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뵀던 김이석 조사관입니다. 이환석, 이 친구가 폭행으로 우리 경찰서 들어왔는데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조사관의 전화를 받고 진욱은 동원과 함께 그쪽으로 달려갔다. 환석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채 잠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월급 받았다고 돈도 보내 왔던데요.”
얼마 전 만났던 정숙의 말처럼 어딘가 직장생활을 하긴 하는지 겉모양은 말쑥한 양복차림이었다.
“일단 술에 취해 있기도 하고…. 데려 가신다고 해도 우선 12시는 넘어야 내보낼 수 있는데요.”
진욱과 동원은 경찰서 내부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잠깐 눈을 붙이던 사이 소영의 목소리가 뛰어들었다.
“이환석 씨 여기 왔어요? 언제 왔어요? 어디 있어요?”
상대가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기세가 잠을 깨워놓았다. 당찬 목소리 때문인지 진욱과 동원의 눈에 소영이 어려 보이긴 해도, 작은 체격조차 단단한 깡다구로 뭉쳐 있는 듯 보였다.
“12시 넘어야 해요. 그것도 저분들이 데려가신다고 해서 12시에 내보내는 거니까 저분들하고 이야기하세요.”
“저쪽 저 남자들요?”
소영은 턱짓으로 진욱과 동원을 가리키더니,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리곤 진욱과 동원 앞에 팔짱을 낀 채 섰다.
“얼굴 보니까 같이 싸운 사람은 아닌데 오빠는 왜 데려가요? 돈 빌려 줬어요? 얼만데요?”
살짝 잠이 들었다 깬 두 사람은 몰아치는 소영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 안 하면 돈 못 줘요. 그리고 오빠 못 데려가요. 내가 데려갈 거니까.”
동원이 장난기가 발동했던 모양이었다.
“이환석 씨 친굽니까?”
소영이 큰소리로 웃었다.
“이 아저씨들 순진하네. 남자 여자가 친구가 어딨어요? 빨리 얼마 받아야하는지 말해요. 그리고 계좌번호 적어서 주고 가요. 지금은 없지만 생기면 바로 갚아줄 게요.”
기본이 한 번에 세 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겉으로는 당차고 거침없이 말을 하지만 가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 12시면 좀 더 있어야 되니까 여기 앉아요.”
진욱이 동원 쪽으로 붙어 앉으며 자리를 내주었다. 소영은 진욱을 빤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들도 경찰이에요?”
갑자기 소영이 소리를 낮추고 진욱에게 물었다. 진욱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
소영이 진욱을 흘끗 올려보았다. 못 믿겠다는 듯이 입을 비쭉 내밀었다.
“다음에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말해 봐요. 손만 안 보였으면 완벽한 연기였을 텐데 아쉽네.”
무슨 말인가 하고 자기 손을 들여다 보던 소영이 소리 내 웃었다. 좀 전처럼 큰소리의 웃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안 먹혀서 이상하다 했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넘어가요. 미친년 지랄하나보다 하고 그냥 피하거든요.”
“이환석 친구?”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니까요.”
소영이 진욱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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