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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존경받는 축구 명감독 퍼거슨卿 롱런의 비결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22 09:15:05

 
▲박병헌 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최고 명성 구단 맨유서 27년간 지휘봉
/온화함 속 카리스마… 외유내강의 전형
/선수 개성‧장단점 존중, 인간관계 중시
/스포츠인으로는 드물게 기사작위 받아
  
모든 스포츠 가운데 가장 단순한 축구는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축구는 가장 많이 보급된 스포츠가 되었으며, 국가 간 축구 대항전은 ‘대리 전쟁’이라 불릴 만큼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축구에 관한 모든 행정권을 관장하는 국제축구연맹(FIFA)가입국은 2020년 말 현재 211개국으로 유엔 가입국(201개국), 국제올림픽 위원회(IOC‧206개국) 가입국보다 많다. 유엔이나 IOC에 가입하지는 않았더라도 FIFA에 가입한 축구의 인기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맨유는 최고 인기 ‘명문구단’
 
축구의 인기는 ‘축구 종가(宗家)’ 영국에서는 더할 나위 없다. 영국인들은 축구에 인생을 걸다시피 하고, 축구가 생활의 일부분이 된지 오래다. 이러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문 클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다. 영국의 웬만한 클럽팀들은 창단한지 100년이 안된 팀이 없을 정도다. 맨유 역시 창단된 지 140년이 넘는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지휘봉을 무려 27년 동안 잡았다. 2013년 7월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를 떠났을 때 퍼거슨의 나이는 만 72세였다. 구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팬들의 열화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은 바쁜 프로팀 감독생활 탓에 그동안 소홀히 했던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퍼거슨은 화려했던 감독생활에 비해 선수 때에는 별 볼일 없었다. 물론 유명 스타 플레이어가 명감독이 되라는 법은 없다. 그는 유럽의 빅 클럽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변방에 속하는 스코틀랜드 리그의 던펌린 애슬래틱 및 레인저스 등에서 공격수로 활약한 게 전부였다.
 
그의 나이 33세이던 1974년 스코틀랜드 리그 이스트 스털링셔 감독으로 취임한 게 40년 지도자 생활의 첫 단추였다. 이후 애버딘FC감독에 취임하면서 스코틀랜드 리그 3회 우승, 스코틀랜드컵 4회 우승, 1983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위너스컵 우승을 하며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이후 스코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조크 스테인이 갑자기 사망하자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맡아 1986년 FIFA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은 명장 퍼거슨 감독이 이끌었다 하더라도 선수층이 얕았던 탓에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퍼거슨은 그해 11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선수들의 실력이 빼어난 맨유를 지휘하기에 이른다. 그는 맨유에서 지도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세계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올라
 
퍼거슨 감독은 27년간 맨유 사령탑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잉글랜드 FA컵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 총 38회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1999년에는 영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맨유가 트레블(리그 우승, FA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이루는 것)을 달성 한 뒤 이에 따른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가 퍼거슨경(卿)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프로 선수 출신이 기사 작위를 받는 것 또한 흔한 일이 아니며, 가문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퍼거슨은 2010년 12월 19일에는 맷 버즈비(1994년 1월 작고)의 기록을 넘으면서 맨유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아내와 함께 하고파 지휘봉 내려놔
 
70대 나이에 접어들어 은퇴설이 꾸준히 흘러나왔지만 쉽사리 맨유를 떠날 수 없었다. 구단과 팬들의 요청 때문에 자신이 유일하게 좋아하고 할 줄 아는 축구와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3년 5월 맨유에 20번째 리그 우승을 선사한 뒤 퍼거슨은 홀가분하게 은퇴할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마음 편히 은퇴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다. 그의 은퇴 결정이 발표되던 날 맨유 주식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5%나 하락하기도 했다. 그가 맨유에 미치는 임팩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맨유 구단은 퍼거슨이 은퇴하기 6개월 전 그레이트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 구장 외곽에 동상을 세워 퍼거슨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함을 표했다. 은퇴한 뒤에는 올드 트래포드 근처의 도로가 그의 이름을 따 알렉스 퍼거슨 웨이로 개칭됐다.
 
퍼거슨에겐 특별한 무엇이 있다
 
2인자가 존재하지 않는 승부의 세계에서 프로팀 감독의 생명력은 파리 목숨처럼 단명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남과 다른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존경 받는 축구감독이 바로 퍼거슨이다. 신비로운 마력을 가진 감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지도자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다.
 
퍼거슨은 시골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풍기지만 그 내면에는 남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이런 카리스마는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더불어 선수들에게 때로는 긴장을 풀 수 없는 공포감 수준으로 상승작용을 하며 콧대 높고 제멋대로의 선수단을 장악했다.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빈 집에 퍼거슨 혼자 있어도 싸움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지도자다. 그렇지만 그는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단점을 최대한 존중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따뜻한 아버지 같은 감독이었다. 그랬기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몰려 있는 맨유 선수들이 그를 따르면서 단합된 힘을 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게 퍼거슨 감독의 롱런 비결이었다. 선수들 모두가 퍼거슨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다는 점은 다른 감독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가장 특출한 점 중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을 완벽히 기억하는 능력이었다. 선수단의 세탁실 및 청소 직원, 선수들 아내와 자식들까지 그는 모르는 이름이 없었다. 선수들과의 대화에서도 늘 아내와 아이들 이름까지 일일이 대며 안부를 물을 정도였으며,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름들을 모두 기억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자존심을 세워주곤 했다.
 
맨유를 사랑하는 영원한 맨유맨
 
몸은 비록 맨유를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홍보대사로 활약 중이다. 몇 해 전에는 맨유 감독 생활동안 모아온 와인을 모두 경매시장에 내 놓아 거둔 수익금이 무려 350만파운드(한화 약 54억6000만원)에 달했다. 이 돈의 일부는 자신이 70여년 전 어렸을 적 몸담았던 클럽팀에, 또 일부는 맨유 유소년 클럽에 기부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 맨유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퍼거슨이다. 이따금씩 여전히 올드 트래퍼드를 찾는 노병의 맨유 사랑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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