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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인혁당 손해배상 판결, 하급심·대법원 왜 오락가락했나
국가가 30년에 걸쳐 판결로 피해자 두 번 울린 셈
재심 무죄 사건, 소송보다 특별법 보상이 바람직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29 09:32:07
▲ 이동호 변호사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18일 최종 종결되었다
 
하급심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이 대법원에서 대폭 삭감되는 바람에 피해자들이 상당한 돈을 토해 내야하는 문제로 10년간 소송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데 원금만 돌려받고 이자는 면제해 주라는 법원의 화해 권고가 여러 번 있었는데 소위 진보라는 문재인정부가 이 핑계 저 핑계로 거부하다가 현 보수정권의 아이돌이라 할 만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전격 수용했다고 한다.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어서 판결 과정을 추적해 봤다.
 
인혁당 소송은 간첩 혐의로 사형 집행된 이들의 유족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당사자들이 2008년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그런데 민법에 의하면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의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개 시효가 모두 지나버린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권리남용 금지라는 법 원칙을 이용해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일단 배척해 버렸다. 인혁당 피해자가 그동안 정부의 왜곡된 발표와 탄압으로 재심 판결 전까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인권침해가 매우 중대한데도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해 주면 현저히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워낙 비극적인 사건이다 보니 법원도 어떻게든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소멸시효도 법적 안정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법 원칙을 반영한 것이라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조치 이후에는 피해자들이 재심 소송을 내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그래서 소멸시효를 배척한 법원 결정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물론 필자의 입장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사 재심 무죄 건은 국가의 범죄 행위가 원인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낼 필요 없이 국가가 특별법을 제정해 즉각 배상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튼 소멸시효 고비를 넘었지만 가장 난관은 위자료 즉 손해액을 산정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판례에 따르면 손해액을 산정하는 기준 시기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당시다
 
그렇다면 사형 등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1975년 무렵의 물가를 기준으로 위자료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인혁당 유죄 판결이 확정된 1975년의 소비자 물가 지수가 9.5인데 그로부터 34년 후 손해배상 2심 판결이 있던 2009년의 지수는 83.98배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2009년 물가 수준으로 만약 8000만원의 위자료가 적당하다면 1975년 시점으로는 그 8분의 11000만원이 되어야 하고 청구권이 발생한 1975년부터 판결이 선고된 2009년까지 매년 민사 법정이율인 5%의 지연이자를 더해야 한다
 
그런데 민법상 지연이자는 복리가 아닌 단리 의거 이율이 고작 5%라서 34년 치 이자를 더해도 원금의 1.7배밖에 안 된다. 법정이자율로는 그동안의 8배 물가 차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975년 당시 물가에 비해 턱없이 높은 위자료를 책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상급심에서 곧바로 파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하급심은 기존 판례 관행을 깨고 불법행위 시가 아닌 판결 시 물가로 위자료를 정하고 거기에 불법행위 시로부터 34년치 법정이자까지 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계산하면 손해액이 21600만원(8000만원+8000만원×5%×34)이 돼서 그나마 적정해 보이는 금액이 나오기는 한다.
 
그런데 이 사건 대법원 재판부는 20111월에 깜짝 놀랄 판결을 해 버렸다. 불법행위 시로부터 통화가치나 국민소득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는데 지연이자까지 불법행위 시부터 인정해 주면 현저한 과잉 배상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연이자 발생 시기를 예외적으로’ 2심 판결 시로 대폭 늦춰 버린 것이다. 쉽게 말해 지연이자를 다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하급심 판사는 적정한 배상액을 머릿속에서 미리 정한 후에 34년치 지연이자가 붙을 것을 고려해서 현 시점 물가를 반영한 위자료 원금을 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법원은 지연이자 발생 시기를 대폭 늦춘 이상 이 사건을 파기환송, 즉 하급심으로 다시 보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하급심에서 재판부가 원고들이 너무 억울해지지 않도록 위자료 원금을 다시 조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또 다시 예외적으로파기하지 않고 자판 즉, 스스로 판결하면서 하급심이 정한 위자료 원금을 그대로 확정해 버려 위자료 조정 기회를 박탈했다.
 
그래서 최종 손해배상액이 하급심이 인정한 금액의 절반도 안 되게 줄어 버렸고 인혁당 피해자들에게는 이미 소비한 돈을 토해 내야 하는 지옥문이 다시 열렸던 것이다. 국가가 인혁당 피해자들을 30년에 걸쳐 재판으로 두 번 울린 셈이었다.
 
최고법원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필자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대법원이 굳이 이례적인 판결을 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법리 적용이 잘됐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해야 하는데 이 사건 배상금이 현저히 과잉인지의 여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실의 영역이지 법리 문제는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소송보다는 특별법을 제정해 배상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점에서 얼마 전에 조정이 결렬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보상 건과 대비되는데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우선 소송을 통해 배상책임이 밝혀졌어야 하는데 위헌 소지도 다분한 특별법에 의해 배상이 강요되고 정부 주도로 무리하게 조정이 시도됐다가 결렬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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