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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윤석열정부 출범

민심 저버린 나폴레옹 대관식과 尹心 논란

기사입력 2022-05-12 00:02:40

▲ 오주한 정치사회부장
예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무리한 명령을 일삼다가 낭패를 본 인물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만인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절대권력을 휘두른 나머지 결국 후회 속에 내리막길을 걷곤 했다.
 
18~19세기 프랑스를 통치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여파를 등에 업고 공화정 시대를 연 영웅이다. 사실상 외국이나 다름없었던 코르시카섬에서 1769년 태어난 그는 16세 나이로 본토의 사관학교에 입교해 육군 포병장교로서의 길을 걸었다. 내로라하는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나폴레옹은 ‘우스꽝스러운 시골 사투리를 쓰는 촌놈’으로 따돌림 당했으며, 하숙집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천부적인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다. 어느날 폭설이 내리고 생도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눈싸움을 했는데 나폴레옹 편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휘관을 자처한 나폴레옹은 적진을 유심히 살핀 뒤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해 비교적 약한 곳을 골라 맹공을 퍼붓도록 했다. 진영이 무너지고 순차적으로 병력이 소진된 상대편은 마침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같은 일들을 거치면서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촌놈’에서 일약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입교 4년 뒤인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터지고 1793년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프랑스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각지에서 영국을 등에 업은 왕당파 반란이 일어나자 나폴레옹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상륙한 영국 해군육전대(해병대) 등을 물리치고 반란군을 진압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폴레옹은 장군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명명된 반란을 통해 제1통령, 나아가 종신통령에 취임해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로 올라섰다.
 
프랑스은행 설립, 훈장 제도 도입, 법전 편찬 등에 나선 나폴레옹은 유럽 각국에서 스타로 부상했다. 독일‧오스트리아의 전설적인 작곡가였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영웅(Eroica)’이라는 표제가 붙은 교향곡 3번을 작곡해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다. 나폴레옹의 정복전쟁과 함께 퍼진 자유주의도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1800년 마렝고 전투에서 막강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나폴레옹은 권력에 도취된 나머지 초심을 잃고 말았다. 그는 1804년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함으로써 공화주의를 주창한 대혁명의 정신을 저버렸다. 나폴레옹은 심지어 자신이 로마에 가서 대관식을 거행하는 대신 교황을 파리로 호출하고 자신이 직접 왕관을 쓰는 불경을 저질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즉위 소식을 접한 베토벤은 “그도 결국 평범한 인간이었다. 만인의 위에 군림해 폭군이 될 것”이라고 외치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한다’고 적혔던 교향곡 표지를 갈가리 찢어 버렸다. 새 표지 문구는 ‘이 교향곡은 위대한 사람의 추억을 축복하고자 쓰였다’로 바뀌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유럽 각지에서는 민족주의가 발흥했다. 부패한 구(舊)체제를 뒤엎고 만인이 평등한 새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던 식민지인들은 또 다른 절대권력의 출현 앞에 저항에 나섰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린 나폴레옹은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실책을 남발했다. 육군 포병 출신인 그는 지상전에서는 따를 이가 없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전쟁론(On war)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전쟁의 신(神) 그 자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나폴레옹은 포병으로 적의 진영을 무너뜨린 뒤 기‧보병의 유기적 운용으로 끝장내는 전술을 마치 자로 잰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정확히 해냈다. 그는 또 적군이 아무리 많다 해도 ‘선택과 집중’ 및 신들린 기동력을 통해 각개격파했다. 음식을 신선한 상태로 장기보존할 수 있는 병조림 발명 등 보급에서도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반면 해전에는 문외한이었던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해군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단 6시간만 제해권을 확보하면 18만 육군을 영국 본토에 상륙시킬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자국 해군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에 이른다. 영국 주력함대를 유인해 전력을 분산시킨 후 자국 함대가 신속히 집결해 영국 군함들을 각개격파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항해한다기보다 풍향에 따라 떠내려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항해술의 수준이 낮았던 당시 범선의 시대상을 감안할 때 이처럼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상대는 바다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며 대영제국을 건설한 영국이었다. 결국 우왕좌왕하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은 단종진(Line of battle)을 이룬 채 돌격한 호레이쇼 넬슨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자만심을 버리지 못하고 1812년 러시아 원정이라는 2차 실책을 범한 나폴레옹은 마침내 유배‧탈출‧저항‧유배를 반복한 끝에 1821년 쓸쓸히 사망하고 만다.
 
윤석열정부가 기대와 우려 속에 10일 출범했다. 문재인정부와는 다른 새 시대의 출현을 기대하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윤심(尹心) 논란 등 또 다른 제왕적 대통령제의 등장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나폴레옹은 권력에 취해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끝에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다. 윤 정부는 향후 5년 임기 동안 민심에 귀 기울이고 초심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오주한 기자 / jhoh@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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