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인터뷰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평화와 자유의 화음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우크라이나 보그닉 소녀합창단
강릉 세계합창대회 참석… 희망과 사랑의 멜로디 선사
“한국은 전쟁 극복한 나라… 우리도 상처 딛고 일어설 것”
진정한 평화는 영토와 주권 지키는 일… “잊지 말아 달라”
김명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7-20 00:03:00
▲ 우크라이나 보그닉 소녀합창단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져버리지 않은 희망의 노래를 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강릉 세계합창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우크라이나엔 도움이 필요합니다. 국민 절반이 무자비한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어요. 삶의 터전은 무너졌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이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512일. 삶의 터전은 파괴됐고 사람들은 일상을 잃었다. 이 와중에 전쟁의 포화를 뚫고 한국을 찾은 청년들이 있다. 음악으로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우크라이나 보그닉 소녀합창단이다. 13일까지 강릉에서 열린 세계합창대회(World Choir Games)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루벤 톨마쵸프 단장(왼쪽)과 올레나 솔레비 지휘자는 음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리는 문화 사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전쟁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어요
 
세계 합창제 폐막 전야 콘서트 리허설이 진행 중인 강릉중앙교회는 열기로 가득했다. 보그닉 합창단 단원들과 수십 명의 한국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활기 그 자체였다. 리허설을 지켜보던 기자에게 올레나 솔레비 지휘자와 루벤 톨마쵸프 단장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솔레비 지휘자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며 덤덤히 말문을 열었다.
 
“음악을 통한 문화 외교 사절로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리고자 이번 세계합창대회에 참석을 결정했어요. 한국 방문 이전에는 전쟁 동안에만 90회 이상의 유럽 순회공연을 진행했어요.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조국의 참담한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죠.”
 
“우크라이나 상황은 ‘실제’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어요. 얼마 전에는 러시아가 카호우카댐을 폭파하면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유치원과 병원은 수도 없이 무너졌죠.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수도 키이우에는 공습경보가 매일 울리고 있어요.”
 
미사일 공격에 연습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룹 채팅과 화상을 통해 리듬과 가사를 맞추는 연습을 하다가 투어 1주일 전에서야 모두가 모여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매일 울려대는 공습경보에 지하 대피소로 몸을 피하기 일쑤였다고 솔레비 지휘자는 설명했다.
 
▲ 보그닉 소녀합창단은 강릉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삶과 생명은 어둠과 죽음을 넘어선다”며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삶과 생명은 어둠과 죽음을 이겨 냅니다
 
이들은 대회 개막 당일인 3일 강릉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아 이재민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전했다. 전쟁 피해 당사자인 보그닉 합창단이 전하는 위로의 노래는 먹먹한 감동을 이끌어 냈다. 슬픔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강릉 산불 피해 이재민들은 집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재민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는 총도 폭탄도 아닌 음악입니다. 음악을 통해서 그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삶과 생명과 같이 존귀한 가치는 어둠과 죽음을 반드시 이겨 낼 것입니다.”
 
한국, 우크라이나에 희망이 되는 나라
 
톨마쵸프 단장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한국은 상징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70년 전 전쟁을 겪은 한국과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상징적인 나라예요. 전쟁의 참혹함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죠. 과거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의 도시 곳곳에는 첨단 빌딩이 세워져 마천루 숲을 이뤘고, 한국인들은 세계 무대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도 한국과 같이 지금의 아픔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 40명의 우크라이나 소녀들은 한국의 모습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자리를 옮겨 단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크라이나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산드라와 알리사 단원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나와 강릉으로 오던 길에 청라 신도시를 보고는 너무나도 놀랐어요. 한국도 오래전 전쟁을 겪은 나라라고 들었는데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지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시간이 좋았어요. 길에서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던 시민들부터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모두가 친절하고 따뜻했어요. 위로와 응원의 뜻을 보낸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추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요.”
  
▲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 한국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전해 온 단원들.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굴종적 평화, 진정한 평화 아냐
 
진정한 평화는 ‘포기’가 아니라고 톨마쵸프 단장은 강조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우크라이나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득 회상에 잠긴 듯 생각을 가다듬은 그는 과거 소련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음악가로서 소련 시절의 삶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었고 예술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문학·미술·그림의 모든 영역은 공산당 이데올로기 전파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대한민국과 같이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국가입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고, 시민들은 대피소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아이들과 주민들이 죽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전쟁은 푸틴과 러시아가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넘기고 주권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닙니다.”
 
▲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도착한 보그닉 소녀합창단원들.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우크라이나를 기억해 주세요
 
톨마쵸프 단장은 이번 방한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한국 국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민간 외교 사절로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릴 수 있어서 목적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하다는 그의 눈빛에는 희망을 향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껏 그래 왔듯 우리는 계속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입니다. 희망의 담장을 쌓는 벽돌과 같이 말이죠. 한국 국민 여러분, 우크라이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도 한국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13일 세계 합창제 감동의 폐막 무대를 장식한 보그닉 소녀합창단은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해 왔다.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하면서 이들의 놀람과 환호는 극에 달했다. 
 
톨마쵸프 단장은 우크라이나를 향한 한국의 변함없는 지지에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절망 속 희망을 전하는 소녀들의 행보에 행운이 가득하길, 그리고 부디 안전하길 희망한다. 강릉=김명준 기자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1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