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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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경제 라인이 가동되면서 그 사령탑인 현오석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 장관이 취임 단 하루 만에 간 곳은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었다. 물건을 사보기도 하고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물가체감’을 하기 위해서 갔다. 하지만 취임일성으로 언급한 성장정책(경기부양)을 우선하면서 물가를 잡겠다는 구상은 ‘구멍 난 배를 바다에 띄우는 위험한 방식’이라는 비판이 많다. 경기부양은 늦추면서 갈 수 있지만 물가는 어느 한순간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선물가 대책 후 경기부양’을 하는 것은 순리다. 하지만 새 정부는 지금 이달 말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고 5월달에 물가안정대책을 내놓는다는 무모하고 위험한 로드맵을 가고 있다. 현 장관의 가락동 방문이 물가안정 보다는 경기부양책을 위한 시장상황을 둘러보기 위한 행보나 아니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사진=뉴시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장을 받은 뒤 향한 첫 행선지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었다. 지난 22일 오후 3시에 임명장을 받고 다음날(23일) 오전 7시30분에 가락동을 찾아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급행보를 보여줬다.
새 경제사령탑이 왜 이처럼 다급하게 가락동을 찾았을까. 기자들에게 포즈라도 취하기 위한 제스처는 아닌 것 같았지만 정치적 행보로 비춰지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단 하루 몇 시간 동안 가락동을 둘러본다고 해서 과연 ‘물가감’을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회의적이다.
현 장관은 농수산물 시장에서 구매를 해가며 ‘물가체험’을 했다. 하지만 수십명의 기자들과 수행원들은 물론 지켜보는 상인들 탓에 현 장관의 눈매가 과연 물가에만 집중이 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렇기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제로 현 장관은 물건을 구매하면서 지나치게 덤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주는 판매량 보다 더 많은 양의 농수산물들을 받았다. 딸기를 사면서 딸기 보다 더 비싼 천혜향을 덤으로 받는가 하면 장사가 안 된다는 하소연을 하는 상인으로부터는 가격 대비 정량 보다 훨씬 많은 젓갈을 받았다.
가락농 농수산물시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현 장관’은 있었지만 민생물가를 챙기려는 ‘물가 현 사령탑’은 보기 어려웠다. 구입한 젓갈량에 대한 적정량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 장관은 ‘적당한 것 같다’는 말실수까지 했다.
현 장관이 이러고도 과연 민생물가를 체험하기 위한 진정성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진짜 물가체험을 하고자 했다면 차라리 부인의 손을 잡고 장관임을 속인 채 시장을 보는 것이 나았다.
따라서 장관의 이번 행보는 말과 달리 물가 보다는 다른데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게 했다. 그는 거시적인 물가 정책 보다 생활물가를 잡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농수산물 유통개혁 방안을 구상한다고 하지만 대증요법 식으로 겉만 손을 대고 실제 유통개혁은 거리가 먼 일종의 ‘풍선효과’ 이상 그 무엇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책을 내놓지 안을까 우려된다.
현 장관은 더욱이 임명장을 받으면서 물가 보다는 성장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말을 했다. 물가와 성장은 동시에 잡기가 ‘신의 영역’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성장 우선론을 얘기하면서 행보는 물가행보를 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긍정적 의욕이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림의 떡을 먹겠다’는 식의 만용이나 호기에 가깝다.
그는 임명장을 받으면서 박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약속이라도 하듯이 ‘창조경제’를 취임일성으로 내놓았다. 현 장관의 화두는 당연히 성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나아가 경기부양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의도를 스토리텔링까지 섞어가면서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취임사에서 “경제개발의 초석을 닦았던 ‘광화문 시대’를 지나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던 ‘과천 시대’를 거쳐 지금 우리는 ‘세종 시대’에 와 있다”며 “600여년 전 세종대왕은 ‘창조와 문화국가 비전’을 추구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거창한 운을 뗐다. 현 장관은 이어 “6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곳 세종시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내건 것은 새 시대 도약이 역사적 소명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정부는 이달 중으로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기로 한 마당이고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창조경제를 담당할 미래부가 본격 가동되고 기재부가 이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면 이번 경기부양책은 성장에 힘이 실릴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
성장 우선주의는 기업에게는 투자를, 국민들에게는 소비를 각각 진작하고 나아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긍정적인 경제 견인효과가 분명히 있지만 자칫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면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한 탓인지 박근혜 경제사령답은 5월에는 ‘물가안정 방안’을 내놓겠다는 로드맵을 동시에 내놨다.
이를 위한 당·정협의와 당·정·청 회의 등이 잇따라 잡히기까지 했다. 청와대, 새누리당, 정부의 경제라인 등이 한 덩어리가 돼 성장우선을 통한 물가잡기를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여진다.
이런 점에서 현 장관의 이번 가락동 시장 급거 방문은 국민에게 정부의 로드맵을 홍호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와 경제라인들은 지금 착각을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4달 연속 1%에 있다고 발표했다. 4개월 연속 2% 미만에 머무른 것은 13년만이라고 거창하게 자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증가율은 전년 같은 달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물가상승이 있었다면 일종의 ‘착시현상’을 준다. 통계청이 매 5년마다 기산점을 두는 것을 감안하면 5년전 대비 물가상승률을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한은이나 통계청은 물가의 오르내림 제목을 이렇게 5년추이로 발표하는 일이 없다.
백번 양보해 설사 물가가 낮아도 정부가 목표하는 경기부양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일부러 저물가 착시효과를 준 뒤 경기부양책을 내놓기 위한 전략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거의 언제나 정부 발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어 왔다.
특히 장바구니 대표물가인 채소 등의 신선식품은 상상 이상으로 크게 올랐다. 지난달 신선식품지수가 전년 같은 달 대비 7.4% 오른 가운데 이중 채소는 같은 기간 25.1%나 올랐다. 또 배추와 당근은 182.3%와 173.8% 등으로 폭등했다. 양파와 파도 83.9%와 55.1% 등 크게 인상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해 보다 소비지출을 줄였다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 57.0%에 달했는데, 문제는 소비를 이처럼 줄인 이유가 ‘물가불안’(46.0%) 때문이었다는데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상승률은 그만큼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달 중 정부가 내놓을 경기부양책이 어떤 내용을 담을 지는 모르지만 ‘물가가 망가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만큼은 분명히 갖고 가야 한다. 자칫 섣부른 부양책으로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려다 물가관리에 구멍이 생긴다면 국민들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한다.
현 장관의 이번 가락동 방문은 누가 봐도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요식행위였다. 물가를 진짜 고민한다면 잠행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더불어 청와대 해바라기로 전락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올리는 비인기 정책에 손을 대지 않는 한 물가를 잡기는 어렵다. 경기부양책은 물가를 후순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선순위에 둔 뒤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새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스카이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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