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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니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8-11 09:33:12

 
▲ 이동호 변호사
여당, 징벌적 손해배상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
성문법 위주 우리 법체계에 징벌적 배상은 안 맞아
형사처벌에 징벌 배상까지 부과하면 이중처벌 위험
다른 법의 징벌 배상 규정도 활용 적어 유명무실화
실익 적고 언론자유 위축시킨다는 오명 초래할 듯
 
여당이 지난달 말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언론사에 대해 소위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8월 안에 본회의까지 통과시키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반대에 나섰다. 민주노총·전교조와 함께 이 정부 탄생의 산파로 꼽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이달 2일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명분은 서로 대화하자는 것이지만 여당이 법안 강행 처리를 이미 밝혔는데도 토론회를 연 것은 이 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여당이 통과시키려는 개정안의 내용이 궁금해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들어가 봤더니 정청래·신현영·최강욱·박정·윤영찬 등 개별 의원의 개정안은 확인되지만 이를 묶은 여당의 대안은 아직 시스템에 등재되지 않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야당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자료를 얻었는데 언론사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 또는 조작된 보도를 한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되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해당 언론사의 연간 매출액을 기준으로 만분의 1에서 천분의 1의 범위에서 판사가 정할 수 있게 했다. 또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하거나 계속적·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하는 등 일정한 경우에는 아예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해 버리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근본적으로 우리 법체계에는 맞지 않는 제도다. 흔히 보통법(Common Law)이라고 하는 영미법 체계에서는 순회판사라고 하는 법관들의 판례가 모여서 법을 형성하는 전통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악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려 형벌적 효과를 거두자는 취지에서 발전한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반면에 우리나라가 속한 대륙법 국가에서는 손해배상의 요건이나 한도를 미리 성문법으로 정해서 가해행위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실손해에 국한해서만 배상하는 제도가 정착됐다. 그래서 실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민법을 놔두고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개별법에 영미법적인 징벌적 배상을 도입하면 법체계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앞으로 모든 개별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요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올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한편, 명예훼손을 거의 형사처벌하지 않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를 형사처벌하고 있는데 거기에 또 실제 손해 이상의 징벌적인 배상책임까지 부과하면 사실상 이중처벌이 되는 문제도 있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로 거듭 처벌되지 아니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를 ‘일사부재리 원칙’이라고 하는데 헌법은 비록 형사처벌에 한해서만 규정하고 있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도 통하는 보편적인 법치국가의 원리이다. 그래서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대신에 형법의 명예훼손 규정은 폐지하겠다고 하며 언론계를 달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명예훼손죄 폐지가 언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에겐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이 언론사를 상대로 피해를 회복하기에는 민사소송보다는 형사 고소가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간에 시끄러운 시비를 중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을 때 명예훼손 고소가 여전히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이 법이 과연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를 막는 일반예방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살인범에게 사형을 부과한다고 해서 살인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것과 똑 같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일반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최고 형벌인 사형을 아예 없애는 것보다는 그대로 두는 것이 그래도 살인 사건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러저러한 반대로 실제 손해의 5배 이내이고 손해액 산정이 어려울 때도 언론사 연간 매출의 1000분의 1 이내에서만 손해액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동아 3사의 매출이 2000억대라서 1000분의 1이면 2억원 수준이라 이 정도를 징벌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해 보이지 않는가. 최근에 조선일보가 조국 씨 재판 관련 보도에서 잘못된 일러스트를 게재한 실수를 두고 조국 씨가 미국 법원에 1억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일이 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는 완전히 동떨어진 얘기라서 별로 엄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당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출 700~800억 수준의 경향‧한겨레 같은 소위 진보 성향 중소 언론사들에 더 부담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형벌에 해당되는 벌금이나 행정 제재금인 과징금은 국가에 귀속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피해자에게 귀속되어 버리는 점도 문제이다.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니 피해자가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격이 징벌적이라면 그 이익은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익만을 노린 기업의 악덕 행위에 대해서는 그런 부당 이득을 환수해서 피해자에게 주는 것이 수긍할 만도 하다. 그러나 언론사는 이익만을 노린 소위 ‘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당 이득 환수라는 명분도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끝으로 우리 법에는 이미 하도급법, 제조물책임법 등 17개 법에 실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들어 있는데 이 규정들은 잘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찾아보니 2020년 12월 17일 열렸던 언론중재위원회의 토론회(‘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따른 법적 실무적 쟁점’) 보고서 중 현직 판사의 토론문에는 지금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문제된 사건이 12건인데 그 중 배상이 인정된 것은 2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유명무실한 조항으로 볼 수 있는데 고의·중과실 같은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하고 배상액도 크다 보니 재판에서 인정받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입법자는 그들의 의도대로 법원이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법체계에 안 맞고, 이중처벌 위험도 있고, 실효성이 적어서 자칫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는 법 조항을 왜 하필 대선을 앞둔 시기에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여당이 작년 이맘 때에도 민생 입법이라며 무리하게 통과시켰던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이 법 역시 별 실익도 없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려 했다는 오명만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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