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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북촌서 만나는 질박한 강원도의 맛

여운형 집터 근동 토속음식점 ‘밀과 보리’

북촌의 조붓한 골목은 식전·후 산책 코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30 11:20:26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음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안내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쉐린가이드’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Michelin)이 1900년부터 발간한 여행 가이드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호텔과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있다. 미쉐린이 ‘미쉐린가이드’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여행지의 호텔과 식당을 찾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가기 위한 의도다. 그래야 타이어 빨리 닳게 되고 자사 타이어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다.
 
자동차 생활이 보편화되고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미쉐린가이드’는 타이어를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보다는 미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이 됐다. ‘미쉐린가이드’는 붉은색 표지 때문에 일명 ‘레드가이드’로도 불린다. 붉은색은 여러 색 중 가장 강렬하게 미각을 자극하는 색이다. 이처럼 책 표지 하나서부터 디테일하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꿈틀거리게 하는 것이 현대 ‘미쉐린가이드’의 목적이다.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미식
 
자동차를 몰고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여행’ 목적이 가장 많다. 여행의 만족도는 여행지가 주는 풍광과 체험 콘텐츠 등 다양하게 있지만 결론은 ‘음식’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장이지만 동의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많은 여행 경험에서 도출한 결론은 결국 음식이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하루 종일 걷고, 보고, 타고, 체험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것이 음식이다. 물론 ‘맛있는’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어야 진정한 위로가 되겠지만 말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 미식은 그래서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끼를 먹더라도 가급적 영혼을 달랠 수 있는 미식을 추구해야 할 이유다. 의식주는 헌법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아니던가!     
 
필자는 문화지평이란 비영리민간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 등을 톺아보는 인문콘텐츠 연구 단체다. 현장 답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주요 도시 이곳저곳을 자주 누빈다. 그러다 보니 옛것이 많이 보존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북촌을 여러 차례 부지런히 누볐다. 물론 요즘도 여전히 무수히 발도장을 찍고 다니는 중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의 실핏줄 같은 골목길이 있고 그곳에는 누대에 걸친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필자의 칼럼은 소소한 현장의 서사를 담고 식후경(食後景) 또는 경후식의 미식으로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미식을 위해 어딘가로 떠난 다는 것은 결국 지역에 서려 있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의 본질은 ‘밥 먹고 합시다’가 아니고 ‘금강산 유람의 끝은 미식’인 것이다.
 
500여 년 조선의 도읍과 수도로 근현대까지 이어 온 서울만도 구석구석 가볼만한 데가 수도 없이 많다. 문화재, 사적, 명승, 미래유산 등 역사적 이야기를 담은 볼거리가 도처에 있다. 가깝게는 서울, 때로는 수도권을 벗어나 조금 멀리 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투박하지만 정이 담긴 글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는 중이다.
 
무엇보다 입맛은 주관적이고 제각각인지라 소개하는 내용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또 역사적 내용에 오류와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기탄없이 의견을 주면 틀린 점은 고치고 다른 점은 접점을 찾도록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음식점 소개를 할 때 가급적 대표자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 이름도 개인정보라 본인이 원치 않으면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미스터리 쇼퍼(암행 평가자)처럼 몰래 다녀온 뒤에 음식을 논하기 때문이다. 가끔 실명이 나오는 것은 주인과 아주 잘 아는 집이란 의미다. ‘맛있는 동네산책’이란 칼럼을 쓰면서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이제야 글을 남긴다.
 
북촌1경서 만나는 칼국수·보리밥 맛집
 
▲ 몽양 여운형 집터 근처에 있는 토속음식점 ‘밀과 보리’. 간판의 ‘밀’자는 밀가루처럼 흰색, ‘보리’는 청보리 색으로 꾸몄다. 센스가 돋보이는 간판이다. [사진=필자제공]
 
이번 소개할 식당은 북촌위 몽양 여운형 집터 표지석 근처에 있는 ‘밀과 보리’라는 음식점이다. 몽양은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민족지도자다. 식당 앞 도로는 좁았던 것을 크게 확장하면서 집들이 일부 헐려 나갔다. 지금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데 그때 몽양의 집터도 뭉텅 잘려나갔다. 그리고 한옥 전면을 벽돌로 마감하고 식당이 들어섰으니, 지금의 ‘안동손칼국수’다
 
몽양은 당시 대지 160평방미터(48평)에 건평 125평망미터(38평) 정도 되는 전통 한옥에서 살았다. 1989년 서울시의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헐렸다. 몽양은 이곳에서 1933년부터 1947년 암살될 때까지 살았다. 몽양이 암살된 장소는 혜화동 로터리다. 이곳 한쪽 벽에는 몽양기념사업회에서 금속 현판을 걸어 역사적 장소임을 입증하고 있다. 몽양의 집터 고개를 넘으면 북촌8경 중 제1경인 창덕궁 안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스팟이 나온다.       
 
한편 ‘밀과 보리’는 북촌에서 제법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지난해 무더위가 한창일 때인 8월 TV조선 ‘허영만의 맛집기행’에 소개되면서 더욱 북적이게 됐다. ‘밀과 보리’란 상호는 이 식당의 주력 메뉴인 칼국수와 보리밥의 재료에서 따왔다. 상호에서 메뉴를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함으로써 오래도록 기억되게 하려는 ‘의도치 않은 의도’가 담겨 있다. 상호를 어찌 지었냐는 질문에 ‘그냥’, ‘쉽게’란 답이 돌아왔기 때문에 내린 필자 나름의 해석이다. 문을 들어서면 제법 긴 복도를 지나야 홀에 다다를 수 있다. 좌석은 가로 일렬로 펼쳐져 있다. 좌측 끝 부분 꼬부라진 구석에 테이블 하나가 숨어 있다. ‘짱 박혀서 한잔하기 좋은’ 이 자리 선점을 위해선 치열한 예약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꾸면서 가뜩이나 좁은 식당이 더 좁아졌다. 그러나 손님 누구 한 명 좁은 자리를 불평하지 않는다. 이미 각오하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곧 단골이 많은 식당이란 의미다.     
 
‘강원도의 힘’이 느껴지는 음식
 
▲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모두 직접 만든 정성 가득한 밑반찬. [사진=필자제공]
 
벽에 걸린 메뉴판을 둘러보자. 처음 방문하는 식당서 실패하지 않는 요령 첫 번째는 메뉴판 최상단에 있는 것을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다. 식당 측에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앞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변 테이블에서 둘러보고 여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을 시키면 무리가 없다. 맛은 만국만인(萬國萬人)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밀과 보리’ 메뉴판에는 특이하게도 <저희 업소는 싱겁습니다!!>라고 적어 놨다. 그리고 가장 앞세운 메뉴가 생바지락칼국수, 곤드레나물밥, 흑밀·보리밥이다.
 
필자는 이 식당을 최근에 두 번 방문했다. 첫날은 보쌈을 주문했지만 먹지 못했다. 고기 삶는 시간 때문에 적어도 1시간 전에 주문해야 한다.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하고 닭볶음탕을 시켰다. 그리고 해물파전과 마리아주로 지평막걸리, 태백더덕주를 택했다. 마리아주(marriage)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 영어로는 혼인을 뜻한다. 술과 음식의 궁합을 혼인 정도로 중요시(?)한 서양인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먼저 밑반찬으로 세계 속의 우리 음식 김치를 필두로 달래·참나물·콩나물무침, 표고·멸치새우볶음, 도토리·올방개묵 등 7종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봄의 전령 달래와 참나물이 계절을 알렸다. 공장표 음식 하나 없는 모두가 직접 무치고 볶은 음식이다.
 
이틀 후 다시 찾았을 때 밑반찬에는 민들레무침과 가지볶음이 새로 등장했다. 봄은 나물류가 가장 많이 나올 때다. 그래서 식탁에 변주(變奏)를 많이 줄 수 있다. 게다가 직접 장보기를 하기 때문에 좋은 식재료가 눈에 띄는 날은 밑반찬도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이곳 밑반찬에는 식품영양학적 음식 과학이 숨겨져 있다. 채소와 묵의 원재료와 각종 양념, 볶음 요리에 들어간 기름, 그리고 동물성인 멸치와 새우의 영양학적 조화가 매우 좋다. 의도했건 아니건 이 정도 밸런스 있는 밑반찬을 내놓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기본기가 탄탄한 식당이다.
 
식당 대표 부부의 북촌 인연은 30년 정도 된다. 이제는 북촌 터줏대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출생은 공교롭게도 같은 강원도 태백이다. 그래서 곤드레나물밥, 보리밥, 태백더덕주, 감자전 같은 강원도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많이 구성돼 있다. 음식 내공은 가회동성당을 지을 때 인부들에게 밥을 해주면서 쌓았다. 이미 어느 정도 음식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원한 일이었다. 그 일이 식당을 오픈하는 힘이 됐다. 벌써 7여년 전이다.     
 
훌륭한 맛에 인심까지 얹은 ‘찐맛’ 
 
▲ 단품메뉴인 닭볶음탕, 해물파전, 보쌈 그리고 ‘밀과 보리’ 내부. 아크릴 가림막을 촘촘하게 세워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사진=필자제공]
 
해물전과 닭볶음탕은 싱겁다기보다는 짜지 않아서 좋았다. 간이 적당하단 뜻이다. 특히 닭볶음탕은 걸쭉한 육수와 큼지막한 감자, 당근과 양파와 대파를 듬뿍 넣고 끓여서 맛깔스럽게 달근한게 밥반찬은 물론 안주로도 일품이다.
 
두 번째 방문 때는 한 시간 전에 보쌈을 예약했다. 독특하게 보쌈김치 대신 바지락무침을 수육과 함께 먹는 사이드로 내놨다. 처음 접해본 조합이라 다소 당황했지만 메뉴에 바지락무침이 있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응용력이 돋보이는, 지혜로운 조합이란 생각이다. 수육과 바지락무침의 어울림이 썩 괜찮았다. 홍어도 소량 제공돼 삼합 풍미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부부는 자신들이 식사를 하려 끓이던 서더리탕을 옆에 앉아 있던 우리 일행에게 듬뿍 덜어주고 강원도서 보내온 것이라며 속살 뽀얀 더덕을 맛보기로 내주기도 하는 등 손님과 끊임없이 교감했다. 이를 교감이라 쓰고 인심이라 읽는다. 
 
밑반찬이 많이 남아 보리밥 한 그릇을 달라고 했더니 강된장을 함께 내줬다. 쌈 채소도 흔한 상추가 아닌 로메인, 청겨자, 뉴그린, 치콘 등 고급이다. 쌈밥 전문점이 아니면 쉽게 내놓지 않는 채소류다. 이들을 잘게 찢어서 남은 반찬과 함께 강된장을 넣고 비볐다. 음식을 남김없이 비우고 든든한 밥으로 마무리하는 일석이조 방법이다.      
 
다음에는 저녁 주안상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녀와야겠다. 정식으로 좋아하는 면식인 바지락칼국수와 곤드레나물밥을 맛보고 싶다. 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음식인 순감자전과 전의 정석인 김치전도 먹어보련다. 가장 애정 하는 홍어전과 버금가는 미나리전, 새콤한 게 입맛을 돋우던 바지락초무침과 집에서 잘 못해먹는 생선정식 등, 아! 좋아하는 음식이 메뉴판 한 가득이다.
 
‘밀과 보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몽양의 집터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면 북촌1경이 나온다. 창덕궁을 고즈넉이 내려 보면서 궁궐 담에 이르면 좌측으로 걸러 올라가다 보니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에서 시민들의 위한 가칭 노무현시민센터를 한창 짓고 있다. 지하3층 지상3층으로 짓는데, 창덕궁 옆이라서 지상보다는 지하로 공간을 낸 듯하다.
 
한참을 더 오르면 궁중음식연구원과 화가 고희동 가옥이 있고 막다른 길에 이르면 창덕궁 안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빨래를 했던 원서동빨래터가 나온다. 예부터 물이 풍부해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고 궁 사람과 일반 백성들이 함께 이용했다. 북촌을 거닌다는 것, 정서적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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