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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서서히 잊히는 안타까운 이름 법성포 토주

굴비와 영광 2대 특산물의 영광은 추억 속으로 가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6-08 09:12:37

▲ 맛 칼럼니스트 유성호
 전라도 지역에서는 진도 홍주와 영광 법성포 토주가 유명한 술이다. 그러나 홍주는 제법 많이 알려진 반면 토주는 과거 명성과는 달리 다소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애주가들에게는 상찬(賞讚)을 받는 전통 곡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가 없다. 상품성 있는 술로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전 노동부 차관)는 이를 늘 안타까워하면서 토주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이유는 그가 전남 영광 태생이고 지금은 영광군 자문위원이기 때문이다. 가끔 자문회의 차 지역에 내려가면 토주를 한잔 하곤 했는데, 좋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우리나라는 각 가정마다 제사에 쓸 고유의 술을 빚을 정도로 조주(造酒)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강력한 주세정책에 의해 조주문화가 쇠퇴했다. 이때 만들어진 주세법은 88서울 올림픽 전까지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많은 토속주의 명줄을 끊어 놨다. 어쩌면 법성포 토주도 이런 상황 속에 쇠락한 것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진도 홍주와 전라도를 대표했던 토주의 쇠락
 
▲ 곡우 무렵에 잡힌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한다. 이때 조기는 알이 많이 들어있고 맛이 좋다. 상품성도 으뜸으로 친다. 창석 이억영의 ‘穀雨 조기잡이’.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법성포 토주는 토종이라고도 한다. 증류주로 멥쌀에 황곡(효모)을 버무려 만든다. 20~25도 정도의 실온에서 4일간 1차 발효하고 다시 고두밥과 물을 부어 7~8일간 2차 발효시키면 맑은술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소줏고리를 통해 중탕하면 높은 도수의 토주를 얻을 수 있다. 토주는 과거 조기잡이를 하던 뱃사람들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술로 알려져 있다.
 
옛날 법성포 앞바다는 조기잡이와 파시로 유명했다. 조선 말기 지방 관리였던 오횡록이 쓴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鎖錄)>에 따르면 법성포 앞바다 칠산어장에는 당시 거대한 곡우사리(곡우 때 서해서 잡히는 조기) 파시가 형성돼 있었다. 기록에는 팔도에서 수천 척의 배가 모여 고기를 사고파는 데 오고 가는 거래액은 수십만 냥,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조기였다고 적고 있다.
 
칠산 바다에서 잡은 조기는 영광에서 판매됐다. 생물로 팔고 남은 것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말린 것이 굴비다. 굴비란 이름은 고려 때 난을 일으켰다 실패한 이자겸이 영광으로 유배 온 후 궁으로 진상한 말린 조기에 정주굴비(靜州屈非)’란 글을 써 붙여 올린 데서 유래한다. 정주는 영광의 옛 지명으로 이자겸은 영광에서 귀양살이 하지만 절대 뜻을 굽히지 않겠단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린 조기에는 굴비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조기잡이 뱃사람들의 지친 육체를 달래주던 토주가 전국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점에 대해 정 교수는 늘 아쉬워했다. 정 교수는 필자를 만날 때마다 토주를 전국주로 널리 알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부탁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토주 부활을 시도한 적이 있다. 막걸리학교에 따르면 1996년 법성양조장에서 토주 아랑주를 생산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2002년 문을 닫았다. 이후 토주는 법성포에서 조차 서서히 잊히고 있다. 영광군청 홈페이지에서 토주를 검색했으나 단 한건도 검색되지 않은 데서 현실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본고장 영광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름  
 
▲ 옛날 영광군 법성포구 굴비덕장 모습. [사진=영광군청 제공]
  
한 지역신문 기자가 법성포에 가서 토주를 찾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정식 술도가가 아니고 가정집서 소줏고리를 들여놓고 만들고 있는 정도였다고 써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한때는 굴비와 함께 법성포 2대 특산물이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쌀로 빚은 토주는 도수가 매우 높다. 70도짜리를 입술에 대면 홀연히 사라지고 60도짜리를 목으로 넘기자면 불이 한번 지난 간 듯 화끈거려 화주(火酒)란 별명을 얻었다. 필자도 정 교수가 공수한 토주 맛을 봤는데, 특유의 묵직하고 강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입안에서 휘발되면서 풍기는 향이 강하고 오래 남았다. 한마디로 남성적인 술이다.
 
현재 토주는 전통 방식으로 고수하면서 술을 내리는 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기술을 내려 받은 이도 고령이라서 맥이 끊일 처지에 놓여있다. 이렇다 보니 정 교수의 토주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정 교수와는 전라도 직역 음식을 잘하는 식당서 만나다가 최근에는 댁에서 가까운 인덕원의 이어도참치라는 참치 횟집에서 만났다. 마침 영광군 자문위원회를 다녀오면서 토주를 500ml 페트병에 담아 왔다. 필자에게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극진한 토주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토주와 궁합이 맞는 음식은? 역시 남도 해산물!
 
 
▲ 남도음식으로 유명한 노량진 ‘순천식당’의 제철 해산물 요리. 참꼬막, 매생이굴국, 새조개, 칠게장 등.[사진=필자제공]
  
정 교수는 내로라하는 미식가다. 야무진 손맛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각이 발달했다. 게다가 오랜 관료 생활에 따른 수많은 외식이 정 교수의 미뢰를 진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 맛은 많이 다니면서 먹어 본 사람이 잘 알기 마련이다.
 
오래전 노량진 순천식당으로 필자를 불렀다. 주꾸미, 산낙지, 전어, 새조개, 서대, 간재미, 붕장어, 갯장어(하모), 키조개, 꼬막, 홍어, 매생이 등 구미 당기는 해산물을 주재료로 제철 음식을 내오는 곳이다.
 
그 답으로 필자는 정 교수를 대치동 순천만이란 남도음식 전문식당으로 모셨다. 참꼬막, , 밥알문어라 부르기도 하는 주꾸미, 갑오징어, 민어, 게장, 굴미역국, 보리굴비, 새조개 등 이 곳 역시 물산이 풍부한 남도 바닷가 맛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법성포 토주는 조기잡이 뱃사람들의 갈증을 달래는 음료이자 피로회복제였다. 그들은 토주 한잔과 상품성이 떨어지는 조기를 안주 삼아 먹으며 고단한 하루를 달랬을 것이다. 차고 넘치는 것이 조기였기 때문에 안주는 얼큰한 조기매운탕이 제격이었다. 분명한 것은 남도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영광 2대 특산물의 영광을 재현할지는 지역의 몫이다.
 
영광은 현재 보리특구에서 생산되는 찰보리를 이용해 만든 소주를 홍보하고 있는 터라 토주는 사실상 뒷전이다. 그래서 향토브랜드를 찾아내 육성하는 차원에서 토주의 가치는 재평가돼야 한다. 그동안 토주가 구축한 브랜드 파워를 간과해선 안 된다. 가깝게는 영광 지역 축제와 결합해 당당히 부활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명맥이 끊어지기 전에 토주에 대한 기록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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