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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로제타 선생은 릴리아스를 만났다.
“로제타, 먼 길 잘 다녀왔어요?”
릴리아스는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비둘기처럼 사이가 좋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로제타가 너무도 안쓰러웠다. 유복자인 딸 이디스와 다시 조선 땅을 밟은 로제타이다.
“난 사실 로제타가 조선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하나님께 죄짓는 생각이지만 솔직한 심정이에요.”
릴리아스 선생이 안타깝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조선을 사랑해요. 저를 따라 조선에 온 남편이 묻힌 이 땅을 두고 제가 어디로 가겠어요?”
또박또박 말하는 로제타의 둥근 안경테 속 눈동자가 반짝였다.
“황후마마의 장례식은 어땠나요? 조금만 일찍 도착했다면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로제타, 난 그날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황후께서 돌아가시던 날을 기억해요?”
“그럼요. 제가 그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선생님과 함께 경복궁으로 들어갔었지요.”
“그날 경복궁 안에는 황후마마의 분노와 애절함이 가득했지요. 그 후로도 기울어가는 나라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려보려던 그분의 안타까움이 조선의 온 백성을 흔들었어요. 황후께서 차가운 땅 속에 묻히던 날, 유난히 별들이 반짝이던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나는 그분의 염원을 느꼈답니다.”
황후의 주치의로서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던 릴리아스 선생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모습이 보이는 듯해요. 단아함 속에 감추어진 부드러움이요. 현명하고 자유로운 분이었지요. 오직 조선의 강건함만이 황후의 소원이셨죠. 릴리아스 선생님, 저는 곧 평양으로 떠나려 합니다.”
“로제타, 여기서 우리와 함께하면 안 되어요?”
“남편의 땀과 피가 맺힌 평양에서 그분이 마치지 못한 일을 하려구요. 보구여관은 이제 자리가 잡혀서 제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로제타 선생의 음성이 결연했다. 조선과 자신을 사랑한 남편의 순교를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남매를 데리고 가시게요? 셔우드가 네 살, 이디스는 이제 겨우 두 살인데…”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스크랜튼 대부인께 들었는데 요즈음 평양 분위기는 옛날 같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이 그곳에서 병을 얻은 것도 주님의 특별한 뜻이었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그곳에서 할 일이 많을 겁니다.”
“주님의 뜻이라니 제가 말릴 수 없군요. 그래도 로제타, 겨울은 지내고 가세요. 평양의 겨울은 많이 춥답니다.”
릴리아스 선생이 격려했다.
“이디스가 이질로 고생해서 금방 떠날 수도 없답니다. 조선으로 오는 배 안에서 우리 셋 다 많이 아팠어요. 다행히 저와 셔우드는 좀 회복이 되었는데 이디스는 아직 너무 어려서…”
“미국에 더 있었어야 했는데 어린 아기가 심하게 고생을 하는군요.”
“사실 그곳에서 선교회와 많은 분에게 조선 선교를 위한 헌금과 모금을 받았어요. 남편의 고향인 캐나다에 가서 부모님도 만났고 저의 부모님도 뵈었답니다. 빨리 돌아와서 일할 마음에 그곳에 오래 있을 수 없었어요. 의학 공부를 시키려고 함께 간 에스더도 이제 자리를 잡았구요.”
“나였다면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로제타는 보통 분이 아니예요.”
릴리아스가 로제타의 두 손을 꼭 쥐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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