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70] 제국의 기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정치의 요체는 민사가 아니겠는가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7 06:30:20

광무 황제는 고개를 들고 신주를 바라보았다. 명성황후의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중전이 살아 계셨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오. 중전의 가시는 길에 최선을 다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쓰리기만 하구려.’

광무 황제는 천천히 태극전으로 향했다. 간밤에 첫눈이 내려 소나무 가지마다 눈이 쌓여 있었고 경운궁의 뜨락은 뽀얗게 아름다웠다. 태극전에는 의정부와 각료들의 회의가 준비되어 있었다. 황제의 나라이므로 천장과 기둥에 봉황이 아닌 용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황제는 익선관에 황색 곤룡복을 입고 용상에 앉았다.

“경들의 노고로 황후의 국장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소. 빈전과 혼전은 상례 기간이 끝나면 없애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황후의 죽음은 대한제국의 근간이 되기에 계속 이곳에 신주를 모시고자 하오.”

“지당하시옵니다!”

신하들이 모두 화답했다.

“짐은 요즈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소. 정치의 요체는 민사가 아니겠는가! 백성을 병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은 모두 혁파해야 할 것이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백성의 의식과 교화이니 백성을 부유하게 해주고 또한 가르쳐야 할 것이오. 이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다스림의 근본이 아니겠소! 누구든지 백성의 재산을 빼앗지 말고 백성의 마음을 뿌리치지 말아야 할 것이오. 모든 관리가 경계할 것은 탐욕의 마음이니 간악함을 좇지 말고 공(公)을 빙자해 사(私)를 추구하면 안 될 것이오.”

“폐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말했다.

“또 하나. 짐은 이곳 경운궁에 서양식 건물을 짓고자 하오. 서양의 문물이 동양에 들어와 동서양이 하나로 교류하고 있소. 얼마 전 일본인들이 짐을 겁박하여 개화의 이름으로 조선의 전통을 짓밟았을 때 만백성이 이에 항거하였소.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탈하였기 때문이오. 짐은 친일내각을 혁파한 후 두발 모양과 양력·음력을 자유롭게 하도록 하였소. 새로운 것에 빠져 옛것을 잊거나 옛것을 고수하느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모두 지혜롭지 못한 것이며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오. 옛것과 새것의 나쁜 점은 과감하게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한다면 백성들의 살림이 윤택해질 것이고 나라가 발전할 것이오. 이러한 취지로 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이 궁궐 안에 들어설 것이오.”

“폐하, 재정고문인 영국인 존 맥리비 브라운이 돌로 된 건물의 건립을 발의했다 들었사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석조건물이 없었는데 궁 안에 서양식 궁전을 지으심은 폐하의 구본신참의 뜻이라 사료되옵니다.”

의정 심순택이 여쭈었다.

“그렇소. 이미 3월에 브라운이 궁궐 안 지형을 측량하여 적당한 터를 물색해 두었소. 영국인 건축기사 하딩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돌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내부 구조 또한 서양식이라 하오.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추어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한 건물 안에 모두 둔다고 하였소.”

“이 건물은 대한제국과 황제 폐하의 위상을 빛내줄 것입니다.”

심순택이 환영했고 모든 대신이 한 마음으로 동의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