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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의 음양오행 경제

초록은 살이 찌고 붉은 빛은 야위어가니

야반(夜半)의 풍우(風雨)에 해당화 질 것을 걱정하는 마음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6-12 14:20:23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천 년 전 중국에 글재주가 대단히 뛰어난 재녀(才女)가 있었다. 우리로 치면 황진이 격이라 보시면 되겠다. 그녀에게 어느 날 이런 詩想(시상)이 떠올랐다.
 
가까운 사람과 간밤에 술자리를 펼치고 정담을 나누었지, 창밖엔 밤새 비바람이 쳤지, 비는 적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었었지, 바깥은 을씨년스럽고 술자리는 따뜻했으니 분위기는 더욱 좋았지. 얘기 나누던 중에 잠시 걱정이 스쳐갔지, 바람이 세차니 뜰에 핀 초여름 해당화 붉은 꽃이 저러다 다 지고 말 것 같다고. 새벽녘 친구는 돌아가고 깊은 잠에 들었는데 문득 밝은 빛이 느껴져서 눈을 떠보니 시중드는 아이가 창에 드리운 햇빛 가리개를 걷고 있더군, 몸을 일으키니 아이쿠, 아직 술기운이 남았구나, 아이에게 물었지, 애야, 해당화 꽃이 어때? 아이는 바깥을 내다보곤 말하길 멀쩡한 것 같은데요, 왜요? 절로 나오는 혼잣말,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보나마나 풀빛은 무성해지고 붉은 꽃빛은 줄었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이에 그녀는 시를 지었다.
 
昨夜雨疏风骤(작야우소풍취),浓睡不消殘酒(농수불소잔주),
 
试问卷簾人(시문권렴인),  却道海棠依舊(각도해당의구)
 
知否(지부)? 知否(지부)?  应是绿肥红瘦(응시녹비홍수)
    
이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움과 같다.
 
간밤에 비는 성기었으나 바람은 세찼었지,
단잠을 잤음에도 술기운이 남았구나,
 
발 걷는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해당화는 아직 그대로라고,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으레 녹색은 살이 오르고 붉은 빛은 야위었을 터인데.
 
이청조, 중국 문학사상 최고의 여류시인
 
이 시를 지은 이는 중국 문학사상 최고의 여류시인인 이청조(李淸照). 탁월한 감성이 우미한 문체에 실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시는 그냥 시가 아니라, 곡에 실어서 부르는 노랫말인데 이런 시를 사(詞)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 시절에 유행했다 해서 송사(宋詞)라 한다. 당나라 시절의 당시(唐詩)와 함께 중국 문학을 대표하고 있다.
    
사(詞)를 잘 만드는 이는 대중들에게 인기도 엄청 많았다고 한다. 노래는 역시 가사가 중요한 법이니.
   
이청조는 넉넉한 학자 문인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책과 글을 접했고 또 문장 연습을 했다. 18세에 명문 부호의 귀공자에게 출가를 했다. 워낙 윤택한 형편이라 남편은 벼슬에 뜻이 없고 그저 애호하는 학문을 연구했고 이에 이청조 또한 남편을 도와 함께 연구하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부부는 한 세월 정말 호사롭게 잘 보냈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의 호사로운 삶.
    
세상일은 늘 어긋나는 법이어서
 
남편과 함께 최상류층의 삶을 누리다보니 특별히 욕심낼 것도 없었고 이에 이청조는 자신의 호를 이안거사(易安居士) 또는 수옥(漱玉)이라 지었다.
 
아(易)는 쉽다는 뜻이고 안(安)은 편안하다는 뜻이다. 거기에 거사(居士)라고 했으니 세상에 나가 출세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지내는 사람이란 뜻이다. 또 수옥(漱玉)에서 수(漱)는 물에 씻는다는 뜻이고 옥(玉)은 구슬 옥이니 물에 말끔하게 씻어낸 옥구슬이란 의미이다. 세상의 험한 때나 먼지 같은 따윈 묻히고 않고 살겠다는 뜻이다.  
 
상류층 지식인의 자부심이 담긴 이름이지만 한편으로 교만하다. 따라서 불길(不吉)한 이름이다. 그냥 이대로 순탄하게 잘 살겠다는 것이니 얼핏 좋은 말 같다, 씻어낸 옥구슬이니 먹고 살기 위해 아귀다툼 같은 건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또한 일견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나 호호당이 말하는 운명 순환의 60년을 살아가다보면 늘 편하고 쉬울 순 없는 노릇이고 늘 고고하고 맑게 자존심 지켜가면서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이안거사(易安居士)나 수옥(漱玉)이란 이름을 썼다는 것은 장래의 불행과 고난을 약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나중에 이청조는 정말이지 갖은 풍상(風箱)과 고초(苦楚)를 겪게 된다. 인생 후반은 이안(易安)하지 않고 험난(險難)했으며 씻어낸 옥구슬이 아니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사주팔자로 알아본 이청조의 삶과 운명
 
위키백과에 그녀의 생년월일이 나와 있고 구글에 들어가 검색해보면 맞는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녀의 운명 순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청조는 양력으로 1084년 3월 13일생이니 갑자(甲子)년 정묘(丁卯)월 무진(戊辰)일이 된다.
 
관인(官印)이 상생(相生)하는 사주이니 귀티가 절로 풍겨난다. 생시를 모르긴 해도 연월일만으로도 강직하고 총명하며 자부심이 강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유형의 사람은 살면서 한 번 크게 바닥을 치고 굴욕을 당해야만 타고난 그릇을 마침내 완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생시는 모르지만 이력을 보면 1098 무인(戊寅)년이 기의 절정인 입추(立秋)였고 태어나기 16년 전인 1068년과 1128년 무신(戊申)년이 입춘 바닥이 된다.
 
1094년에 태어났으니 운세는 입하(立夏)를 막 지난 무렵, 따라서 성품도 발랄했을 것이다. 18세에 시집갔는데 1101년 신사(辛巳)년이었다. 입추를 지나 벼꽃이 피는 처서(處暑)의 운이었다. 그러니 좋은 혼처를 만났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없기에 세월이 흘러 1126년 병오(丙午)년 북쪽의 여진족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망했고 태상황과 황제 모두 여진족의 포로로 끌려가는 큰 일이 발생했다. 이를 중국 역사가들은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라고 한다. 당시 연호(年號)가 정강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해서 송나라는 망했고 황제의 동생이 양자강 남쪽으로 피신하여 다시 조정을 세웠는데 이를 역사에선 남송(南宋)이라 부른다.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을 보면 정강의 변에 대해 자주 언급이 된다. 아울러 중국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충신 장군 악비(岳飛)의 이야기도 당시의 일이다.
 
아무튼 이청조 부부는 양자강 북쪽에 근거가 있었는데 엄청난 전답과 재산을 다 포기하고 양자강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리고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1128년 무신(戊申)년,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이 급기야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 나이 44세의 일이었는데 이는 60년 순환에 있어 입춘 바닥임을 말해준다.
 
그 이후 생활고 등등으로 재혼을 했지만, 한마디로 사기결혼이었기에 금방 이혼하고 만다. 정말이지 이청조의 자존심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 뒤로도 이청조는 죽을 때까지 곤궁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렇다. 사망한 해도 1151년, 1155년, 1156년 등 여러 설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망각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처절하고 비참한 심사를 노래에 담았으니
 
그녀가 외롭게 홀몸이 되어 갖은 풍상을 겪는 가운데 남긴 성성만(聲聲慢)이란 사(詞)를 풀어서 옮겨본다.
 
찾아보고 또 찾아보지만 차디찬 늦가을 바람에 처량하고 비참한 슬픔만 밀려오네,
 
잠시 따듯하다가 금방 차가워지는 무정한 계절에 마음 둘 곳 없어 두세 잔 싱거운 술을 들이켜 보지만 어찌 이겨낼 수 있으리!
 
저녁이 되어 급한 바람 부는 하늘을 날아가는 저 기러기정말 가슴이 아프구나, 한 땐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었는데.
 
그녀의 처량한 심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초여름 밤비에 뜰의 해당화 질 것을 걱정하던 섬세한 시인이 저토록 처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청조는 참으로 좋은 집안에 태어나 명문가에 시집을 갔고 좋은 사람 만나서 한 세월 잘 누렸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또 긴 법, 때가 되자 갖은 고초를 겪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 인생 살다가는 일, 쉽게 볼 일도 그렇다고 어렵다고만 볼 일이 아님을 이청조의 고사가 잘 전해주고 있다.
 
이청조의 인생은 고달팠지만 그녀가 남긴 시와 사들은 천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면서 동아시아 문학의 거대한 바탕을 만들어놓았다.
 
글을 쓰게 된 사연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녹비홍수’란 제목의 중국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이는 글머리에 소개한 시의 마지막 네 글자 녹비홍수(绿肥红瘦)에서 따온 제목이다. 최근 와이프가 밤 10시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미동도 하지 않고 리모컨을 움켜쥔 채 앉아서 지켜보게 만들고 있는 드라마이다.
 
이청조의 녹비홍수, 저 시를 읽으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부생육기(浮生六記)라고 하는 중국 고전수필에 관한 것이다. 중국 청나라 시절 수필문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에 보면 신혼살림을 차린 주인공이 아내가 지은 사랑스런 시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옮겨본다.
 
가을기운 스며드니 사람 모습은 야위는
서리에 물든 노란 국화는 더욱 살이 오르네.
 
秋侵人影瘦(추침인영수),霜染菊花肥(상염국화비)
 
이청조의 녹비홍수(绿肥红瘦)에서 비(肥)와 수(瘦)의 차례를 거꾸로 해서 지은 시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영향력은 오늘날 중국과 우리 일본 등의 대중가요에 있어 여전히 진하게 풍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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