부가 하얀 백짓장같이 고운 외국인 신부님을 처음보고 무척 신기로웠다. 저 사람은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 준 특별한 종족일거야 하고 감탄하였다.
성당에는 농업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어설픈 곳이었는데 바닥에는 아직 마루가 놓여있지 않아서 어린 나의 무릎이 아파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짚으로 만든 투박한 멍석을 깔고 제단에는 그래도 제법 형식을 갖춘 곳이었다.
사라호 태풍으로 주민들의 몹시 어려운 살림을 보시고 길 신부님은 미국의 친구들에게 호소하여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들여 와 면소의 마을마다 몇 가구,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곤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부님이 주신 밀가루와 말린 쑥을 넣고 수제비를 해먹기도 하고 옥수수 가루는 사카린에 섞어 쪄서 먹으며 빈창자의 허기를 채웠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로 변하여 충북의 산간내륙지방인 그곳은 몹시도 추운 날이 이어졌다. 길 신부님은 다시 미국의 친지들에게 호소하여 미국에서 헌 옷가지와 구두 그리고 낡은 내복 같은 것을 들여 와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시, 나의 여동생은 난생 처음 보는 털북숭이가 가득한 빨간 코트를 배부 받아 누나가 그것을 바느질로 줄여 입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부러워서 옷을 만지며 신기 해 했다.
신부님은 우리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해방이 된 이 땅에 다시 처참한 전쟁이 휩쓸었고 게다가 무서운 사나운 태풍이 휩쓸고 난 초라한 작은 산촌, 나의 고향으로 찾아 들어오셨다. 신부님은 성경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을 전달하는 사명에 피 눈물 나는 고생을 하셨지만 우리는 당시 신부님에게서 신세계 미국의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음식까지도 경험 할 수 있는 문화 소통의 장이었다.
신부님은 둥그런 공이 아닌, 럭비공 이것 역시 난생 처음 보는 공이지만 길쭉하게 둥근 희한한 공을 주며 가지고 놀라고 하여 그 공으로 우리는 축구를 했는데 내가 의도하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그 공이 너무 우습고 재미있었다.
성당에서는 그 때 난생 처음 활동사진(영화)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개봉하기도 전인 ‘쿼바디스’였다. 한국어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인 영화는 스크린이 없어서 하얀 광목을 말뚝 높이 매어 달고 환등기에서 비치는 영화를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설명해 주시는 것에 우리는 열광하며 영화를 보았다.
로마의 압정과 잔혹한 횡포 속에 ‘노예’가 무서운 사자를 때려잡고 끝내 이기는 장면에서는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난히도 춥던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것도 전혀 몰랐던 촌놈들 우리에게 미국에서 신부님의 친구들이 카드를 보내왔다. 정말로 놀랍도록 아름답고 화려한 카드였다. 그것은 어린 우리들 마음속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대함과 놀라운 발전에 대한 부러움과 신기함의 담긴 환상의 카드였다.
흰 눈이 나의 무릎까지 쌓인 성탄절 이브에 나는 누나와 함께 성경책과 교리문답 책, 그리고 기도할 때 손에 들고 하는 묵주를 들고 하얗게 쌓인 눈밭에 비치는 강렬한 태양에 눈이 부신채로 성당으로 향했다.
밤 열두시가 지나자 멍석이 깔린 성당 안에서 신부님이 검은 예복에 하얀 실타래 같은 것을 허리에 차고 성수로 십자가를 그은 다음,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하얀 얼굴로 경건하게 성탄미사를 집전하였다.“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인하여 비옵나이다.”크게 십자가를 긋고 하얀 연기가 나는 작은 성화를 흔든 다음 성스럽게 미사가 계속 될 때 나는 하얀 가운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앞으로 나가 찬송가와 캐럴을 합창 하였다.
“타밀종이 땡땡땡 요란하게 울린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두막집에도 타밀 종이 땡땡땡”
화음을 넣어 큰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던 나는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 왔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이 내 볼에 흐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서러움과 허전함이 찬송가를 불러야 할 목에서 마구 밀려 왔다. 신부님과 미사를 보러 오신 동네 어르신들이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는데도 나는 찬송가를 끝까지 다 부를 수 없었다.
정말, 신부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양말도 없이 검정고무신을 신고 맨발로 차디 찬 눈밭 속을 걸어 와 발에 동상이 걸려 가렵고 아파 미치겠는 걸 이겨 나게 해 주실 텐데.....하느님이 계신다면 쌀은 고사하고 밀가루 하나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집의 그 슬프고 괴로운 상황을 이해 해 주셨을 텐데....하느님이 계신다면 나의 이 배고픔, 이 쓰라린 허전함이, 하느님이 계신다면 희망이 없는 우리 집, 나의 이 처절한 욕망을 채워 주실 텐데...하며 어깨를 들먹이며 슬피 흐느끼고 있었다.
삼사 십 명 정도의 이 마을 저 마을 촌에서 모인 신도들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속에 찬송가는 끝나고 멍석 에 앉아 미사를 마쳤다. 나는 누나가 나를 위로해 주려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두드려 주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서 고개를 파묻어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신부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영아 어린이 무엇이 그리 슬펐나요?”
나의 차가운 손을 잡으신 신부님의 하얀 손에는 도톰하고 예쁜 미제 털양말 한 켤레와 내가 커서 화가가 되려고 애를 써도 구하지 못하던, 꿈에도 그리던 크레파스와 귀하디귀한 우유가루 한 통이 들려 있었다.
“하느님은 언제나 영아에게 희망을 주시며 성공을 기원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마음깊이 맞이해 기쁨으로 찬양해 주십시오!”하며 내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해 주셨다. 나의 마음과 몸은 봄눈이 녹듯 훈훈해졌고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 다시 흘러 내렸다.
2018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가 왔다. 하얀 눈이 쌓였던 어린 시절의 그 작은 성당에서 있었던 성탄절, 그로부터 실로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역시 눈이 하얗게 덮인 길을 지나 나는 일부러 주덕 땅 그 작은 성당을 찾았다. 성당에는 내 어릴 적 그 고마운 길로연 신부님은 안계시고 한국인 신부님이 계시면서 성당도 커다랗게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길로연 신부님은 당시 시카고에서 깡패로 지내다 개과천선하여 신부님이 되셨고 아시아의 변방 후진국인 한국의 산촌에 오셔서 성당을 열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시며 인자하게 미국인의 마음을 따스하게 전해주신 고마우신 분 이셨다.
훗날 고향의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들은 소식은 경기도 양평인가 어디 성당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 땅의 전란을 도와 준 고마운 나라이며 미국인 또한 이렇게 우리 민초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베푼 고마운 사람들이다.
60년 전 헐벗은 나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해 주신 길로연 신부님,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지요? 삼가 명복을 빌어 봅니다.
저는 신부님이 주신 크레파스로 지금은 서양화가가 되었으며 신부님이 주신 양말, 동상 걸린 발에 신었던 양말의 그 따스함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신부님께서는 살아 있던 천사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신부님의 그 거룩하고도 자상하신 마음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신부님의 명복을 빌며 다시 한 번 아득한 그날의 성탄절을 기려 봅니다. 편히 영면 하십시오.
60년 전의 그 작은 멍석 깔린 성당의 크리스마스를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이 글을 보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메리크리스 마스 해피 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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