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83] 해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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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예쁘잖아, 비단처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26 06:30:10

“해린이 너 굉장하다! 오늘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돼?”

수업이 끝나고 애덕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 보고 싶어?”

“그것보다… 지난번에 테니스장 구경시켜 준다고 했잖아.”

“그랬지. 테니스는 4명이 해야 재미있는데!”

해린의 이 말에 보민의 귀가 쫑긋했다.

“그럼, 재동 오빠 데리고 가자.”

“그거 좋지. 그런데 재동이는 어디 있어?”

해린이는 아직도 재동을 오빠로 부르지 않았다.

“드루실라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아실 거야.”

아이들은 드루실라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고 재동은 세 아이와 함께했다.

“재동 오빠, 오늘 해린이네 놀러 가자.”

보민의 말에 숫기 없는 재동은 머뭇거렸다.

“재동아, 우리 집 가면 재미있는 거 많아. 너 같은 촌놈은 입이 쫙 벌어질 거야. 어때, 가볼래?”

“…”

“드루실라 선생님이 허락하셨으니 가보는 거다!”

해린이 뻐기며 말했다. 보민은 해린을 째려봤지만 무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느 사이 아이들은 커다란 대문 앞에 섰다. 문을 지키던 사내가 해린을 보고 몸을 굽혀 절했다.

“아가씨, 친구들과 함께 오셨군요.”

“어머니께 말해줘요.”

“마님께 여쭙고 오겠습니다.”

사내는 얼른 허락을 받아 돌아왔고 아이들은 열린 큰 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섰다. 대문 안으로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단풍나무와 회화나무, 소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잘 조화를 이룬 정원 한가운데 연못이 보였다. 정원 맞은편으로 커다란 기와집이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멋진 풍경에 세 아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것 봐! 내가 뭐랬냐? 입들 좀 다물어라. 침 흘리지 말고.”

해린이 양양하게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방 쏘아붙일 보민도 오늘만큼은

아무 말 없었다. 장관에 압도되어 해린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저기 보이는 집은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야. 아버지는 거기서 공부도 하시고 유명한 어른들이랑 회의도 하신단다. 바쁘시니까 나도 자주 만나지 못해.”

재동의 발걸음이 연못 쪽으로 향했다. 초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아직 얼지 않았다.

“재동아, 어디 가냐? 이렇게 예쁜 연못은 처음이지?”

해린이 제법 의젓하게 재동을 인도했다. 연못으로 가는 길에는 큼직한 돌이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연못 앞에 섰다. 연못가에는 위성류가 심겨 있다. 위성류는 야들야들하게 정갈한 잎에 버드나무처럼 늘어진 가지를 지닌, 양반집에서 즐겨 심은 품위 있는 나무다.

“와! 저 물고기 봐라.”

애덕이 자기 팔뚝보다 훨씬 큰 물고기를 보고 탄성을 냈다.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아끼시는 비단잉어란다. 아주 크지?”

“잉어는 알겠는데 비단은 또 뭐야?”

보민이 물었다.

“색깔이 예쁘잖아. 비단처럼.”

“오, 애덕! 굉장한데, 어떻게 알았어?”

해린이 애덕을 추켜세웠다.

“창경궁과 경복궁 연못에도 얘들이 산다고 아빠가 그러셨어. 우리 집 비단잉어들은 바로 궁궐에 있는 잉어 몇 마리를 임금님이 주신 거래. 그리고 아빠가 일본에서 여러 마리 사오셨고.”

“정말이야? 임금님이 주신 잉어? 앞으로 해린이 잘 모셔야겠다.”

감탄한 애덕의 아부하는 버릇이 나왔다.

“애덕이는… 앞으로 크게 될 거야. 세상사는 법을 아니까.”

해린이 애덕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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