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82] 독립문 정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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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나라의 독립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25 06:30:20

겨울이 깊어가는 어느 날, 이화학당 새싹반은 드루실라 선생님과 함께 독립문을 공부했다. 드루실라 선생님은 단정한 한복 차림에 짤막한 조끼를 걸쳤다.

“오늘은 독립문과 독립협회를 공부할 거예요. 여러분 중에 독립협회나 독립문에 대해 들어본 사람 있나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독립협회 회장님입니다.”

선생님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해린이 답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해린에게 꽂혔다. 부러운 마음이었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 박사가 이완용 등과 함께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워 독립협회를 결성하고는 해린의 아버지 안경수를 회장으로 삼은 것이다.

“해린에게는 훌륭한 아버지가 계시구나.”

드루실라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해린의 대답을 반겼다. 해린은 기분이 좋아져서 어깨를 으쓱했다.

“작년 이맘때(1986.11.21.) 독립문 정초식이 있었단다. 정초식이란 주춧돌을 놓는 예식이지. 그날은 겨울이지만 그렇게 춥지 않았고 사람들이 6000명가량 모였어. 학생들도 초대받았어. 배재학당 학생들이 독립가를 노래했단다.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갔었는데 날씨도 화창하고 사람들의 열기도 대단했지.”

“그럼 선교사님들도 가셨나요?”

애덕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랬단다. 아펜젤러 선생님도 오시고 서양 각국의 외교관들도 초청받았단다. 독립문 들어가는 입구는 푸른 나무로 홍예(무지개 모양 아치)를 만들어 태극기로 양쪽을 단장하고 그 위에는 흰 바탕에 붉은 글자로 ‘독립문’이라 써서 높이 매달았지. 문에는 독립협회 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어.”

드루실라 선생님이 회상에 잠겼다. 선생님은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선생님! 원래 그 자리에 무슨 문이 있지 않았나요?”

보민이 틈을 엿보아 선생님께 살짝 물었다.

“그렇지. 독립문 자리에는 원래 영은문이 있었단다. 영은문은 오랫동안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문이었는데 이 문을 헐고는 영은문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된 것이지. 그렇다면 이 두 문은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

보민의 질문에 신이 난 선생님은 대뜸 아이들에게 문제를 던졌다.

“저요!”

해린이 바로 손을 들었다.

“제가 아버지께 들었는데 이제까지 우리나라가 중국을 큰 나라로 섬겨 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은문은 중국을 섬기는 것을, 독립문은 나라의 당당한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요?”

“맞아, 바로 그거야!”

드루실라 선생님이 흐뭇해했다.

“아버지께서 독립협회가 시작할 때 회원이 불과 너댓 명이었는데 지금은 수천 명이 되었다 하셨어요. 가난한 사람들도 독립문 세우는 데 돈을 냈고 외국 사람도 많이들 돈을 냈다고 합니다. 우리 백성들은 나라가 독립되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열심히 회비를 냈다고 하셨어요.”

해린이 열심히 덧붙여 설명했다.

“해린이 정말 기특한걸?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어떻게 모두 기억하고 있니?”

드루실라 선생님의 칭찬이 이어졌다. 어른들 말씀이고 해린이 정도의 어린아이가 귀담아 두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기억하고 있다가 이야기하는 게 참 예뻤다.

“사실은… 선생님도 독립협회 회원이란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함께한 그날은 참 좋은 날이었어.”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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