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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사람은 36.6도로 타오르는 모닥불이다

삶의 진실은 움직임이라는 동사가 전부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20 09:02:36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사람의 몸은 어떤 조건에서든 섭씨 36.5~36.8도 정도를 유지한다. 이 온도는 인체의 대사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최적의 결과치다. 이보다 3~4도 더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면 대사작용과 함께 생명도 그칠 확률이 올라간다.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체온은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작용에 의지해서 형성된다.
 
신진대사는 ‘우리 몸이 음식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사용하는 생화학적 과정의 조합’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식이 식도를 통해 위장으로 이동하는 과정, 호흡이나 소화, 혈액순환, 영양분 전달, 근육, 신경 및 세포의 에너지 사용, 몸의 부산물 배출 등을 수행하는 과정과 결과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신진대사는 몸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이다.
 
‘나’라는 생명체를 살아 있게 하는 ‘체온’은 신진대사의 과정과 결과로써 만들어진다. 몸 안의 모든 움직임이 체온을 생산한다. 당신의 체온은 모닥불을 닮았다. 모닥불은 장작을 매개로 한 열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고 연소하여 빛과 열에너지 형태로 방출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타고 있는 빛과 열 속에는 모닥불이 없다. 모닥불 앞에서 당신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뜨거운 열과 빛이 파랗거나 붉게 일렁이는 움직임뿐이다.
 
설악산에 가면 설악산이 없다
 
만약 당신이 이 순간에 모닥불을 발견하기 위해서 ‘빛과 열 에너지’를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모닥불이 사라진다. 우리는 ‘열과 빛 에너지’가 없는 장작더미를 모닥불이라고 하지 않는다. 신진대사의 움직임이 그친 상태에서는 ‘내’가 있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 논리는 비약이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설악산이라는 산속으로 들어가면 설악산은 없고 홍송이 있고, 바위가 있고, 엉겅퀴나 쇠비름 따위가 지천이다. 이것이 설악의 진실이다. 통영시에 가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통영은 지워지고 미륵산이나 북포루, 서포루, 동피랑 마을이 나타난다. 허명(虛名)을 벗겨내면 사실이 드러난다. 동해안에 가면 동해안은 물러서고 시원한 바람과 먼 수평선, 갈매기들이 있다.
 
당신의 이름 ‘홍길동’을 걷어내면 무엇이 드러날까. 체온을 유지하는 생명체로서 당신의 배후에는 활발한 신진대사 활동이 있고, 그 신진대사의 배후에는 소화기관의 활동이 있으며, 소화기관의 배후에는 몸속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있다. 음식의 배후에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그 의지의 배경에는 허기 혹은, 뭐든지 나눠 먹고 싶은 인연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인연의 배경에는, 또 다른 인연이 있다. 이것이 생명활동의 측면에서 보는 ‘홍길동’의 실제이다. 모든 실제의 공통점은? 단 한순간도 멈춤이 없다는 사실이다.
  
체온은 몸 안의 다양한 움직임이 만들어 내고, 당신 또한 다른 당신들과의 움직임을 통해 기억되고, 연결되고, 부딪히고, 갈등하고, 이별하고, 사랑하면서 존재한다. 체온을 갖고 있는 모든 존재의 삶은 이와 같다. 생명의 온기(溫氣)인 체온이 곧 신진대사이고, 신진대사가 없으면 체온이 사라지는 것처럼 내 삶의 실제는 움직임이라는 동사(動詞)가 전부다. 이를테면, 나의 몸을 움직임으로써 말과 관계가 발생한다. 생각이 움직임으로써 창작도 하고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의지가 움직임으로써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사회적 모닥불’이다. 발광하며 타오르는 캠핑장의 모닥불과는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당신의 삶은 평균 온도 36.6도로 타오르는 동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끔은 그럴싸한 명예나 주목받는 상태에서 영구히 멈추고 싶겠지만, 살아 있는 한 불가능하다. 가 보지 않은 설악산 대청봉, 좋아하기만 했던 통영항, 계획만 세우고 있는 동해안이 우리 삶의 명사이고, 명사는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명사는, 날개를 펼친 채 박제된 독수리, 바위에 부딪혀 은빛으로 깨지고 있는 파도, 어린시절 가족 사진처럼 주로 내 삶의 바깥에서 그럴싸하게 멈춰 있다.
  
당신은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아도 36.6도로 타오르는 모닥불이다. 움직임이 숙명이고 멈춤은 죽음처럼 소외돼 있다. 알고 보면 이런 생래적인 움직임 때문에 불안하거나 불만족스럽다. 액자 속 옛날 사진처럼, 온 가족이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 상태로 멈춰 있으면 좋으련만.
 
삶의 기본 온도 36.6도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천형 같기도 하다. 하기 싫은 생각이 움직이고, 감정이 움직이고, 언어가 움직이고, 감각이 움직인다. 당신의 체온이 그렇듯, 내 삶 전반이 내 의지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모닥불이 자신의 의지로써 불이 되고, 흔들리고,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모닥불은 바람의 의지로 타오르는 듯하다. 그래서 바람 탓인가. 그렇다면 바람은 바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가.
 
좋은 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포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상황과 조건조차도 꿰뚫을 수 있는 것을 당신은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마음이다. 체온은 영하 50도의 강풍에서 견딜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늘 당신에게 복종할 준비가 돼 있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든 모닥불처럼 타오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빅터 프랭클은 악마적 조건을 꿰뚫고 솟구치는 ‘의미에의 의지’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동료가 매일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도 그는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체력을 유지했으며, 수용소 동료들과의 유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존재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으로 상황에 맞선다.
  
‘살고 있다’는 ‘움직인다’와 같은 의미다. 당신 마음의 움직임이 어떤 의미와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삶의 체온 36.6도를 꿰뚫고 시공간을 넘어가는 일은 적지 않다. 1912년 4월 그 사건, 타이타닉호의 생존자 모임에서 한 여성의 증언이 나온다. 그녀는 당시 만삭이 된 몸으로 두 아이와 여행 중에 그 사건을 겪게 되었다. 체구가 두 사람 부피다 보니 아이들만 구명정에 태우고 자신은 탈 수 없었다. 그런데 이미 구명정에 타고 있던 한 여성이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리 오세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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