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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70세 강문수 탁구감독의 지도철학은 不狂不及

<불광불급‧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09 10:26:48

 
▲박병헌 언론인·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많은 걸 이룬 후회 없는 탁구 인생
/유남규 ‧ 유승민 등 숱한 제자 길러
/여자팀 대한항공도 실업정상 올려놔
/중국을 무릎 꿇리는 게 평생의 소원
 
한국 탁구계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강문수 대한한공 탁구단 감독은 올해로 탁구 인생 55년째다. 아직도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올해 고희를 맞았다.
 
경북 경주 출신의 강 감독은 국가대표를 지냈으나 오히려 지도자로서 명성을 더 날렸다. 지도자 생활만 올해로 무려 41년째다. 지금은 충북 진천으로 이전했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의 터줏대감이었다.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대표 지휘봉을 처음 잡은 것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였다.
 
부모 몰래 호기심에 탁구채 잡아
 
학창시절 호기심에 재미삼아 잡은 탁구 라켓이 50년 넘게 인생을 함께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탁구 인생을 걸어온 것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 국가대표 선수에 국내 최고 실업팀인 삼성에서 34년간의 지도자 생활에다 임원을 지냈고,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기 때문이다. 2.7g의 작은 탁구공 하나로 많은 것을 이뤘다. 경기인 출신으로서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현재도 실업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한항공 여자 탁구팀 감독으로 노익장을 떨치고 있다. 지도자에게는 정년이 따로 없다. 힘과 능력이 부족하면 떠나야 하는 거고, 성적을 내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처럼 70대 후반까지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승부의 세계다.
 
경주중 2학년 때 방과후 수업에서 재미삼아 탁구 라켓을 처음 잡은 게 평생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지낸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과 같은 반 절친으로 함께 탁구를 시작했으나 재주가 남달랐던 강 감독은 공부를 하라는 부모를 몰래 속여가면서 탁구라켓을 잡았다.
 
어려서부터 승부근성이 남달랐던 그는 남들보다 뒤늦게 탁구라켓을 잡았기에 몇 배 이상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실력이 일취월장한 그는 창단 멤버로 동료 3명과 함께 경주고에 진학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팀이 해체됐다.
 
강 감독은 하는 수 없이 탁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구에 있는 중앙상고로 옮겼다. 이곳에서 전국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끄는 등 두각을 나타낸 그는 선배들의 설득으로 전매청에 입단한다. 국가 기관인 전매청에서는 기능직이었기 때문에 급여가 형편없었다. 장래가 불확실해 전매청에서 1년간 뛰다가 교사가 되겠다며 대학을 갔다. 몇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장학금에다 먹여주고 재워주겠다는 경기대 체육교육과를 택했다.
 
태극마크 달려고 혼신의 노력
 
실업팀에 있으면 대표 선수를 꿈꿀 수 있지만 대학 팀은 운동량이나 환경 등에서 아무래도 처질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전국대회에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대표 선수를 못하면 은퇴 후에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태극 마크를 꼭 달고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고민 끝에 병역문제도 해결하고 운동도 하겠다는 생각에 1974년 공군에 입대한 뒤 코치도 없었지만 죽기 살기로 훈련에 매진했다. 오로지 태극 마크를 달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75년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고, 이듬해 독일오픈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체구가 작지만 성격이 불같아서 ‘불타는 휘발유’, ‘번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키가 164㎝로 작지만 하체와 어깨 힘이 좋은 데다 순발력이 뛰어나 선수시절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당시 여자 탁구는 정현숙, 이에리사 등이 1973년 사라예보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을 제패하는 등 잘 나갔기에 남자 탁구는 찬밥신세였다.
 
실업팀 대우중공업과 학업을 병행했던 그에게 큰 행운이 찾아온다. 대구지역 선배이며 탁구 대선배인 박성인 총감독으로부터 제일모직 남자탁구팀 코치직을 제의받았다. 탁구 선수 출신인 박성인 씨는 삼성스포츠단 단장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는 등 체육 행정가로 이름을 드높였다. 1980년 1월2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한남동 저택을 찾아 정중히 인사를 올리며 탁구 경기 심판을 봤던 게 강감독이 34년간 삼성의 밥을 먹게 된 시발점이다. 일개 탁구단 코치를 영입하는 데도 이건희 회장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원모어’ 정신으로 기록 제조
 
그가 열심히 지도했던 제일모직 탁구팀은 1983∼84년 전승의 기록을 세우며 실업 최강에 올랐다. 종합선수권 대회 남자부 7연패, 여자부 9연패를 이뤄 강 감독은 ‘기록 제조기’로 불렸다. 남자대표팀에 소속팀 선수가 늘 2, 3명 선발되는데도 정작 강 감독에게 대표팀 코치 자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만 먹고 있던 그에게 86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라는 중책이 맡겨졌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못 이겨본 ‘만리장성’과 일본을 타도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했음은 물론이다. 중국의 빠른 탁구, 일본의 움직이는 탁구를 제압하기 위해선 무아지경에서 반사적으로 스매싱을 하도록 훈련시켰다. 그 결과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일본과 중국을 사상 처음 꺾고 단체전 금메달을 땄고, 개인전에선 당시 고등학생이던 유남규가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선수들 훈련을 위해 볼 박스를 많이 쳐 준 결과 목디스크가 왔지만 굴하지 않았다. 1985년 9월 61㎏이던 몸무게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는 무려 6㎏이나 줄었다. 88서울올림픽에서도 유남규가 단식 금메달을 땄지만 86 때만큼 감격이 크지는 않았다. 서울올림픽을 마친 뒤에는 허리디스크까지 왔다. 올림픽 등 큰 대회를 마치면 그에게는 큰 병이 하나씩 찾아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에는 위암에 걸렸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절제수술을 했다.
 
국가 대표 지도자로 30여년간 땀을 흘린 강 감독은 선수들에게 할당된 훈련 시간을 단 1분이라도 줄여준 적이 없다. 50시간의 주간 훈련 시간이 책정돼 월요일에 선수가 몸이 아파 30분을 빼먹었다면 반드시 이후에 이를 보충토록 했다. 이는 선수 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남들보다 한 번 더, 한 발짝 더 뛰어야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원 모어’ 정신이 그의 지도철학이다. ‘원 모어’ 정신은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로 애제자인 유승민이 리우올림픽에서 8년 임기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탁구 선수 출신인 대한항공 이유성 전무의 간곡한 부탁으로 2019년 2월 ‘노병’으로 팀을 맡았다. 이제까지 남자 선수들만 지도했던 그에게 여자 팀은 처음이었다. 남자와 달리 터프하게 지도할 수 없지만 솔선수범으로 지도력을 발휘했다. 강 감독이 팀을 맡은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대회가 치러지지 못했지만 5개 대회에 출전해 올 7월 제67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등 3번이나 정상을 차지해 역시 ‘기록 제조기’ 강 감독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미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不狂不及)’라는 게 강 감독의 지도 철학이다.
 
중국 무너뜨리고픈 ‘노병’의 오기
 
강 감독은 요즘 오기가 발동했다. 세계 탁구계의 천하무적인 중국을 무릎 꿇리는 게 유일한 소원인 강 강독이 이끄는 대한항공에 ‘탁구 천재’ 신유빈이 입단했다. 더구나 신유빈의 아버지 신수현 씨도 탁구선수 출신으로 과거 강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아버지와 딸을 대를 이어 지도하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지난 달 끝난 도쿄올림픽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신유빈이 강 감독의 호된 조련을 거쳐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만리장성을 무너뜨릴지 기대된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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