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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사형 집행, 계속 미루기만 할 것인가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0-20 09:30:30

 
▲ 이동호 변호사
법원, 살인범 사형 선고에 소극적으로 일관
세 모녀 살인범도 사형 아닌 무기징역 선고
살인범이 사형 호소하며 재판을 농락할 지경
사형, 미집행 중일뿐 폐지로 결정된 적 없어
이번 대선, 사형 집행할지 반드시 논의돼야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가는데 후문 앞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올해 벽두부터 온 나라를 분노에 사로잡히게 했던 정인 양 학대 사망 사건의 2심 공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5월 무기징역을 받은 양엄마에게 2심에서는 사형을 선고하라는 시위대의 절규였다.
 
앞서 12일에는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차례로 살해한 김태현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사귀던 여성이 만남을 거부하자 집에 찾아가서 6시간에 걸쳐 여동생과 그 어머니에 이어 사귀던 여성까지 3명을 차례로 살해했는데도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범인이 도주하지 않았고 벌금형 이상의 전과가 없고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있는 점 그리고 다른 사건 양형과의 형평성 등이 이유였다고 하는데 변호사인 필자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3명이나 죽인 흉악범의 반성이 어떻게 양형의 고려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14일에도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전자발찌 착용 중에 이를 뜯어내고 도망가서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에 대한 재판에서 강윤성이 변호도 필요 없으니 사형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 살인범의 호소를 순수한 시각에서 보지 않고 있다. 선정적인 방법으로 뉘우침을 표시하여 선처를 구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1심이긴 하지만 3명 죽인 김태현이 사형을 면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강윤성도 사형을 면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강윤성은 어차피 붙잡힐 것을 예상하고 자수를 했는데 자수는 필수적인 감형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죄질로 볼 때 충분히 사형감인데도 무기징역에 그친 사례가 더 있었다. 손님이 기분 나쁘게 굴었다고 때려죽인 후 시체를 한강에 버린 모텔 종업원 장대호와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뒤 도피하는 주민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상해한 안인득의 사례다. 안인득의 양형 이유에는 심신미약도 포함돼 있었는데 심신미약은 심신상실과 달리 필수가 아닌 임의적인 감경 사유이다. 그래서 판사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감경을 해줬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두 명 정도는 죽여도 절대로 사형이 안 내려지고 서너 명 죽여도 미친 척 해버리면 사형을 피할 수 있다는 끔찍한 공식이 자리잡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무려 27년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이런 사례를 모를 리 없는 강윤성의 사형 호소 앞에서 형사 재판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어서 사실상의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법전에는 사형이 버젓이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서 사형제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법원이 왜 이렇게 사형 선고에 인색해 졌을까. 그 이유를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 기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법관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법원조직법이 천명하고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여기서 살인죄는 동기에 따라 5개 유형(참작·보통·비난·중대범죄 결합·극단적 인명경시)으로 구별되고 각 유형별로 감경·가중 요소를 반영한 기본형·감경형·가중형 등으로 세분화되어 총 15개 섹터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무거운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유형의 ‘가중형’조차 놀랍게도 사형이 아니라 ‘무기 이상’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자수ㆍ심신미약ㆍ진지한 반성 같은 감경요소가 있으면 ‘20년~25년’ 범위의 유기징역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사형 선고에 매우 엄격한데 이 기준대로라면 연쇄살인범도 강윤성처럼 막판에 자수하고 반성의 표시로 사형을 호소해 주면 25년 이내의 징역형으로 ‘선방’하는 것도 이론상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장대호·김태현·강윤성 같은 살인범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게 양형 기준을 완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때가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와 적극적으로 사형을 선고해봤자 과거 유사한 사례에 비해 형량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파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원적인 고민이 제기되는데, 이 사회가 더 이상 살인범들에게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이미 선고된 사형 건만큼은 이제 집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비록 24년째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사형 폐지를 공식적으로 합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에 대한 최종 승인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형 집행 의사를 물은 적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록 퇴임 후였지만 그래도 공식 석상에서 사형 폐지 소신을 밝히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후의 대통령들은 명확한 소신 표명도 없이 그냥 집행을 하지 않고 미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에서 사형 폐지가 공약이 된 적도 없었다. 국회에서도 매번 사형 폐지 입법이 발의되었으나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사형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제는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곧 사형제를 위헌으로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전히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1996년 7대 2에서 2010년 5대 4로 사형제 합헌 의견이 줄어드는 추세였으므로 10년 넘게 흐른 이 시점에서 세 번째 결정을 하면 위헌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를 위헌으로 결정한다고 해도 이미 선고된 사형 건들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이 건들은 분명히 실정법에 사형이 명시되어 있고 합헌이던 시기에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사형을 집행한다고 살인범죄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 두어 명쯤 죽여도 절대 사형 안 당한다는 안도감을 흉악범에게 심어주는 이 상황은 정말 참을 수 없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사형을 집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공식 논의가 이제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가장 좋은 판은 다가올 대통령 선거다. 마침 국민의힘 홍준표 경선후보가 사형 집행 의지를 피력했고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은 사형 폐지로 맞선 바 있다. 좋은 대립구도로 평가될만하다. 다른 후보들도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신을 밝히고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 지금 대기 중인 사형수가 60명을 넘어섰다는데 이대로 계속 의사 결정을 미루기만 하는 것은 후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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