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7 04:13
뉴스 > 연재기획
[이상준 칼럼] 관용을 베푼 대가는 배신? 쿠르드족과 배신의 역사
쿠르드 조상 살라딘 잉글랜드왕 리처드 살려줘
영국 석유 때문에 살라딘 후손 독립 국가 막아
이상준 필진페이지 + 입력 2026-03-13 15:41:22
▲ 이란계 쿠르드족이 2월 12일 이라크 에르빌 외곽에서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십자군 영웅 리처드는 위험했다. 직접 창을 들고 기습한 아랍군 기병과 맞섰다. 제3차 십자군 전쟁이 막바지였던 1192년 야파 전투. 이슬람 수호자 살라딘은 적장 리처드에게 말을 보냈다. “이토록 용맹한 왕이 평민처럼 땅 위에서 걷어차이며 싸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나중에 리처드가 고열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 살라딘은 리처드에게 과일과 의사를 보냈다. “리처드처럼 위대한 왕이 자연의 선물로 치유될 수 있는 하찮은 병 때문에 침상에서 죽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잉글랜드 왕 리처드는 아랍 통치자 살라딘의 관용과 기사도 정신 때문에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유럽을 감동시켰던 살라딘은 쿠르드족이었다. 자그로스 산맥을 넘나들던 쿠르드족 수장 살라딘은 수니파 제국 아이유브 왕조를 세운 영웅이었다. 예루살렘 대주교는 살라딘을 “날카로운 지성을 지녔고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관대하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문호 단테는 신곡 지옥편 제4곡에 살라딘을 플라톤, 소크라테스와 함께 등장시켰다. 영국 사학자 스탠리 레인 풀은 “어쩌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사도적이고 위대한 마음을 가진 정복자다”고 칭찬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든 잉글랜드 후손은 리처드를 살려준 살라딘 후손 쿠르드족에게 은혜를 어떻게 갚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철저하게 배신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소수민족을 부추겼다. 쿠르드족은 독립을 약속한 연합국을 위해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싸웠다. 덕분에 쿠르드족은 1920년 자치와 조건부 독립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거주지인 모술과 키르쿠크에 석유가 매장됐다는 사실은 쿠르드족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영국은 1923년 로잔에서 연합국을 설득해서 쿠르드족 독립국가를 뺀 채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라크를 식민지처럼 다스렸던 영국은 모술과 키르쿠크를 이라크 영토로 남겼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에서 몸값을 내지 못했던 가난한 기독교인조차 풀어줬지만 리처드 후손인 영국과 연합국은 석유 때문에 살라딘 후손의 독립을 막았다.
 
배신의 역사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1970년대 이라크를 견제하려고 쿠르드족 반군을 지원했다. 쿠르드 반군은 이라크와 싸웠지만 미국은 국경 분쟁이 타결되자 쿠르드족을 외면했다. 이라크는 1980년대 눈엣가시였던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했다. 미국의 배신은 21세기에도 있었다. 미국은 2014년부터 쿠르드 민병대로 하여금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맞서게 했다. 하지만 미군이 2019년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터키는 F-16 전투기로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르드족 학살을 모른 척했다.
 
국제정치는 냉정하다. 어제 친구가 오늘 적이 된다. 유독 쿠르드족에겐 동맹조차 없다. 쿠르드족은 최근 이란과 전쟁에 뛰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이란계 쿠르드족은 전쟁을 결심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쿠르드족이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에겐 친구란 없다. 오직 험한 산만 있을 뿐이다.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21,748 ▶
어제 135,094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