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66] 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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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와의 마지막 고별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1 06:30:20

“우리가 새벽에 신께 기도드리듯 성스럽고 신성한 영혼이 드러나는 시각이 지금이 아닐까요? 번잡함이 침묵하고 슬픔은 고요함과 만나 어두움 속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조우하는 공간이 펼쳐지는 시간.”

릴리아스 선생은 땅 위의 불과 하늘의 빛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지혜롭고 쾌활했던 황후와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장지인 청량리에서는 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과 일꾼들이 함께했고 임시 수라간 여러 곳에서 내인들이 일꾼들과 문상객들에게 음식을 날랐다. 헐버트 선생의 눈에는 마치 중세의 대회의장이나 군대의 원정을 위한 계파들의 모임처럼 보였다. 광무 황제와 각별한 사이인 헐버트 선생의 마음 또한 착잡했다.

헐버트는 명성황후 시해 직후 조선과 조약을 맺었던 나라들이 시해 사건에 침묵한 것에 분노했으며 고종을 지키기 위해 침전에서 불침번을 섰었다. 황후의 국장을 바라보는 심정 또한 그러한 심정이었다. 그는 문득 황후의 마지막 걸음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하던 작은 수첩에 펜으로 적은 기록은 다음해인 189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1월 9일자에 명성황후 장례식 참관기로 남았다,

참석한 외국인은 60여 명이었고, 늦은 밤까지 12개 코스가 나오는 융숭한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장례식 사흘 전인 18일, 각국 공사 및 영사에게 관원을 대동하고 참석해 달라고 통지했고, 발인 일 새벽에는 가마(6인교)와 순검을 보내 주었다. 광무 황제는 밤새 장례를 직접 지휘했다. 황제와 황태자 모두 백관을 독려하여 하관과 봉분 작업을 비롯한 모든 일을 친히 지휘하여 밤을 지새웠다.

광무 황제와 황태자는 상복을 입고 각국 사신 및 수행원 일동의 알현을 받았고 외교관들은 공손히 조사(弔詞)를 아뢰었다. 일본 왕실은 명성황후의 국장에 은제 향로를 보냈다. 광무 황제는 가토 공사에게 ‘일본 제실(帝室)에서 미려한 향로를 보내심은 짐이 특히 감사하는 바이다’라고 인사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헐버트 선생은 일본인들이 시해한 황후의 장례식에서 일본 왕실의 조의품을 받는 광무 황제의 마음을 생각하며 울컥했다.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산릉 빈전에서 천전(遷奠)을 거행하면서 황후에 대한 마지막 고별식이 마무리되었다. 큰 상여는 침전 앞 월대까지 가서 멈추고, 상여에 실려 온 재궁을 내려 재궁 가장자리에 묶었던 끈을 풀었다. 수건으로 재궁을 닦은 다음 정광(正壙) 안으로 넣었다. 정광에 넣기 전, 유의(遺衣) 중 황색 1벌, 홍색 1벌, 청색 1벌을 재궁 위에 놓고. 애책(哀冊), 증옥백(贈玉帛)을 퇴광 서쪽 가에 두었다. 그리고 외재궁의 하우판을 닫고 봉표관이 봉표하였다.

황제와 황태자는 소여를 따라갔고 재궁이 정광 안에 들어가는 것을 살폈으며 하우판 아래 잘 안치되었는가를 확인하러 내려가 보기까지 했다. 다시금 제물과 기원을 드리고 거대한 목마를 불태웠다.

동트기 직전의 은은한 어둠과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서 이 모든 절차가 엄숙하고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조객들은 물러났고 외교관과 초청된 사람들에게 작별과 조문을 위한 알현의 시간이 주어졌다. 장례식은 8시에 끝났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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