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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천리길 달려가 거지탕을 먹으랴

[진주 맛 기행] 냉면·육회·육회비빔밥·국밥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2-23 23:59:30

▲ 맛 칼럼니스트 유성호
 진주라 천리길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요즘은 길이 좋아져 400km가 한참 되진 않지만 옛날엔 서울서 산 넘고 물 건너 천리 정도 가야 진주에 다다를 수 있어서 그리 불렀다. 서울에서 먼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진주를 최근 두 번 방문했다.
 
지방 도시에서 머물 때 숙소만큼 중요한 것이 먹거리다. 출장은 지역 맛집을 가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빅 데이터와 지인 추천으로 정보를 최대한 모으는 게 중요하다. 진주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비빔밥, 장어구이, 진주냉면 그리고 유등빵이다. 진주시는 이들 먹거리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도시를 소개하는 광고판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전주비빔밥과 함께 비빔밥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진주비빔밥은 한우 우둔과 홍두깨살을 듬뿍 넣은 육회비빔밥을 의미한다. 육회 역시 진주 대표 먹거리 중 하나다. 진주냉면은 이들 먹거리 중에서도 대표선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진주냉면=빅 데이터를 통해 진주 냉면 후기가 가장 많은 <하연옥>을 찾았다. 때마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공군 795기 수료식이 있는 날이라 이등병 계급장을 단 군인과 가족들로 붐볐다. 본관은 이미 만석이고 별관에서도 두 팀 정도 대기해야 했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자리가 났고 면()애정자인 필자는 고민할 필요 없이 진주냉면을 주문했다.
 
▲진주냉면으로 유명한 하연옥. 해산물로 육수를 내고 육전을 고명으로 올린다. [사진=필자제공]
 
진주냉면은 평양냉면과 달리 다시마, 멸치, 디포리, 새우 등 해물로 육수를 낸다. 그리고 육전을 채 썰어 실고추, 오이, 배 등과 고명으로 얹어 내온다. 30년 만에 만나는 진주냉면 육수는 생소하고 염도가 상당히 높았다. 집간장으로 간을 맞췄기 때문이다.
 
짠맛에 민감한 손님을 위한다면 인천 <변가네 옹진냉면>처럼 까나리액젓을 테이블에 두고 알아서 뿌려먹게 하면 좋을 듯하다. 육전이나 불고기를 냉면과 곁들여 먹는 테이블이 많았다. 빅 데이터보다는 때론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에 귀를 기울여야할 필요성을 느낀 식사였다.
 
진주냉면과는 30년 전에 악연(?)이 있다. 군 제대 후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한 1991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공군 학사장교로 간 같은 과() 친구 공군 학사장교 임관식을 보기 위해 천리길을 내려갔다. 대학시절 세월을 낚는다며 함께 어지간히 낚시를 많이 다녔던 조우(釣友). 의암댐에서 수장될 뻔하고 의왕저수지에선 피라미 한 마리 못 잡았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다. 그러니 임관식에 안 가볼 수도 없고 해서 멀디 먼 진주라 천리길을 친구 한명과 결행했다.
 
임관식 후 친구 아버님은 커다란 각 그랜저에 정원 초과 인원을 우겨넣고 진주냉면 집으로 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냉면집은 대부분 소나 돼지구이집을 겸한다. 그 집 역시 삼겹살이 먹음직스러웠다. 멀리서 응원 온 아들 친구 둘에게 삼겹살 인심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가 아닐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회사로 치면 사장님은, “난 냉면을 외쳤고 줄줄이 이하동문은 불문가지다.
 
아버님은 우리를 바라보며 호기롭게 너흰 곱빼기 먹어라하시며 선심을 쓰셨다. ! 선육후면도 모르는 아버님!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곱빼기 한 그릇을 거의 다 목구멍에 밀어 넣을 즈음,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삼겹살 좀 굽자.”
 
냉면 곱빼기가 어찌나 양이 많던지 삼겹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불러 삼겹살은 언감생심, 진주냉면에 대한 우울한 추억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재래시장에는 반드시 맛집이 있다=공군교육사령부 제2군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큰 아들을 영외면회로 불러냈다. 진주중앙시장과 진주성을 둘러 볼 심산이었다. 진주로 내려가기 전에 수많은 식당을 검색했다. 공북문 장어거리 <유정장어>, <천황식당>, <육거리곰탕>, <천수식당>, <평양빈대떡> 등을 후보지로 삼았다. 진주냉면은 일부러 뺐다.
 
▲진주중앙시장 이모저모. 진주유등중앙시장 보다 여전히 중앙시장으로 불린다. [사진=필자제공]
 
진주성을 가기 위해 내린 곳이 마침 진주중앙시장 인근이라서 시장을 먼저 들렀다. 서부경남 중심도시의 대표 시장답게 활기가 넘쳤다. 조선시대 서부경남의 풍부한 물산이 모여 형성된 시장이다. 1966년 큰 화재로 소실됐다가 다시 재건할 정도로 진주시민들의 젖줄과 같은 곳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진주유등축제와 연계해 이름을 진주유등중앙시장으로 정했지만 여전히 중앙시장으로 많이 불린다.
 
시장을 한창 둘러보는 데 <제일식당>이 눈에 띄었다. 지인추천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고 빅데이터 역시 꼭 들러봄직한 식당으로 손꼽은 식당이다. 육회 작은 접시와 육회비빔밥, 국밥을 주문했다. 만만치 않은 지방물가다. 그럼에도 또 언제 와보겠냐는 생각으로 늘 양에 넘치게 주문한다. 과식은 음식 칼럼니스트의 숙명과도 같단 생각이다.
 
▲진주중앙시장 안에 있는 제일식당. 업력 80여년의 오래가게이면서 진주 맛집 중 하나로 알려졌다. [사진=필자제공]
 
고추장에 참기름과 갖은 양념채소를 섞어 만든 육회소스는 보기와는 달리 매운 맛은 전혀 없고 달큰하다. 중간 중간 편으로 썰어 놓은 것이 생율(生栗)인가 싶었는데 마늘이다. 식후 입안에 마늘냄새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고추장에 버무려 놓으니 우둔인지 홍두깨살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국밥은 지리산 산청 시래기와 소꼬리, 사골, 잡뼈 육수로 만든다. 육회비빔밥 역시 특별하진 않다. 진주에 오면 꼭 맛봐야 하는 강력한 한방이 없어 다소 아쉬웠지만 반대로 이만한 게 없다. 경상도 음식의 지역적 한계다. 그럼에도 제일식당은 진주의 강자다. 80여 년간 누대에 거쳐 한곳에서 자리를 지킨 오래가게’(노포, 老鋪). 관광객에겐 실패 가능성이 적은 검증된 맛집이다.
 
사실 진주중앙시장의 최강자는 다이소 앞 떡볶이 좌판들이다. 대여섯집이 떡볶이, 오뎅, 튀김을 즉석요리로 내는 데 만들기가 무섭게 팔린다. 웨이팅이 걸려 정신없이 분주한 떡볶이 집이 이채로웠다. 줄을 세우는 떡볶이집이라니! 튀김옷이 유난히 노란색이라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치자 우려낸 물을 섞었다. 황색 식용색소 대신 자연에서 색소를 얻은 것이다. 시장 음식을 만만히 봐선 안 될 이유다.
 
진주성에서 만난 조상들=식후 소화도 시킬 겸 들른 진주성과 촉석루,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귀한 인연들을 만났다. 진주성 정문 앞에는 의기 논개를 기리는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의 논개시비가 서 있다. 수주는 필자 조모 변정희 여사의 숙부다. 수주의 맏형인 산강재 변영만이 조모의 부친이다. 진주박물관에는 풍산 류씨 문중 어른인 서애 류성용이 임진왜란 때 착용했던 투구와 갑옷(보물 제460), 징비록(국보 제132)이 전시돼 있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있었던 곳이다.
 
▲진주성과 국립진주박물관 소장품. ①진주성 동북문 앞에서 거지탕을 파는 <평양빈대떡>. ②진주성 입구에 있는 수주 변영로의 ‘논개’ 시비. ③국립진주박물관 내에 있는 의기 논개 영정. ④진주성 촉석루(경남문화재자료 제8호) 고려 공민왕 때인 1365년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입하자 총지휘는 물론 남쪽 지휘대로 사용해 남장대라고도 불린다. ⑤진주성 북장대 ⑥조선조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용이 임진왜란 때 입었던 갑옷.(국립진주박물관 소장) ⑦류성용이 쓴 징비록.(국립진주박물관 소장) ⑧진주성 정문인 촉석문. [사진=필자제공]
 
풍산 류씨 세거지는 안동 하회마을이다. 안동의 헛제사밥과 함께 경상도지역에서 손꼽는 독특한 음식으로 잡탕이 있다. 설 명절 연휴가 끝날 무렵 남은 전과 부침개, 나물 등을 한데 섞어 끓이는 탕이다. 이를 진주에선 거지탕이라고 해서 파는 곳이 있다. 진주성 동북문을 나오면 <평양빈대떡>이란 곳에서 판다. 어려서부터 접한 잡탕의 풍성한 맛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거지탕을 접하지 못했다. 진주라 천리길을 달려가 거지탕으로 배를 불리긴 뭐해서 다음 기회로 넘겼다. 진주를 다시 가야할 이유 하나쯤 남긴 셈이다.
 
천리길 진주가 지금보다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김천부터 거제까지 남부내륙철도가 놓이면 서울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이미 글로벌육성축제로 상당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남북내륙철도가 놓이면 서부경남권으로 향하는 수도권 관광객이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다. 진주는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업그레이드 된 맛과 서비스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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