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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임현범 팀장, 이승구·문용균·나광국 기자]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 사이에서 ‘한국은 장수 기업이 나올려야 나올 수 없는 나라’라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가업 상속 자체가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막대한 상속세 부담에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기업 규모를 더 이상 키우지 않거나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업 영속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상속세 및 가업상속공제 요건 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업승계 실패가 부메랑과 같이 이들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돌아와 결국 우리 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본받아 우리나라 상속제도의 대대적인 수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율로 기업들이 고통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세금 부담을 잇달아 감면해주면서 기업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선 기업이 승계할 때 상속세 부담이 없거나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고 이마저도 큰 폭의 공제 및 감면 제도를 통해 기업 승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경제선진국 독일의 가업승계…부 세습 아닌 경영노하우·기술·고용 대물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국제비교를 통해 본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제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은 직계가족에게 더 낮은 상속세율을 적용하거나 큰 폭의 공제혜택을 부여해 원활한 기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OECD 35개국 중 노르웨이·뉴질랜드·라트비아·멕시코·스웨덴·슬로바키아·에스토니아·오스트리아·이스라엘·체코·캐나다·포르투갈·호주 등은 17개국은 직계가족이 기업을 승계할 때 상속세 부담이 아예 없다. 룩셈부르크·스위스·슬로베니아·헝가리 등 13개국도 세율 인하나 큰 폭의 공제 혜택을 부여해 실질적인 상속세 부담이 없다.
그리스·네덜란드·독일·벨기에·프랑스·핀란드 등 10개국은 직계가족에게 기업을 승계할 경우 상속 최고세율이 상속세 명목세율보다 낮게 설정돼 있다. 명목세율이 80%인 벨기에는 직계가족 상속 시 최고세율이 30%까지 낮아지고 프랑스(60%→45%)·독일(50%→30%)·그리스(40%→10%)·네덜란드(40%→20%)·핀란드(33%→19%) 등도 모두 낮게 설정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 상속세 명목세율은 50%에 달한다.
이들 국가 중 독일은 장수기업이 특히 많은 편이다. 독일은 200년 이상 된 제조기업만 1563곳에 이를 정도로 가족기업 비중이 매우 높다. 독일 전체 기업 309만9493곳 가운데 가족기업은 295만2900곳(95.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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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김해인] ⓒ스카이데일리 |
독일에 장수기업이 많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업승계에 유리한 환경을 꼽는다. 독일의 상속세 및 증여세 체계는 가업상속에 대해 대폭적으로 조세부담을 완화해주고 가족 재산권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업에게는 기업 상속 또는 증여에 의한 가업승계 시 계속적이고 원활한 기업경영이 유지될 수 있도록 상당한 세제혜택이 부여된다.
다만 조세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고용수준과 기업경영의 유지가 필수조건이며 해당 전제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승계재산의 특별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상속세 및 증여세의 구간별 과세표준을 조정해 세율인상에 따른 급격한 상속세 및 증여세 부담의 증가를 방지하고자하는 제도적 목적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2010년 가업상속 공제한도 제도도 대폭 완화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이후에도 5년 내지 7년 정도만 가업이나 가업 재산을 유지하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가업영위나 상속인의 가업종사 등이 가업상속공제 요건이다. 피상속인 지분율도 우리나라는 50%(상장기업 30%)에 달하는 데 반해 독일은 25%로 크게 낮은 편이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이후에도 5년 내지 7년 정도만 가업이나 가업 재산을 유지하면 된다.
고용유지 요건도 ‘급여총액’을 기준해 5년 400% 또는 7년 700% 유지가 요건이다. ‘고용’을 기준으로 10년 평균 100%(중견기업 120%) 유지를 요건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제도보다 기간, 비율 측면에서 상당히 완화된 모습이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 기업 전체 매출의 41.5%, 고용의 57% 등을 각각 차지하는 중소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 대표 기업인 BMW, 폭스바겐, 알디, 보쉬 등은 창업주 가문의 가족 구성원과 기업이 다양한 형태의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가업 승계한 사례로 통한다.
상속세 가장 높은 일본…중소기업 127만곳 폐업 위기에 서둘러 규제 풀어
일본은 원활한 사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신사업승계제도’를 시행해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대폭 낮췄다. ‘신사업승계제도’에는 상속세 납부유예와 증여세 납부유예 등이 골자다. 상속세 납부유예는 경영자의 상속 또는 유증에 의해 그 친족인 후계자가 취득한 자사 주식의 80%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상속세 납세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증여세 납부유예는 현 경영자로부터의 증여에 의해 그 친족인 후계자가 취득한 자사 주식의 100% 상당액의 납세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해당 친족 범위는 △6촌 이내의 혈족(조카 등) △배우자 △3촌이내 친족(사위 등) 등 해당된다. 납세유예 대상 주식은 후계자가 상속·증여 전부터 이미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포함해 발행의결권주식 총수의 3분의 2까지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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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김해인] ⓒ스카이데일리 |
특히 불투명한 사업 전망으로 승계를 꺼리는 상황을 고려해 승계 후 기업 경영 악화로 파산할 때도 유예 받은 세금을 면제해 준다. 또한 1명만 지정할 수 있던 상속자도 최대 3명까지 늘렸다. 기업인들의 불만이 높았던 상속·증여 후 5년간 고용 80% 유지 등 사후 조건도 폐지 혹은 완화 등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파격적인 기업 상속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까지 일본 전체 기업의 약 60%인 245만개 회사의 경영자가 평균 은퇴 연령인 70세를 넘을 전망이다. 이 중 절반인 127만개사가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까지 전체 기업의 약 30%가 후계자가 없어 폐업할 가능성이 높다. 650만명 일자리와 국내총생산 22조엔(약 197조5880억원)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상속·증여세 감면 혜택을 확대해 중소기업 가업 승계를 돕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재 일본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최고 수준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기 전에 발 빠르게 상속세 제도를 개편해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용민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우리나라의 명목 상속세율은 50%로 일본에 이어서 OECD국가 중에 두 번째로 높고, OECD 국가 평균에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며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론 65%로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재산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면 중소·중견기업은 승계를 하기 힘들다”며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대부분의 중소기업 오너들은 경영을 중단하거나 사모펀드에 팔아서 현금으로 환원해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부동산을 구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되는 기업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다”며 “지금의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살아있을 동안 소득세로 납부한 소득에 추가로 상속세를 부과한다는 면에서 이중 과세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도 한국의 높은 상속세율에 대해 꼬집었다. 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는 주요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가업을 승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이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행위는 기업들의 편법·불법 상속을 부추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나광국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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