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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 황제는 아침마다 경효전으로 나아갔다. 경효전은 경운궁(현 덕수궁) 내 정전인 중화전 바로 오른쪽에, 그리고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효전의 원래 이름은 경소전이고, 국장 이전에는 빈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며 지금은 명성황후의 신주를 봉안한 혼전이다. 이 혼전에서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우주(虞主)에 의탁하는 제사인 우제(虞祭)를 아홉 차례 지냈다. 조선 시대의 우제는 일곱 번이었지만 명성황후는 대한제국의 황후이기 때문에 아홉 번의 우제를 지냈다. 광무 황제는 이날 커다란 두루마리를 들고 황후의 신주 앞에 섰다.
“황후! 나는 황후를 저버린 죄인이오. 황후는 짐을 간절한 한마음으로 보필하였는데, 짐은 조선과 짐의 보배인 황후를 지키고 보존하지 못하였소. 결국은 내가 황후를 저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지금 깊이 슬퍼하고 그대를 추모한다고 하여, 이제 모든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2년도 넘는 세월을 지낸 후에야 그대를 제 자리에 모시게 된 짐을 용서하오. 하지만 그대가 나와 지근거리에 있으니 항상 든든하구료. 오늘은 황후께 보고드릴 일이 있다오. 칙령을 내릴 것인데 그대가 먼저 들어줬으면 하오.”
광무 황제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신주 앞에서 읽기 시작했다.
“…오늘의 나라 형편을 보면 조석으로 위급한 근심이 있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 모두가 태연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고 있다. 이러한데 나라가 어찌 나라 구실을 하겠는가. 짐은 스스로를 반성하기에 겨를이 없다. 의정부는 짐이 믿고 일하도록 맡긴 기관인데 서로 도우며 일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누리고 호화롭게 지내려 하니 만백성이 지치고 병든 것을 어떻게 구하며 쌓인 일을 어찌 처리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있고서야 개인과 가정이 있는 것이다. 짐이 원래 부덕하나 그대들의 조부와 부친이 왕실에 충성을 다하고 선대 임금을 섬긴 것처럼 그대들이 짐을 섬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짐은 백성들에 대한 일심으로 조석으로 늘 근심하고 있다. 변란을 겪은 이후 산 사람은 살 곳이 없으며 죽은 사람은 돌봄의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답답하다. 관찰사와 고을 원들은 짐의 뜻을 체득하여 백성들을 위무하고 있는가? 토지와 호구에 관한 정사를 말하면 묵은 밭과 결딴난 호구에 대해서도 억지로 세금을 받아내는 것이 많고 명색이 없는 조세를 받아내는 일까지 있어 백성들이 분주하게 세금을 내느라 시달린다고 한다. 나라의 계책이 아무리 군색하다 해도 어찌 우리 백성들에게 거듭 고통을 주겠는가.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지시하여 각 고을의 토지와 호구에 대한 문서를 철저히 조사해서 보고하여 은혜가 백성들에게 미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사하는 데 혹 농간을 허용하거나 보고한 것이 사실과 맞지 않다면 법조문에 의해 죄를 따질 것이며 명색 없는 잡세는 일체 금지시킬 것이다…”
칙령을 읽는 광무 황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명성황후가 살아있었다면 대한제국의 건국을 세상 누구보다 가장 기뻐했을 것이다. 마지막 밤, 황제와 황후는 대한제국을 함께 약속했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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