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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편협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자

‘60대=노인’ ‘고고생= 리뷰 못 쓴다’ 등 사회적 편견 만연

신체연령과 사회적 연령은 별개… 엘리트는 사회의 재화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9 08:55:47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지난 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아쿠다가와(茶川)상 수상 작가 유미리 원작의 물고기의 축제가 공연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어느 날 막내의 죽음으로 12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장례를 치르는 이야기다. 철없는 엄마를 중심으로 무능하며 가부장적인 아버지, 엄마를 증오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아들, 언니의 옛 애인을 사귀는 막내딸 등을 통해 망가진 가족의 모습이 펼쳐진다.
 
물고기의 축제는 여느 희곡 작품과 달리 지문이 거의 대사만큼의 분량으로 길게 들어가 있다. 단절된 대화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은 순간들, 말보다는 몸짓이나 표정으로 살아나는 감정을 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소설의 내레이션과도 같은 지문에서 읽힌다. 콩가루가 된 집안의 묵은 사연들, 서로 미워하고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 온 가족의 모습. 자칫 신파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내며 어느 순간 관객을 어디론가 확 끌고 가 버리는 연출과 연기의 힘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주인공인 엄마 마사코를 연기한 임향화는 대학시절 이미 기성극단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했던 저력 있는 연기자다. ‘춘풍의 처’ ‘루브(Luv)’ 등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다가 돌연 무대를 떠났던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 독백 부분을 보면 그녀를 보물 같은 배우라고 했던 오태석 연출가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원작자 유미리가 전하고자 한 것을 그녀는 절제되고 맑은 톤의 대사와 몸짓, 표정을 통해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
 
임향화는 60대 배우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여배우가 은퇴를 생각할 나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무대에서 새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늙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간을 거스르려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에 정복당하지 않는 특별한 걸음으로 그저 담담히, 성실하게 타박타박 가고자 하는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는 늙은 여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 훌륭한 연기자다.
 
우리 사회는 나이를 따지는 이상한 습속에 얽매여 있다. 며칠 전부터 마약을 한 40대 중국인이 60대 노인을 마구 때리고 보도연석으로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했다는 보도로 온갖 매스컴이 떠들썩하다. 40대 중국인이 20대 행인을 똑같이 폭행해서 숨지게 했어도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도 기사들은 하나 같이 ‘60대 행인이라고도 하지 않고 굳이 ‘60대 노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운전사고의 경우에도 마치 나이 많은 사람이 운전을 했기 때문에 사고를 낸 거라고 강조하고 싶은 건지 ‘70대 운전자가라는 표현을 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에 대해 스펙 쌓기 논란이 일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두 달 만에 논문을 여러 편 쓴다는 건이라고 말한 입시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박사과정에서 쓰는 리뷰 페이퍼를 고등학교 학생이 작성했다고 혀를 차는 학계 전문가도 있다. 그 논문이 정말 논문인지 온라인 첨삭 등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연습용 리포트 수준의 글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등장하는 건 나이의 잣대다. “고등학교 학생이 박사과정의 리뷰 페이퍼를 직접 썼을 리 없으니 대필을 맡긴 게 분명하다, 표절과 짜깁기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체연령에 개인 편차가 작용하듯 지적 능력에도 개인 편차가 큰 폭으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이 나이 60살을 넘기면 실제 신체연령은 개인에 따라 40대에서 80대까지 그 편차가 심하게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사회적 연령과 관계없이 신체 연령과 지적 능력이 40대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요즘 많이 눈에 띈다. 이것은 10대에도 적용된다. 굳이 천재가 아니어도 초등학교 5, 6학년 나이인데 대학생 이상의 학습능력을 가진 학생이 있고, 박사과정을 곧 시작해도 이상할 것 없는 수준의 고등학생도 있다. 이들이 바로 소수의 엘리트들이다.
 
엘리트 집단은 사회가 보유한 일종의 재화(財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선 엘리트가 아닌 다수에 의해 엘리트 말살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교육 평준화·혁신학교 등의 정책은 어느 면으로 보면 엘리트 같은 건 빈정 상하니 똑같은 수준으로 살아가자고 하는 다수의 의견이 빚은 결과물이다. 더 이상 가난한 수재가 설 자리가 없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특정 집단과 동일시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는 심리적 기제를 가진다고 한다. 다수에 편입되어 안주하려는 본능의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다수에 의한 객관화의 틀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고정관념으로 사회에 정착된다. 편협한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우리의 판단과 사고가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간다면 그것은 비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은 21세기,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이끌어 가는 국민이다. 이제 편협한 고정관념의 틀을 깰 때가 되지 않았을까?
 
 
 
▲ 연극 ‘물고기의 축제’ 마사코 역의 임향화 배우.
 
 
▲ 연극 ‘물고기의 축제’ 포스터.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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