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77]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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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생사만이 걱정이었지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18 06:30:20

며칠이 지난 늦봄, 혜정 스님이 돌아왔다. 만개한 붉은 장미가 꽃잎을 흩날리는 날이었다. 스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따라오셨다. 창수는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서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창수야, 네가 살아 있을 줄 알았다.”

어머니가 울면서 창수를 끌어안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어깨를 도닥였다.

“어머님, 아버님! 불초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 더한 불효자는 없어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였다. 어머니는 난산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되어도 아이가 나오지를 않았다. 친척들이 모두 모여 갖가지 치료와 미신 처방까지 궁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소길마(소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 연장)를 쓰고 지붕에 올라가서 소 울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창수는 세상으로 나왔다.

철이 들어서는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정부군의 토벌에 맞서 싸웠다. 안 진사댁에 숨어 살면서 잠시 안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나라를 구하겠다며 청나라로 떠났고, 돌아와서는 국모의 원수를 응징하느라 일본인을 살해하고 방을 붙였다. 탈옥해서는 머리 깎은 중이 되어 떠돌고 있으니 고비마다 부모님의 염려와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방에 들어가 안색을 자세히 살피니 아버지의 건강이 매우 쇠약해지셨다.

“아버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창수의 물음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무슨 일은! 우리는 고향에 돌아와서 잘 지내고 있었단다.”

“왜놈들이 두 분을 괴롭힌 것 아닙니까?”

“네가 탈옥하고 인천옥에서 우리를 잡아갔단다. 그들도 그러기 싫었겠지만 왜놈들의 성화 때문이었지. 나는 얼마 안 되어 풀려 났지만 아버님은 일 년을 그곳에서 고생하셨단다.”

창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솟구쳤다.

“애비는 괜찮다. 옥에 있을 동안 그곳 감리사 양반과 간수들, 죄수들까지 잘 돌봐주었단다.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 걱정이었지.”

“꿈자리가 사나우면 아무것도 못 드시고 혹시 네가 잡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염려하셨어.”

“네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데 이 애비는 이제 여한이 없단다.”

창수는 부모님과 북암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회포를 풀고 5월 4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혜정 스님과 동행하여 평양 구경 길에 올랐다. 다음날인 단오 날, 창수가 모란봉에서 그네뛰기를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정자 안에서 아주 깔끔한 차림새의 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창수는 바로 문안 인사를 했다.

“소승, 원종이옵고 천하를 유람하고 있습니다.”

“이리 와 앉으시지요. 나는 최재학이고 여기 이분은 저의 학형이십니다.”

“내 이름은 전효순이오.”

비단 두루마기에 하얀 수염을 멋있게 기른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최재학이 전효순 노인에게 제안했다.

“형님, 이 대사는 도리를 아는 스님이니 대보산 영천암 방주 자리를 내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러면 좋겠네. 내가 자식과 외손자들을 영천암에서 공부시키고 있는데 그곳 주지가 불량하여 술에 취해 돌아다니기나 하니 어려움이 많다오. 원종 대사께서 그 곳 주지를 맡아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시면 더없이 좋겠소.”

전효순 노인도 아주 반기는 눈치였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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