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오일 머니’ 중동 시장에서 퇴색하고 있는 한국 신화
해외 건설 수주 반 토막, 중국 등 득세에 한국 입지 갈수록 좁아져
효자 시장 건설·상품 수출 계속 부진… 강 건너 불구경 신세 전락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04 09:44:40
▲ 김상철 G&C Factory 대표
국제 유가 폭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는다. 고물가와 인플레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어두운 터널의 끝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는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4개월이 지나도록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도를 더해 가고 있지만,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러시아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고유가가 러시아 경제를 지탱해 주면서 오히려 서방의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라는 후폭풍을 맞고 있다. 
 
고유가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중동 산유국 사우디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에 최고치인 9.9%에 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원유·천연가스 관련 산업 분야의 성장이 20%를 넘어섰다. 
 
비단 사우디뿐 아니고 대다수 산유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원유나 천연가스의 국제 가격이 오르면 이들 국가의 재정 수입이 늘어나서 씀씀이가 커지고 경제에 숨통이 터진다. 반대의 경우에는 경제가 위축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공급망 불안 지속과 일시적 봉쇄에 따른 세계 경제의 후진으로 국제 유가가 현재 110달러 선에서 공방하고 있지만, 수요가 회복되면 언제든지 150달러 수준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문제는 당장 원유나 가스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딜레마의 존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가 둘로 갈라지는 디커플링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더 밀착하고 산유국들은 미국 등 서방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현재의 고유가 기조가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7월 중순 사우디를 방문하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과 관련한 협의를 할 예정이다. 한동안 껄끄러웠던 관계의 앙금이 해소될 수 있을지와 사우디 등 산유국들의 추가 생산 여력이 있을까에 관심이 쏠린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서구 국가들이 원전 재가동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도 유럽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들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유나 천연가스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포스트 오일(Post-Oil)’ 시대에 대비하여 탈석유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유가가 되면 빠르게 진행되지만 저유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뎌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지금과 같은 고유가 상황일수록 산유국들의 경제에 활력이 넘쳐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 경기가 회복되면서 건설·플랜트 등 프로젝트 시장이 활기를 띤다. 
 
동시에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산업 다각화를 위한 경제 모델 재편이 급물살을 탄다. 특히 사우디는 ‘Saudi Vision 2030’ 비전에 스피드를 붙이면서 중동의 허브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제조업 육성과 더불어 에너지 다각화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테스트베드 시장으로서의 위상 굳히기에 골몰한다. 쿠웨이트는 석유 의존형 경제 탈피를 위한 ‘New Kuwait 2035’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인다. 모처럼 고유가로 인해 생겨나고 있는 중동 경제의 현상이다.
 
문제는 중동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동 시장은 유럽의 안방으로 간주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고유가 붐을 타고 한국 기업이 상품 수출이나 건설·플랜트 수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일시적으로 일본 기업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지만, 중동의 시장 특성이나 상관습에 신속하게 적응한 한국 기업의 독무대가 됐다. 말 그대로 효자 시장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장 판도에 균열이 생겨났다. 저가의 중국 기업이 본격 진출하면서 한국 기업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중동 지역에 관한 관심 저하로 힘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에 편승한 중국 기업의 프로젝트 수주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10대 건설사 도급 순위에서도 유럽이나 중국 기업들이 속속 포진하고 있지만, 현대건설은 16위로 밀려났다. 세계 250대 건설사 중에 중국이 78개를 올린 것과 비교해 한국은 고작 11개에 불과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우리 해외건설협회는 해마다 해외 수주 전망치를 발표하던 것을 3년 전부터 중단했다. 최근 들어 연간 수주 규모가 700억달러대에서 반 토막 이하인 300억달러대로 줄어들면서 발표 의미를 상실한 것이 이유다. 올해 들어 10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계약은 한 건도 없다. 상반기 해외 프로젝트 수주액은 115억달러로 16년 만에 최악이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고 해외 시장의 리스크를 회피하고 있는 데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때 해외 시장을 호령하던 한국 건설업체들의 국제경쟁력이 급락하면서 이제 얼굴도 내밀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지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국내 분위기의 영향도 적지 않다. 도전이나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이 해이해지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해한다. 
 
중국과 같은 강력한 저가 경쟁국이 출현하면 시장을 조기에 포기하는 패배 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한때는 정부도 발 벗고 나서 ‘팀코리아’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실종되었다. 해외 건설 시장에서 ‘전설’로 불리던 한국 건설 업계 신화의 대(代)가 끊긴다는 볼멘 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수출이 그나마 잘되고 있다고 하지만 건설 수주와 마찬가지로 중동 지역에 대한 수출도 과거와 같지 않고 시들하다. 수출 상대국 10위권 주변에 있던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는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고, 쿠웨이트는 70위권에도 들어오지 못한다. 
 
반면 이들에 대한 원유나 가스 등의 수입 금액이 커지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선진국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지만 ‘오일 머니’로 인해 중동 등 산유국 시장에서는 큰 장(場)이 서고 있는 판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동 시장에서는 당분간 먹거리가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 
 
탈(脫)석유 산업화와 에너지 전환 관련 수요가 봇물이 터질 태세다. 정신을 추스르고 본격적인 수주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이 되어 적극적으로 백업해야 한다.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총동원하고, 중동 국가 진출 우리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1
감동이에요
1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41(청담동) 세신빌딩 9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5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