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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의 군사이슈

선언에 그친 9·19 남북 군사합의

북한의 합의 파기 위협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08 09:15:00

▲ 박정이 전 육군대장·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9·19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실제적 조치’를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은 장성급 군사회담과 군사실무회담을 통해 군사분야 합의에 관한 내용을 조율해 왔으며, 9.19 남북 군사합의는 이와 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는 6개조 22개항으로 구성된다.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제1조),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대책 강구(제2조),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조성으로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 및 안전한 어로활동 보장(제3조), 남북 교류협력과 접촉·왕래 활성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제4조),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 강구(제5조) 등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4·27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군사분야 합의로서 평화와 번영 및 통일을 추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나, 남북한이 추구하려는 목표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목표를 두었으나, 북한은 한반도 평화 보다는 극심한 경제난 극복과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위해 유리한 핵협상을 견인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합의에 임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볼 때 남측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적 실익을 기대했었으나 대북제재로 이것이 여의치 않자 군사분야 합의로 실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많은 대화와 합의가 이뤄져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등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은 대내외적 상황이 불리할 때 대화와 협상에 임했고, 합의 후 일방적으로 합의사항을 깨고 도발로 전환하곤 했다.
 
이번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단기간에 핵무기체계를 완성했으나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국내 경제상황의 악화로 경제·핵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채택하고 추진하면서 외부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됐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가 체택된 후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분야의 합의가 한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우리가 한·미 동맹을 훼손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그러나 그 이행실태를 분석해 보았을 때 가시적으로 긍정적인 성과도 있다.
 
접경지역에서 지·해·공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가 중지됐는데, 2020년 5월 감시초소(GP) 총격도발 외에는 2018년 이후 장기간 침투 및 국지도발이 발생하지 않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위해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이행 등은 19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중무장화된 비무장지대를 정전협정의 기본취지에 맞게 복원을 시도한다는 의미가 크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기존의 합의와 달리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군사조치들이 실제로 이행됐다는 점에서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지만 이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제한사항도 존재한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제재수단이 없다. 9·19 남북 군사합의의 초기 이행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던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비핵화 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더 이상 합의사항 이행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남북한의 군사력의 비대칭적 구조는 군비통제 추진의 제한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원하고 있으나,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체제생존 및 적화통일의 핵심수단인 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반도 재래식 군비통제는 ‘군사적 신뢰구축’ 및 ‘운용적 군비통제’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군비통제 추진을 위해 군사적 신뢰구축은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협력이 군사적 협력을 선도하는 신기능주의적 논리에 의하면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노이 핵 협상이 결렬된 이후 9·19 남북 군사합의 이행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과의 정치적 신뢰구축은 아주 중요하다. 또한, 합의의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이 강구돼 있지 않다. 매 합의시 마다 검증체계를 구축하고 검증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한반도 군비통제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실천사항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증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2018년 이후 북한이 보여준 평화행보 자체는 일종의 위장평화공세였으며, 대내적으로는 체제를 선전·유지하고 대외적으로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외교 전략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평화공세를 펼치면서 9·19 남북 군사합의에 서명했으나 이에 반하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2019년에는 신형 단거리 발사체 및 초대형 방사포 연속 도발(5∼11월, 13회), 북극성-3 시험발사(10월), 창린도 방어부대 해안포 사격(11월) 등을 자행했다. 2020년에는 5월에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도발에 이어 6월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북한의 합의이행 의지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을 제공했다.
 
특히 2020년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탈북민 대북전단살포 규탄담화 발표 이후 군사적 대결구도로 진입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이 차단·철폐됐다. 남북대화의 소통 창구역할을 해왔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제거함으로써 남북이 적대관계로 급변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사항 중 협의·처리하도록 명시된 과제들은 대부분 ‘남북공동군사위원회’를 구성해 추진돼야하나 현 상황에서는 추가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는 타결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공언하면서도 파기하지 않는 것은, 9.19 남북 군사합의의 근거인 4·27 판문점 선언에 2018년 5월 1일부터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활동을 중지하고 그 수단의 철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합의를 파기한다면 남측의 대북심리전 방송 재개를 막을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남북대화에도 호응하지 않는 것은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북한이 9·19 군사합의 이행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만일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거나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경우 자기들이 얻는 이익에 매달리기 보다는 남측에 더욱 큰 충격을 줄 목적으로 9·19 군사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9·19 남북 군사합의도 북한의 대남전략의 연장선상에서 타결됐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의 합의 위반행위와 합의 파기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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