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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서 빛난 이건희 ‘글로벌 삼성’ 일궈낸 巨星 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무명의 삼성, 글로벌 초일류기업 도약

불모지 한국에서 과감한 반도체 투자…기업·국가경제 발전 견인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 미래먹거리 발굴…상생경영 리더십 앞장

강주현기자(jhkang@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10-25 13: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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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을 넘어 재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사진은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을 넘어 재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1987년 회장 취임과 함께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은 현실이 됐다.
 
이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와 비교해 오늘날 삼성의 매출은 39배 늘었고 주식 시가총액은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환경에서 반도체 산업 등에 과감히 투자해 발전을 도모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도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전자 산업은 국민 밥솥을 책임지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장의 믿음과 철학이 삼성, 나아가 국가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25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임직원수도 10만명에서 52만명으로 훌쩍 뛰었다.
 
고인의 성과에 대해 삼성전자는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사후 핵심 경영권을 승계 받아 무역 중심이던 회사의 방향성을 전자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삼성그룹을 글로벌 유수의 기업으로 변모시킨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2000년대 초반엔 글로벌 전자업계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던 소니를 추월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를 다니다가 1953년 일본에 유학했다. 다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경영 일선에 뛰어든 시기는 1966년 9월이다. 그는 같은 해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했다. 1968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 등을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됐다.
 
이후 반도체 사업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글로벌 무대에선 다소 뒤처지던 삼성전자를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믿음이었다.
 
고인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고 판단했다.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 1992년 이후부터는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했고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런 점유율의 배경에는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2007),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의 기술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 반도체’가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배경엔 이 회장의 과감한 판단과 리더십, 그리고 삼성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도 이 회장의 업적 중 하나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삼성전자는 1994년 10월 첫 애니콜 제품 ‘SH-770’를 내놓는 등 휴대전화 시장에서 본격적인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은 품질 경영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 오늘날 ‘한국 반도체’가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배경엔 이 회장의 과감한 판단과 리더십, 그리고 삼성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스카이데일리
 
‘구미 화형식’으로 불리는 불량 제품 소각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미 화형식은 1995년 구미 운동장에서 500억원 상당의 불량 전화기를 불태운 사건이다. 당시 이 회장은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소각을 지시했다고 한다.
 
같은 해 8월 애니콜 제품군은 국내 시장 점유율 51.5%로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였던 모토로라를 제쳤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신경영 선언…무명의 삼성, 글로벌 초일류로
 
이 회장은 기술 못지않게 인재를 중시했다. 고인은 1994년 학력과 성별을 철폐하는 열린 채용 제도를 지시했다.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 때부터 인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2002년부터는 계열사별 월별 핵심 인력 확보 실적도 확인했다.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도 인재 영입 실적을 적잖이 반영했다. 또 삼성은 여성 채용 인력 비중을 30%로 늘렸고 세계 시장별 맞춤형 인재 육성 제도인 지역전문가를 도입, 선발 인원 가운데 30%를 여성으로 배정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살리는 인재경영의 시대, 지적 창조의 시대다”고 말했던 바 있다.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영실천은 이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신경영’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도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고인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진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 혁신을 추진했다.
 
신경영은 1993년 삼성전자 세탁기 불량 사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 전자제품 매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매장 구석에 먼지 쌓인 채 놓여있던 상황 등이 맞물리며 제시된 경영 의제다.
 
이 회장의 질적 성장에 대한 위기 의식이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계에서는 신경영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이 글로벌 시장의 무명 기업에서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한다.
 
삼성그룹의 다른 한 축인 금융계열도 이 회장 시대에 구축됐다. 삼성그룹은 1988년 3월 삼성신용카드·동성투자자문을 설립하고 1991년 11월 현재의 삼성증권이 되는 국제증권을 인수했다. 1993년에는 삼성파이넌스와 삼성JP모건투자신탁을 세우면서 보험·증권·카드 등을 아우르게 됐다.
 
이 회장의 업적을 바탕으로 삼성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금융 위기 등 풍파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 삼성의 브랜드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다.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는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경쟁 속에서도 ‘함께의 가치’ 강조한 이건희 회장…유지 잇는 이재용 부회장 상생행보
 
이 회장은 삼성의 꾸준한 성장 속에서도 ‘상생’의 가치를 잊지 않았다. 이 회장의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삼성은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큰 화제가 됐던 바 있다.
 
또 이 회장은 삼성 계열사들에게 신뢰에 기반해 협력회사와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서는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라는 말이 사라졌다. 그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쓰며 ‘모두가 다 같은 삼성 가족’임을 확인시켰다.
 
고인은 1996년 신년사를 통해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신경영의 동반자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 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으로 간소하게 치러진다. 조화와 조문도 정중히 사양한다는 방침이다.
 
▲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사진은 이재용 부회장. ⓒ스카이데일리
 
이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있다.
 
이 회장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격 절차가 본격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며 50대 미만 ‘젊은 총수’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국내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 중 이 부회장은 유일하게 ‘부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 회장이 쓰러지기 전부터 그룹 중심축 역할을 해왔던 이 부회장은 아버지 만큼이나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하며 삼성전자의 성장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코로나19 확산, 미·중 무역갈등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안정적 실적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3·4분기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도 눈길을 끈다. 이 부회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가장 자주 만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또 GM, 골드만삭스, 코카콜라, 보잉 등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비공개 모임인 ‘비즈니스카운슬’의 회원이기도 하며 매년 7월 미국에서 열리는 정보기술(IT) 거물들의 모임 ‘선밸리 미디어 콘퍼런스’에도 꾸준히 참여 중이다.
 
재계는 빠른 시일 내 삼성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관측한다. 다만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국정농단 사건’ 등 사법리스크는 부담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은 오너 공백에 따른 투자 차질 등 경영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고인의 지분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납부해야 할 상속세도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삼성의 경제적 역할과 국가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감안해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주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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