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사실상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비은행 기업의 발행은 지급결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통화정책 유효성을 약화시키는 등 금융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총재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디지털 화폐 도입은 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자본금과 투명성 요건을 충족한 은행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비은행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내로우뱅킹(Narrow Banking)'에 빗대며, 시스템 리스크를 강조했다. "비은행이 대출 없이 지급결제만 수행하면 은행 중심 금융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며 "통화량 조절이 어려워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자본 유출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자본 자유화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면, 국내 원화 예금이 외부로 빠져나가 외환시장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우려를 근거로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도 함께 내놨다. 20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자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인 250억 원 이상으로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국회 계류 중인 일부 법안이 제시한 기준보다 최대 50배 높은 수준이다.
발행량이 일정 수준을 넘길 경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직접 관할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19일 차규균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역시 단기 국고채 대신 91일물 통화안정증권 활용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통화정책 교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같은 입장은 최근 국내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유통이 확산하며, 외환 규제 회피와 자금세탁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린다. 한은은 "외국환거래법 개정 등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며 "퍼블릭 블록체인의 익명성과 탈국경성으로 인해 외환통제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발언은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Circle)의 제레미 알레어 최고경영자(CEO)가 국내 시중은행과 릴레이 면담을 앞두고 방한한 시점과 겹치면서 주목받는다.
사실상 국내 진출을 시도하는 해외 스테이블코인 기업에 대한 선제적으로 견제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이 총재도 국회 답변에서 “규제가 너무 늦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며,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을 어떻게 규제할지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 예금토큰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의 상용화도 병행해 추진 중이다. 한은은 "은행이 발행하는 예금토큰과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며 경쟁할 수 있도록 테스트를 거쳐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디지털 화폐 시대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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