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배우 김지미는 왜 친정인 영화판을 저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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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06 09:46:02

한 달 전 사석에서 영화배우 김지미가 잠시 화제였다. 요즘 대세라는 이러저런 연예인 못지않게 여전히 사람들 관심이 그에게 쏠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역시 히트는 네 번에 걸쳐 결혼과 이혼을 했던 김지미, 그의 거침없는 발언이다. “나이 많거나, 어리거나, 능력 있다는 남자와 모두 살아 봤는데 별거 아니더라. 남자, 다 어린애 같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

그건 2004년 월간지 ‘신동아’ 인터뷰에 등장한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당대의 여배우 김지미 쯤이 되니까 말에 무게가 실린다. 그날 외모에 대한 품평도 빠질 수 없었다. 덕성여고 시절의 그녀를 캐스팅했던 감독 김기영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 있나?”라며 고개를 흔들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다시 등장했다. 사실 그는 지금도 통할 법한 스타일이다. 1960년대 스타 최은희·엄앵란·문정숙 등의 고전적 분위기를 떠올려 보라.

그런 김지미의 근황을 확인한 게 얼마 전이다. 한 일간지는 그녀와의 일문일답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그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손자·손녀 등과 함께 지내 왔고, 코로나19 때문에 내내 머물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김지미!” 싶었던 건 그의 한국영화 비판이다. 누가 감히 ‘좌파 소굴’ 영화판을 저격할까?

눈에 확 띄는 발언은 일테면 이런 거다. “한국 영화는 난폭한 영화, 흥미나 끄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런 구조에선 좋은 배우가 존재할 수 없다.” 절제됐지만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백 번 맞는 소리다. 영화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을 봤느냐는 질문엔 “상도 받고 했으니 인정한다”면서도 자기 속마음을 따로 털어놨다. “작품 소재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다. 최근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없다.”

그렇다. 영화판을 향해 “그건 아니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생존한 배우 중엔 김지미가 유일하다. 김지미의 12살 연상인 배우 신영균이나 관료 출신이지만 영화계 사람이 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그 역할을 할 법한데도 그들은 몸을 내내 사려 왔다. 오염된 영화판에 그냥 묻어가려는 보신(保身) 전략이 사람들 눈엔 좋게 보일 리 없다.

그와 달리 김지미는 1990년대 말 문성근·명계남 주도로 좌파 영화 쿠데타가 일어난 과정을 일관되게 증언해 왔다. 2011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명계남·문성근을 지목하면서 “(영화계 현안을 기존 조직인) 영화인협회 안에서 해결하면 될 것을 다른 단체를 만들어 데모만 해 영화계 물을 흐렸고, 구세대는 물러가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결정타는 “이런 식이라면 공산당과 뭐가 다른가?”라는 말도 던졌다.

엄청난 얘기다. 김대중정부 시절 영화진흥위원회 체제 등장 이후 한국영화가 노골적 정치 편향을 향해 줄달음쳐 온 과정에 대한 최상의 증언이다. 나중 문화일보 인터뷰에선 “배우가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고 한 방 더 날렸다. 그게 김지미다. 그를 두고 신영균은 “당당함이 일품”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사실 지난 20여년 국내 영화계는 좌파와 돈파가 결합한 좌익상업주의 판으로 변질됐다. 그 추악한 상황을 알린 김지미의 내부고발은 문화사에 남을 발언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즉 미국 할리우드 영화 상당수가 소재·주제에서 PC 영화 즉 ‘정치적 올바름’을 구현하자는 쪽이지만, 영화판 전체가 문화마르크시즘으로 오염된 건 이 나라 이 땅이다. 반(反)대한민국 성향의 한국 영화 문제는 급기야 체제불안 요인이기도 하다.

한 영역 전체가 그렇게 집단 변질된 또 다른 케이스는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이 나라 국사학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터놓고 말하자. 영화판 타락의 전형이 2년 전 봉준호의 ‘기생충’이었다. 어떻게 포장하던 그건 부자와 기업인 모두를 죽이자는 섬뜩한 계급투쟁 선동이 아니던가? 그게 미국 아카데미상이란 모자를 쓰니까 더욱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이 “그건 멋진 상생의 영화”라고, 듣기 역겨운 아부도 했다. 영화 장르라는 게 본래 그런 반항이자 일탈의 영역이라고 칭송하는 헛똑똑이도 종종 본다. 한 공동체가 폭망하려면 이런 황당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걸까? 그리고 저번 프랑스 칸 영화제는 감독 박찬욱에게 감독상을 안겨 줬는데, 또 한 번 당혹스럽다. 이젠 박찬욱·봉준호가 좌파라는 목소리조차 꺼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걸 정화하자는 문화전쟁 얘기도 이 무책임한 윤석열정부 쪽에서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대찬 말을 하는 평론가도 드물다. 조희문·이문원 등 두세 명이 전부이고 그들에게는 발언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덧 전체주의 사회가 완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지미의 발언은 신선했다. 당연히 이 글은 그에 대한 응원이다. 김지미 여사, 우린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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