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빛’ [172] 양화진에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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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사, 풀려난 거요?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11 06:30:20

창수는 감옥 밖 큰길에 들어섰다. 안개가 자욱한 봄날 밤이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 되어 밤새 헤매다가 동이 터 살펴 보니 감리서 뒤쪽 용동에 와있었다. 순검 한 사람이 군도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니 길거리 가게에 아궁이를 가린 판자가 보였다. 창수는 얼른 그 판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바로 옆으로 순검이 지나가고 창수는 숨을 죽였다. 칼집이 바로 코끝을 스쳤다.

창수는 행인 한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수원과 경성 가는 갈림길까지 동행해 주었다. 창수는 장티푸스를 앓은 후 머리가 다 빠져 노끈으로 몇 안 되는 머리칼을 졸라매 수건으로 동였고 옷은 두루마기 없는 바지저고리 차림이었는데 흙투성이였다. 인천항 가까이에 가니 해가 떠올랐다. 사방에서 순검의 호각 소리가 들렸다. 창수는 작은 소나무 아래에 똑바로 누워 솔가지로 얼굴을 가리고 숨어 있었다. 순검과 간수 여럿이 지나가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덕근은 서울로 가고, 양봉근은 배 타고 떠났을 테지. 김창수는 어디로 갔을까? 창수는 잡기 어려울 거야. 역시 장사야. 창수야 탈출하기를 정말 잘한 거지, 안 그런가? 갇혀 있으면 뭐 하나?”

“김창수는 벌써 멀리까지 도망갔겠지.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네.”

창수는 해가 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나왔다. 허기를 채우려고 근처 동네 어떤 집에서 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는데 재워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창수는 동네 한가운데 디딜방앗간 볏 짚단 위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양화진 나루에 당도한 창수는 동네 서당에 들어가 훈장을 만났다. 서당 훈장은 창수가 연소하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것을 보고 창수를 하대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내게 이렇게 대하니 어찌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소이까? 내가 운수 나쁘게 길에서 도적을 만나 이 모양이 되었으나 선생께 업신여김을 당할 사람은 아니오.”

창수는 정색하고 훈장에게 말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나는 경성 사는 아무개인데 인천에 다녀오는 길에 벼리고개에서 도적을 만나 옷과 짐을 모두 빼앗겼소. 날이 저물고 배도 고파 선생을 찾아왔소이다.”

서당 훈장은 창수를 접대하여 저녁상을 차려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창수는 훈장의 편지 덕분에 공짜로 배를 타고 양화진 나루를 건너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에는 남영희궁의 청지기 진씨가 있었는데, 진씨와 그 동료들이 인천 감옥에 있을 때 창수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출옥하면서 창수에게 꼭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진씨에게 찾아가니 버선발로 달려 나왔다.

“김 석사, 풀려난 게요?”

“왜놈들의 성화에 풀려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 탈옥했소.”

“정말 잘하시었소!”

진씨는 가족들을 불러 인사시키고 함께 감방에 있던 동료들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들은 창수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김 석사 행색이 이게 뭐요?”

그들은 창수가 입고 쓸 두루마기, 망건, 갓을 사 가지고 왔다. 창수는 며칠간 회포를 풀고 잘 쉬다가 그들과 작별했다. 진씨와 동료들은 아쉬워하며 노자를 한 짐 지워 주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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