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린왕자』를 읽는 이유
왜 우리가 『어린 왕자』를 읽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 속에 적힌 문장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엔 다른 책들에선 찾기 어려운, 지친 일상을 다독여주는 친구 같은 문장들, 힘들 때 친구에게 전화해서 투정할 때 듣는 그런 말들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무언가를 볼 때는 마음으로만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이런 문장을 만날 때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재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고 시원한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 그 문장이 내 안에서 뭔가 정화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문장은 내 영혼의 어둡고 아픈 곳을 찾아다니며 다독이고 위로했을 것은 분명하다.
멋진 문장에 끌리는 이유
평론가 황현산의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
황현산 교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 탁월한 문장가였기에 이런 멋진 문장을 쓴 비결이 항상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멋진 문장을 포착했을까? 그의 글에는 청년 같은 감수성이 있는데, 몸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의 감수성만큼은 병들지도 늙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문자 보낼 때 피해야 할 것은 상투적인 어투
하루에도 카톡으로 문자가 수시로 온다. 대부분은 생활정보, 혹은 간단한 안부나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이지만 때로는 지인들에게서 받는 문자 속 표현이 아쉬울 때가 있다. 특히 생일이나 새해 인사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모티콘이 어색함을 채워주긴 하지만 상투적인 문자는 어쩌면 무관심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좋은 글은 독자를 배려한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비밀이다. 좋은 글은 독자를 가르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저 살짝 생각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독자는 그것을 읽으며 행복해 한다. 글에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문자의 효과와 설득력은 사실성에서 오지만 그 안에 정서적 울림이 있으면 효과는 배가된다.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둔감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긴 문자를 쓰거나 예쁜 말을 찾아 쓴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섬세하게 드러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감동이 없는 글은 울림이 없기 때문이고 울림이 없는 글은 쓸데없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툴더라도 자기만의 표현을 찾자
영화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은 뒤 한 수상소감이나 인터뷰를 여러 곳에서 보았다. 특히 오스카 시상식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 그가 놀라운 것은 표현을 예쁘고 섬세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단 하나의 언어는 바로 ‘영화’입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봉 감독의 발언이 놀라움과 감동을 주는 것은 쉬운 표현으로 핵심을 짚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글에는 이런 힘이 있다. 우리 뇌는 공감이 되는 좋은 문장에 더 빨리 반응한다. 그가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을 읽었을 터이지만 더 근본적으론 고민하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잘 쓰려면 잘 생각해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는 걸 그를 보며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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